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경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경제 지표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들이 민망해서 일자리 상황판을 못 볼 정도라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국빈 방문 중 지난 7월 9일 인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 공단에서 열린 삼성전자 휴대전화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며 취임 후 집무실에 상황판을 설치했지만 거의 모든 일자리 지표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다른 경제 지표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꼽아온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는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가구의 소득은 전년 대비 9.3% 늘어났지만 하위 20% 가구의 소득은 오히려 8% 줄었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시장 돌아다녀보면 장사 안 된다고 난리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데 큰일이다. 선거 때 꼭 가는 곳이 시장 아닌가. 우리 당에서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소상공인연합회-편의점가맹점협회는 최저임금 인상 기조에 반발하며 ‘최저임금 불복종 투쟁’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지금 소상공인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다. 최저임금을 안 지켰다고 잡아가려면 잡아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보다 대기업의 과다출점, 가맹점 쥐어짜기, 임대료가 문제라는 정부 측 주장에 대해서는 “임대료나 가맹비 같은 것은 고정비다. 매년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다. 반면 최저임금은 지난 해 16.4% 올랐다. 소상공인들 다 죽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선 정부와 여당이 경제 정책 전반을 우클릭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은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 성장’을 뒷받침하는 핵심정책이지만 이를 수정하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 12일 경제 현안 간담회에서 이례적으로 고용 부진에 최저임금의 영향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동안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은 있었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부총리의 발언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소득주도 성장 대신 포용적 성장이라는 새로운 표현을 쓰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성과가 없어 초조하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혁신을 위해 지지층의 비판까지 감수할 결단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당내 토론회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만큼 용감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강 의원은 “최근 경제상황에 대해 여당 의원으로서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당시 발언은 우클릭하자는 것은 아니었다”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고집만 부릴 것이 아니라 모든 방법을 다 검토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9일 인도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난 것도 정책 기조의 변화로 읽힌다. 청와대는 “우리나라 기업이 현지에서 공장 준공식을 할 때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문 대통령의 행보는 부적절하다”며 “정권 차원에서 면죄부를 준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 한국당 전직 의원은 “사실상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대신 국내 경제 상황이 어려우니 투자를 많이 하라고 미션을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직 의원은 “통상적인 만남이라고 하는데 청와대가 그동안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은 안 만나지 않았나(※문재인 정부에 쓴소리를 했던 경총의 경우 대통령 해외순방 등에서 제외된 사례가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정책 기조에 큰 변화를 예고한 것이라고 본다. 검찰이 정권 눈치를 얼마나 보나.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검찰이 삼성전자 노조 사건과 관련해 구속 영장을 14건이나 청구했다. (정부가 친기업 기조를 내세우면) 앞으로는 (기업에 대한 수사 강도가) 많이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9일에는 청와대가 인터넷전문은행 규제완화에 반대하는 이학영, 박용진, 제윤경 의원 등을 정무위가 아닌 다른 상임위에 배치하도록 당 지도부에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도 인터넷전문은행 규제완화를 추진했지만 당시 민주당은 재벌의 사금고화가 될 수 있다면 강하게 반대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인터넷전문은행 규제완화를 다시 추진하려 하자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은 청와대에서 자신을 다른 상임위에 배치시키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상임위 배치) 결과가 나오면 다시 이야기하자”며 말을 아꼈다. 박 의원은 당청의 우클릭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부의 집중, 양극화가 가장 큰 문제였다. 웅녀가 쑥과 마늘을 먹고 견뎌 사람이 된 것처럼 지금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런 우클릭 기조에 대해 시민사회의 반발도 예상된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1년밖에 안됐는데 일부 지표가 안 좋다고 서둘러서 우클릭하면 안 된다. 오히려 일관되게 경제민주화, 소득주도성장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소장은 “(문재인 정부 일부 인사들도)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제가 망한 거처럼 말한다. 벌써부터 기조를 바꾸려고 한다면 시민사회의 비판과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지금까지는 인수위도 없이 출범했고 1년밖에 안됐기 때문에 비판도 자제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우클릭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했다가 지방선거 때 엄청 당하지 않았나(※지난 지방선거 당시 민주노총은 민주당 후보들 유세장을 따라다니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법인세 인하 등 경제 정책 기조를 바꾸면 그런 항의가 더 심할 텐데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의원은 “그렇다고 이대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경제 정책에 속도조절(최저임금 인상폭 조절, 주52시간 처벌 유예 등)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청와대나 당 모두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아예 방향을 (우클릭으로) 바꿔야 하느냐인데 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방향을 바꾸는 문제는 내부적으로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