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7년 7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출간된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하권만 소장돼 있다. 사진은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된 영인본.연합뉴스
‘직지’는 고려 말에 백운화상(1299~1374)이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들의 법어와 어록 등에서 선(禪) 불교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엮은 서적이다. 책 제목은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로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직지’의 중심 주제인 ‘직지심체’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불도를 깨닫는 명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참선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직지’는 1377년 7월 청주에 있던 옛 절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출간됐다. 원래 상·하 2권으로 인쇄되었으나 상권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돼 있다. 하권의 끝부분에는 ‘백운화상이 초록한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라는 글과 함께 간행 시기 및 장소, 그리고 간행 방법 등이 기록돼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직지’는 ‘선광 7년 정사 7월’(宣光七年 丁巳 七月 日)에 ‘청주목 교외에 있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됐다.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 이후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지 못했는데, 선광이란 원나라의 후예인 북원의 황제 소종이 쓰던 연호다. 선광 7년은 고려 우왕 3년에 해당되는 시기로, ‘직지’가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서 간행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려 시대에는 ‘직지’ 이전에도 금속활자를 이용해 서적들을 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불교 선종(禪宗)에 대한 서적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1239년에 목판으로 인쇄되었는데, 당시 무신정권의 우두머리였던 최이가 이 책의 지문에 ‘원래 금속활자본을 목판으로 다시 새긴다’는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또한 이규보가 1234년에서 1241년 사이에 저술한 ‘동국이상국집’에는 국가 의례와 절차에 관한 책인 ‘상정예문’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해 각 관서에 나눠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및 ‘상정예문’의 금속활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직지’는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 함대가 빼앗아 간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사실이 아니다. 1886년 한불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가 우리나라에서 고서 및 각종 문화재를 수집해 가져갔는데, 이 가운데 ‘직지’가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플랑시는 우리나라 궁중무희와의 러브 스토리로 화제가 됐던 지한파 외교관이기도 하다. 이후 ‘직지’는 1911년 드루오 호텔 경매를 통해 골동품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에게 180프랑에 팔렸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1950년경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직지’는 한국 연구의 권위자였던 모리스 꾸랑 교수가 1901년 저술한 ‘한국서지’ 보유판에 한국의 고서로 소개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하지만 그 실물과 내용이 확인되지 않다가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맞아 유네스코가 주최한 ‘책의 역사’ 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당시 ‘직지’를 출품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평가를 이끌어 낸 주인공이 바로 고 박병선 박사다. 파리7대학 교수, 파리 국립도서관 한국관 전문위원 등을 지낸 박 박사는 파리 국립도서관에 묵혀 있던 ‘직지’뿐만 아니라 외규장각 의궤들을 처음 발굴해 그 존재를 국내외에 알리기도 했다.
1985년에는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직지’의 간행 장소인 흥덕사 절터(청주 흥덕구 직지대로 713)가 발굴되었고, 청주시는 흥덕사 터를 정비해 이곳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건립, 운영 중이다
‘직지’는 구한 말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한 번도 국내로 돌아오지 못했다. 강제로 빼앗아간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반환만을 주장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직지’ 등 소장 중인 외국 문화재의 반환 내지 해외 임대에 소극적인 이유는 이른바 ‘반환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까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까닭에 ‘직지’를 국내에서 전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프랑스 국립도서관과의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기나긴 타향살이 중인 ‘직지’의 신세는 후대인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일깨워준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 있다 하더라도, 그 유산을 온전히 보존하는 일에 소홀하면 언제든 제2의 ‘직지’가 나올 수 있다는 교훈 말이다.
<자료=유네스코한국위원회/청주고인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