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내 성폭행 사건은 2017년 2월경 군무이탈했던 여군이 붙잡히며 수면위로 떠올랐다. 김하나(가명) 대위는 군무이탈 건으로 수사를 받다 친분이 생긴 한 수사관에게 2010년 있었던 성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했고, 분개한 수사관은 이를 당장 수사할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2017년 6월 헌병대에서 김하나 대위를 찾아와 수사협조 요청을 하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문제의 마산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함장 김 아무개 대령과 박 아무개 중령 2명이다. 김하나 대위는 2010년 9~10월 말경까지 박 중령으로부터 수차례 추행과 성폭행을 당해 임신중절수술을 받았고,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2월 초 함장 김 대령에게 또 다시 성폭행을 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근무가 한정된 공간인 배에서 이뤄지고, 엄격한 상하관계 속에 운영되는 군 조직특성상 약자인 김하나 대위가 부조리함을 고발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성소수자라는 성향을 상관이나 동료들이 알고 있던 상태여서 김 대위는 위축되고 소외된 상태였다. 2015년과 2016년 김 대위는 성적 지향과 조직생활 문제로 심리적 불안을 경험했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군무이탈의 배경도 심리적 스트레스와 우울로 목숨을 끊기 위해서였다.
성폭행 사건에 대해 가해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박 중령은 내연관계에서 성관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부적절한 관계임은 맞지만 강제성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김 대령 역시 추행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이미 7년이나 지난 사건인 터라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성폭행 사건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실공방으로 전개될 경우 수사기관의 수사는 더욱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사건화를 원하지 않는 김 대위를 부추겨 해군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에 나서고 그 과정에서 적법성이 결여돼 문제로 지적된다.
군 검찰 관계자가 출력한 고소장을 일요신문이 입수했다. 출력자 이름이 워터마크로 찍혀 있다.
마산함 성폭행 사건은 2010년 친고죄였던 사건이라 고소할 수 있는 기간이 이미 지났다. 이 사건으로 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당시 성폭행으로 인한 상해를 입은 것을 입증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피해자마저 사건화를 원하지 않았지만 군 검찰은 김하나 대위를 부추겨 고소장을 대필했다. 고소장에 적힌 죄명은 ‘강간치상’. 당시 접수된 고소장에는 군 검찰 컴퓨터에서 고소장을 인쇄해 출력했다는 증거가 되는 워터마크가 찍혀있다. 뿐만 아니라 강간치상으로 고소하기 위해 필수적인 상해진단서도 첨부되지 않았다. 상해에 대한 진단은 고소가 접수된 이후인 8월에 이뤄졌다.
김하나 대위 역시 법정에서 자신이 고소장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당시 진술에 따르면 김 대위는 “고소장은 검사가 양식에 맞춰 작성했고 나는 저렇게 기술한 적이 없다. 강간치상이 뭔지도 모르고 저 양식도 처음 봤다”며 “고소장을 작성하기 전 진술조서를 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검찰이 고소를 이렇게 하면 (강간치상으로) 할 수 있다고 권고해,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기도 전 군 검찰은 피해자가 치상을 입었다는 것을 가정하고 강간치상죄로 고소장을 대리 작성했다. 검사는 피해자와 피의자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군 검찰이 고발장을 대필할 경우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 특히 군 검찰은 군형법과 일반법의 적용을 받아 일반 검찰보다 더욱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검사가 고소인의 고소장을 대신 작성하거나 고소장 작성을 부추기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중한 죄”라고 지적했다.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담당 법원장이 피고인 측에 전달한 메모.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법관이 피고인 측에 개별 메모를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부적절하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송지휘권을 가진 판사가 피고인 측 변호사에게 어떤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밖의 것은 사법부의 중립성에 저해되는 행위다. 앞의 대한변협 관계자는 “판사가 하느님도 아닌데 어느 정서에서 작성된 메모이건 간에 그것을 피고인 측에 전달하는 행위 자체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박 중령은 수사 당시 상당한 굴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군 검찰은 2017년 9월 압수수색을 포함해 네 차례 수사를 받은 박 중령에게 ‘압수했던 휴대폰을 돌려주겠다’며 주말이 지나고 다시 방문하라고 알렸다. 휴대폰을 받으려 다시 군 검찰에 방문한 박 중령은 또 압수수색을 당했다. 박 중령은 “신발까지 다 벗기고 온몸을 수색했다. 영장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군 검찰이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았다”며 “당시 수사를 지휘하던 강 아무개 검사가 험한 말을 하며 위협을 줬고, 이게 다 김 대령을 잡기 위한 것이니 좀 이해하라고 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박 중령은 그날 바로 구속됐다.
일각에서는 해군에서 승승장구하던 김 대령을 축출하기 위해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한 수사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대령은 다양한 야전 경험을 겸비하고 2017년 해외 영사에 무관으로 파견돼 있었다. 정부 관계자는 “해외 무관 파견은 해군으로서는 가기 어려운 자리고 승진이 보장돼 있는 코스”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 해군에서 성폭행으로 여성 대위가 자살하는 등 여론의 지탄을 받던 시기라 성과를 올리기 위해 과잉 수사를 벌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증이 없고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군 검찰은 제대로 된 수사를 벌이지 못했다. 군 검찰은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을 증명하기 위해 대구지방경찰청 최면전문 수사관에게 의뢰해 최면조사까지 벌였다. 하지만 ‘일상의 기억이든 최면을 이용한 기억이든 모든 기억은 불완전해 최면수사로 나온 결과는 반드시 수사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결과뿐 소득이 없자 이는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지난 5월 김 아무개 대령과 박 아무개 중령은 군인등간강치상, 군인등강제추행치상의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8년, 10년을 선고 받아 현재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