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정책실장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인선 개입설의 파장이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번 논란은 곽 전 대표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CIO 공모 절차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지원을 권유하는 전화를 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곽 전 대표의 폭로가 나오자 청와대 관계자는 “장 실장이 추천한 것이 아니라 덕담으로 전화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곽 전 대표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전주로 불러 ‘CIO에 취임하시면 바빠지실 테니 미리 알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말했다”고도 발언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곽 전 대표는 자신이 탈락한 이유로 ‘청와대 윗선이 개입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6일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곽 전 대표의 낙마 이유로 인사검증 과정에서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해명했다. 가장 의심되는 부분은 병역 문제였다.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곽 전 대표는 “1990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면서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나이 때문에 3주 민방위 훈련으로 병역을 대체했는데 이 부분을 (검증) 자료 맨 앞장에 첨부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이 낙마 이유를 밝힌 6일 ‘노컷뉴스’는 ‘13살에 미국 이민을 간 곽 전 대표가 30세가 넘은 나이에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면서 병역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며 ‘특히 곽 전 대표 본인뿐만이 아니라 아들까지 비슷한 방법으로 병역을 수행하지 않아 의도가 명백한 병역 면탈로 봤다’고 구체적 탈락 배경을 보도했다.
결국 곽 전 대표가 떠나며 소동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지만 아직 미스터리는 여전하다. 먼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성주 이사장의 개입 문제다. 곽 전 대표는 장 실장이 전화를 걸어 기금운용본부장에 지원하라고 권유했고 실제로 지원해 사실상 내정됐다. 자기 사람 꽂기 아니냐는 의혹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소중한 600조 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장은 ‘내 사람’ 가리지 않고 전문가가 자리를 맡도록 해왔다. 이번처럼 기금운용본부장을 두고 충돌이 빚어진 건 처음 본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직 고위 관계자도 “그동안 기금운용본부는 독립성 확보를 위해 대내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나름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은 다시 정치권에 휘둘리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하기 충분하다”며 “장하성 실장이 무슨 권한으로 곽태선에게 전화를 걸어 본부장 자리를 권유한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정상적이지 않았던 인사 검증 부분도 논란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엄격하게 따지면 공무원이 아니다. 600조 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국가와 계약한 전문가다. 국민연금법에 광고를 통해 후보를 모집하고 국민연금공단 내 기금이사 추천위원회에서 심사하고 결정해서 계약하라고 나와 있다.
곽 전 대표는 자신이 CIO 공모에서 최고점을 받고도 탈락한 배경에 대해 장 실장의 ‘윗선’을 지목한 바 있다. 김성주 이사장이 지난 6월 초 곽 전 대표에게 전화로 탈락 소식을 전하며 “위에서 그런(탈락)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직제를 고려하면 장 실장의 윗선은 문재인 대통령뿐이다.
청와대는 검증 과정에서 탈락시킨 윗선은 직제상 윗선인 문 대통령이 아닌 민정수석실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CIO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민정수석실 개입은 법적 당위성이 부족하다. 민정수석실이 기금운용본부장 문제에 왜 개입했고 어떻게 곽 전 대표 아들의 병역 기록까지 입수해 낙마시켰는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에 9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CIO 후보를 검증한 것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요청에 대한 행정응원”이며 “대통령의 행정감독권 행사”라고 밝혔다. 조 수석은 “보건복지부 장관은 CIO 후보에 대한 승인권이 있으나 후보자 검증에 관해 독자적인 직무수행이 어려우므로 후보자 검증 사무에 관해 행정응원을 대통령비서실에 요청했다. 대통령비서실은 이에 응했다”고 설명했다.
조 수석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물론 청와대는 7대 비리, 즉 병역기피·세금탈루·불법 재산증식·위장전입·연구 부정행위·성범죄에 연루되면 인사에서 고위공직자를 배제하겠다고 천명해온 바 있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장은 공무원이 아닐 뿐더러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기식 전 금감원장 등 원칙에 어긋나더라도 써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밀어붙이는 모습도 보인 바 있다. 더군다나 곽 전 대표는 ‘윗선’을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그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 이유가 무엇인지 배경에 궁금증이 증폭할 수밖에 없다.
앞서의 기금운용본부 전직 고위 관계자는 “후보 공모 때부터 곽태선 전 대표가 내정됐었다는 말이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돌았다. 차라리 이대로 끝났으면 나을 뻔했는데 석연찮은 이유로 곽 전 대표가 낙마하자 또 다른 말들이 나온다. 이 자리를 두고 정권 실세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는 등의 얘기다. 기금운용본부가 정치적 외풍에 휘말린 것 같아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장하성 정책실장 권유와 내정됐던 상황을 폭로한 곽 전 대표는 최근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한다. 곽 전 대표는 폭로 후 청와대가 자신은 물론 아들 병역 문제까지 언론에 흘린 것에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주변 인사들에게는 당분간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곽 전 대표는 여전히 장하성 정책실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과거 출판 기념회나 강연회에서 여러 번 만나 명함도 주고 받고 따로 티타임도 가졌다는 것이다. 곽 전 대표는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그런 자리를 권유했겠느냐.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장하성이 발을 뺀 것 아니냐’며 ‘내가 억울한 점은 자리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사업 잘하고 있는 사람더러 도와달라고 그렇게 말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마치 나를 우리 부자를 병역 회피범으로 몰아가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주변에 토로했다고 전해졌다. 곽 전 대표의 속내와 별개로 그의 출국으로 이번 소동은 당분간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