▲ 92년 대선 때 정주영 | ||
이번 호부터 정주영을 중심각(中心角)으로 한 그 막후의 이야기들을 조명키로 한다. 정주영과 정재계 핵심의 막후 스토리들, 그 실상과 의미는 무엇이며, 지금 한국의 시계는 몇 시쯤에 와 있을까. 첫 번째로 뒷얘기를 통한 시대흐름 전반을 짚는다.
“박정희 정권 때도 (청와대 정치자금을) 냈다. 그때는 애국심으로 냈다. (전두환 정권 때) 1차 때는 날아갈 듯이 냈고, 2차 때는 이치에 맞아 자발적으로 냈고, 3차부터는 편히 살자는 생각으로 냈다. 6공 초기에는 20억∼30억원씩 갖다주다 받는 쪽에서 섭섭해 할 것 같아서 나중에는 1백억원을 갖다줬다.”
88년 11월 국회 5공특위의 일해재단 청문회를 비롯, 각종 석상에서 토해내어 지금껏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정주영씨의 ‘권력자금 헌납’ 발언들. 한국 권력사(權力史) 최초로 표면화시킨 ‘최고권력 직접 뒷거래’ 확인 발언들로 당시에는 모두 ‘폭탄성’이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든 권력과 재벌 관계는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이 사실. 정권이 바뀌면 재벌은 으레 수난의 대상이었던 것. 박정희 정권 때는 총수들이 부정축재자로 몰려 구금당하고, 헌납이란 명목으로 재산을 뺏긴 일이 발생했고, 이어 전두환 정권 때는 재계 서열 7위인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된 것이 극명한 사건들로 꼽힌다. 다음은 신생권력이 무소불위의 위상을 보여주던 5공 초기, 권력과 재계총수인 정주영과의 갈등 기류를 보여준 대표적 비화. 정치기자 Y씨의 증언담이다.
“정주영씨에게 정치권력에 대한 혐오가 본격적으로 싹튼 것은 5공 때부터라고 본다. 80년대 초 정 회장을 전경련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신군부의 압력은 집요할 정도였다. 자신들의 맘에 드는 인사를 회장직에 천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정 회장은 ‘전경련은 반드시 기업인들이 지켜야 한다’는 신조를 굽히지 않았고 이 때문에 모진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어느날 한 상가(喪家)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실세로 불리던 ‘3허(許)씨(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중 한 사람을 만났다. 정 회장은 눈인사만 하고 나가려는데 만취상태에 있던 그 허씨는 ‘어이, 정 회장’하며 대뜸 반말조로 말을 건넸다. 허씨가 그대로 돌아서려는 정 회장의 다리를 완전히 무시하듯 붙잡고 늘어지는 통에 정 회장은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 ‘새파랗게 젊은 친구’에게 수모를 당한 충격이 심해서였는지 정 회장의 시력은 그후 급속히 나빠졌다.
▲ 96년 한 행사장에서 만난 세 명의 전직 대통령. | ||
“90년 10월 새 관저 준공을 기념해 노태우 대통령이 정주영 조중훈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을 청와대 만찬에 초대했다. 술이 거나하게 돌면서 슬슬 불만이 터져나왔다. ‘물정 모르는 학자 출신들이 정책을 주도하면서 경제가 엉망이다…” 로 시작된 정 회장의 비난의 화살이 슬며시 대통령쪽으로 옮아갔고, 급기야 노대통령이 버럭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후 노 정권의 정주영및 현대그룹에 대한 진짜 전쟁에 가까운 대립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견해들이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갔다.”
이어 YS의 이른바 문민정권이라 해도, ‘권력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재벌탄압’의 관행은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기는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평가들. 특히 정주영과 현대에 관한 한 이 시기는 가장 큰 수난의 시기였다는 것이 공통된 분석이다. 당시 취재현장에 있었던 한 기자의 전언 비화.
“94년 어느 여름날, YS 가신그룹의 일원으로 서슬퍼런 칼날을 휘둘렀던 한 경제부처 고위관료는 사석에서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말했다. ‘독일은 전후 50년이 되어서도 나치 전범(戰犯)을 샅샅이 찾아내 극형에 처하고 있다. 역사의 심판을 내리는 거다. 현대도 따지고 보면 기업조직을 가지고 감히 정치권력에 도전했던 역사의 전범 아닌가. 일부에서는 이제 봐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더라도 사형은 집행돼야 한다.’ 자못 섬뜩한 비유였다. 이 실세 관료의 발언은 대선 때 정적이었던 YS의 현대를 향한 미움의 정도가 어느 수위였는지를 확인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또 다른 일화로 한 현역기자가 전대주(田大洲) 당시 전경련 상무의 증언을 인용, 전하고 있는 내용.“96년 초 YS 최측근인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과 전 상무가 사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홍 수석은 ‘현대그룹, 참 대단합디다. 그렇게 밟았는데도 멀쩡하잖아요’라고 했다. 현대 계열사 하나쯤은 부도나는 꼴을 봤으면 하고 기대했던 듯한 홍씨의 넋두리에 전 상무는 정주영 회장에 대한 YS의 구원(舊怨)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 현대사에서 권력과 재벌 양측은 공생(共生)의 관계. 권력은 재벌의 국가적 역할을 인정, 초반 ‘군기잡기’가 끝나면 다시 협조관계로 되돌아가고자 했던 것. 이 과정서 그 원근(遠近)에 따라 보복 또는 검은 돈과 특혜의 정경유착 폐습이 되풀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어떻게 봐야 할까. 고려대 이만우 교수(경영학)의 진단.
“김대중정권 이후 뇌물을 뿌려가며 권력에 기생한 사이비 기업인들의 온갖 불법행위와 비리도 결국 정권말기에 밝혀지기 시작했다. 권력에 줄을 대고 뒷돈을 줘가며 정치권력을 최고의 영업권으로 활용하려는 한국특유의 폐습이 여전히 깊이 흐르고있다. DJ정권 초기 정치권력의 힘은 극에 달했다. 특히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 무산, LG그룹의 팔을 꺾은 반도체 빅딜 등이 모두 정치권력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재벌기업들이 회사를 팔고 사는 거래를 오너나 전문경영인이 아닌 여당 정책위의장, 공동여당 총재 등이 떠들고 다녔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LG반도체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구본무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던 일도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었다. 특히 현대 하이닉스반도체등과 관련된 천문학적 공적자금 손실 같은 일은 정권이 바뀌어도 끝까지 추궁돼야 마땅할 것이다.”
이병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