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3일 오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5차 오후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13일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부인 민 씨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이날 오후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의 재판에서 민 씨는 흰 블라우스와 검은 바지를 착용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수척했지만 목소리는 또렷하고 분명했다. 증언을 이어가다가 감정에 복받쳐 울먹이기도 했으며 검사의 날선 질문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민 씨는 “당시 상황을 분명히 기억한다”며 ‘상화원 사건’을 설명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김 씨는 2017년 8월 19일 새벽 4시경, 안 전 지사 부부가 자고 있던 숙소의 2층 침실에 몰래 들어와 약 3~4분가량 머물렀다. 별 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으나 침대 발치에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당초 김 씨는 이 숙소의 1층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민 씨는 “내가 잠귀가 밝은 편인데 새벽에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와서 복도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아주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발끝으로 걸어서 들어오는 소리도 들었다”라며 “무슨 일인가 싶어서 살짝 실눈을 뜨고 내다보니 김 씨가 자고 있는 우리 부부의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민 씨는 이 ‘불청객’에 대해 “틀림없이 김 씨였다”고 단언했다. “어두워서 잘못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새벽이라 어둡긴 했지만 침실 방 한 쪽이 유리창으로 돼 있어서 실루엣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머리 모양과 몸매 등을 봤을 때 김 씨 외에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반박했다.
민 씨는 “매우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남편을 깨우러 왔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 씨를 눈치 챈 남편이 ‘지은아, 왜 그래’라고 묻자 김 씨가 ‘앗, 어’하고 당황하는 소리를 내며 후다닥 도망치듯이 내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안 전 지사에게 “저 사람이 왜 우리 방으로 들어왔느냐”고 묻자 안 전 지사 역시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것. 수행비서로서 안 전 지사를 깨우기 위해 들어온 것이라는 추측은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김 씨는 이후 민 씨에게 “너무 술에 취해 있어서 술을 깨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내 방인 줄 알고 실수했다”고 사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 씨는 김 씨의 사과를 받아 주긴 했지만 “이날부터 이 사람(김 씨)이 위험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극심한 불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초 김 씨는 상화원 사건과 관련해 “침실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방문 앞 계단에서 쪼그리고 있었다”고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 씨는 이에 대해 “명백한 거짓말”이라며 “침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서는 침대 맡에 서 있을 수 없는 구조다”라고 받아쳤다. 실제로 상화원의 침실은 방 출입문을 통해 들어온 뒤 책장형 파티션을 지나쳐야지만 침대를 볼 수 있게 돼 있다.
상화원 숙소의 침실. 출입문 통로와 침대 사이에 파티션으로 분리돼 있어 이쪽을 지나지 않으면 침실 안을 확인할 수 없다. 사진=상화원 제공
민 씨는 또 안 전 지사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김 씨의 별명이 ‘마누라 비서’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 지지자들은 김 씨가 안 전 지사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지지자들을 막는 것을 보고 “자기가 마누라도 아니고 왜 막느냐”는 불만을 민 씨에게 털어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씨가 민 씨의 눈앞에서 보인 행동에 대해 민 씨는 “오랜만에 애인을 만나는 여인의 느낌으로 안 전 지사를 대했다” “(안 전 지사가 함께한 격식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혼자 걸어 나가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땅바닥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여자라면 그 느낌을 알 것이다. (이성 앞에서) 귀여워 보이고 싶은 마음,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도 설명했다.
그럼에도 ‘상화원 사건’ 직후 왜 김 씨의 일을 문제 삼지 않았냐는 검사의 물음에 대해서는 “나는 인사권자가 아니라 평범한 주부이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김 씨의 일련의 행동이 그저 안 전 지사를 향한 ‘일방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인사를 조정해 달라고 하지 않고 그저 “(김 씨를) 유심히 지켜 봐 달라”는 당부를 안 전 지사의 주변인들에게 했다는 것이다.
‘상화원 사건’이 재판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김 씨 측도 재깍 대응에 나섰다. 김 씨의 소송을 지원하고 있는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 측은 상화원 사건에 대해 “김 씨는 수행비서 인수인계 당시 특정 여성 인사와의 모임 시 주의를 요한다는 인계를 받았다. 그런데 상화원 행사에서 그 여성 인사가 피고인과 옥상에서의 만남을 암시하는 듯한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낸 것을 확인했다”라며 “이에 김 씨는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피고인이 머물던 숙소 앞 연결 통로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의 입장을 대변했다.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안 전 지사와 민 씨가 묵던 숙소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 숙소는 1층과 2층, 옥상이 나선형의 계단으로 연결돼 있어 옥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출입문으로 들어온 뒤 반드시 계단을 지나야 한다. 이 때문에 불청객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옥상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계단을 막고 있었다는 게 된다.
이후 김 씨는 2층 침실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가 안 전 지사에게 모습을 들켰고, 이후 민 씨에게 사과한 부분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명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앞선 공동대책위는 “민 씨는 상화원 사건 이후 김 씨에게 홍삼을 보내고 스스럼없이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다. 김 씨는 상화원 일이 있고 한참 후인 2017년 12월 20일까지 수행비서 업무를 수행했다. 민 씨가 평소에도 김 씨를 의심했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겠나”이라고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위력 부분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고민하고 있는데 다른 쪽으로 사회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라며 “사안과 무관한 공격은 자제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증인 신문에서 안 전 지사의 변호인 측은 김 씨의 행실을 문제 삼은 질문을, 검사 측은 민 씨가 상화원 사건 당시 바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이유를 반복적으로 질문해 재판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안희정 측, 증인·증언 물량 공세+상대 증인 고소까지 안 전 지사 측이 7명의 증인을 신청해 공개적으로 증언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김 씨의 평소 행실에 초점을 맞춘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 씨 측 변호인단은 “피고인 측 증인의 발언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돼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심각하다”라며 “피해자에 대한 주변 평가 등을 공개하는 증인 신문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악의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공개로 증언한 피해자 측 증인에 대해서 안 전 지사 측이 고소에 나서면서 “증인 입막음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수행비서를 위력으로 성폭행한 혐의 등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이 예정된 가운데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 회원들이 미투 폭로자를 지지한다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최준필 기자 안 전 지사 측 증인이 연달아 나온 13일 재판에서도 피해자의 평소 행동이나 발언, 주변 평판이 거론됐다. 안 전 지사의 경선캠프에서 김 씨와 함께 일했던 성 아무개 씨는 이날 오전 재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해 “김 씨가 안 전 지사를 아이돌 보듯이 대했다. 이제까지 김 씨가 쓴 ‘하늘’이라는 단어는 안 전 지사를 지지하고 높일 때 쓰는 단어지 범접할 수 없는 권력처럼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김 씨와 ‘오누이’로 불릴 정도로 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해 9월 스위스 출장 당시 김 씨로부터 먼저 문자 연락을 받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성 씨는 “안 전 지사와 스위스에 출장 중이던 김 씨가 ‘오빠 뭐 해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 내용에 ‘ㅋㅋㅋ’ 등 웃는 모습이 있어서 별 다른 문제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시기는 김 씨가 “해외 출장 중에도 성폭행이 있었다”고 증언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이 직후 스위스에서 귀국한 김 씨는 성 씨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헤어졌다. 어차피 서로 안 될 사람인데, 이제는 연락 못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성 씨는 “연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 이 문자를 받고 누구냐고 물어봤는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이후에도 (성폭행) 피해와 관련해서 내게 호소하거나 연락한 적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증인으로 출석한 충남도청 공무원 김 아무개 씨의 신문에서는 안 전 지사의 러시아 출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7월 27일~8월 1일까지 이어진 러시아 레닌그라드 주 출장에서 안 전 지사는 김 씨를 성폭행, 강제 추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성폭행은 숙소인 호텔에서, 강제 추행은 안 전 지사를 포함해 출장에 참석한 인원 6명이 모두 함께 보트를 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것. 이에 대해 증인 김 씨는 “(강제 추행이 일어났다는) 보트에서 그런 상황은 본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호텔에서의 성폭행과 관련해서는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증언하지 않았다. 다만 사건 이튿날 아침 피해자 김 씨가 “지사님은 순두부찌개를 좋아하시니 아침에 꼭 먹어야 한다”며 안 전 지사의 식사를 챙겼다는 점을 짚었다. 증인 김 씨는 “(성폭행 사건 발생 후) 귀국날 아침까지 꼭 순두부를 먹어야 한다며 결국 영사관에서 순두부를 구해다 먹게 했다. 이때도 별다른 이상 징후는 보지 못했다. 평소와 같은 태도였다”고 증언했다. 안 전 지사 측은 증언 물량 공세를 이어나가는 한편, 피해자 김 씨 측의 증인으로 나선 관계자를 ‘모해 위증’ 혐의로 고소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지난 9일 3차 공판 기일에서 김 씨 측 증인으로 출석한 안 전 지사 대선 경선 캠프 자원 봉사자 구 아무개 씨는 “안 전 지사가 사건을 취재하려 한 언론사의 간부에게 전화해 취재 중단을 지시했다. 기사를 막아 주면 부인의 인터뷰를 잡아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김 씨를 돕고 있는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1일 밤 입장문을 내고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안 전 지사에게 사실 확인을 하고 고소했다고 하지만 피고인이 이를 자세히 소명하거나 인정할 리 만무하다”며 “공판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고소로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런 액션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에 대한 본보기 응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