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을 가린 채 성행위 음성만 송출하는 ‘흑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12일 개최된 ‘2018년 제1차 ‘클린인터넷방송협의회’. 사진=방송통신위원회
6월 2일 방송통신심위위원회(방심위)는 ‘흑방’을 진행한 인터넷방송 진행자 2명에게 방송 이용정지 6개월 처분을 내리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이번 징계는 술 취한 여성을 접속자를 끌어들이는 요소로 활용했다는 점, 유포를 통해 여성의 인격권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중요하게 고려된 것으로 전해진다. 7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흑방에 대한 제재와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사건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 수사는 참여 여성이 흑방에 동의했는지 등에 집중될 예정이다. 방심위가 인터넷 진행자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흑방에 대해서는 처음이다. 사건 관계자는 “흑방은 방송 화면을 가리고 음향만 송출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인터넷방송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애매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방심위는 해당 방송이 송출된 인터넷방송사에 대해 자율규제 강화 권고를 한 상태다. 사실상 인터넷방송사에 대한 처분은 없는 것. 방심위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사는 직접 기획과 편성에 관여하지만 인터넷방송사는 플랫폼을 빌려주고 개인이 방송을 운영하는 형식”이라며 “지난 3월 다수의 BJ가 문제를 일으킨 인터넷방송사에 대해 성인방송 콘텐츠 제한 조처를 내렸지만, 이번처럼 개별 문제로 방송사에 제재를 가한다면 정상적으로 채널을 운영하는 BJ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방심위의 처분을 받은 인터넷방송 진행자 A 씨는 지난 5월 초 길거리 헌팅을 통해 만난 여성과 술을 마시고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게임을 즐기는 방송을 진행했다. 수위 높은 신체접촉이 오가는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A 씨는 일명 ‘팬방’이라고 불리는 유료채널을 새롭게 개설했다. 이후 A 씨가 보인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화면을 보이지 않게 검게 가린 후 해당 여성과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소리를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내보낸 것. 방심위의 처분을 받은 또 다른 인터넷방송 진행자 B 씨는 A 씨와 합동방송을 통해 흑방에 참여했다.
당시의 방송을 봤다는 시청자는 “팬방의 입장료는 생각보다 비싸다. 인지도 있는 진행자는 팬방으로만 한 번에 몇 백만 원씩 버는 걸로 알고 있다”며 “시청을 하다 보니 성인방송이어도 이건 진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행자의 행동과 여성을 조롱하는 시청자들의 댓글만 봐도 술 취한 여성들을 가지고 노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A 씨와 B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해명했지만, 방심위는 그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두 사람은 6월 22일 통신심의소위원회에 참석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화면을 검게 가렸으며 성행위 소리는 진짜가 아니라 성인비디오 음향을 송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통신심의소위원들은 “진술 내용이 허위일 가능성이 크고 만약 조작된 방송이라고 하더라도 성행위와 관련된 신음소리 등 자극적인 음성을 전달한 점, 술에 취한 여성을 이용하여 자극적인 방송을 진행한 점들을 고려할 때 유사사례의 재발과 모방방지를 위해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반인 여성이 등장하는 인터넷 방송이 여성도 모르는 사이 국내와 해외 음란사이트에 유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건 관계자는 “간단한 프로그램으로도 쉽게 녹화본을 만들 수 있다. 일반인 여성을 섭외해 음란한 행동을 한 인터넷방송 녹화분이 중국 음란 사이트에 유출된 것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면서 “논란 이후 흑방은 많이 보이지 않지만 헌팅방송의 폐해는 여전하다. 진행자들이 섭외한 여성을 속이는 때도 있다. 모든 성인 콘텐츠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헌팅한 여성들에게 방송 전 방송의 특성, 유출의 위험성 등에 대해 충분히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인터넷방송사가 BJ들의 돌발행동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문제 해결 의지가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방송사에 대한 자율규제 권고가 아닌 명확한 법적 제재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국내에서 아직 인터넷개인방송사업자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선정적인 방송을 이유로 지금까지 사업자가 과징금 과태료 등의 처분을 받은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법 개정 전까지는 자율규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작년에 ‘클린인터넷방송협의회’를 구성하고 올 3월에 자율규제 대책안을 발표했다. 연말쯤 세부 방안이 나올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고액결제 문제를 포함해 인터넷방송사업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 7건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데 여러 이유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