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청주시는 길고양이 과잉번식에 따른 시민 불편 등을 해소하기 위해 2008년부터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추진해왔다. 초기 100~200마리의 길고양이를 수술하는 것에 그쳤던 해당 사업은 2015년과 2016년 각각 약 700마리의 수술 건수를 기록하며 대폭 확대됐다. 청주시 관계자는 “2016년까지 A 민간 동물병원이 해당 사업을 담당하다가 지난해부턴 청주시 반려동물보호센터가 이를 전담 운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은 일명 ‘TNR’ 사업이라 불리며 몸무게 2kg 이상의 길고양이를 포획(Trap)해 중성화 수술(Neuter)을 진행, 방사(Return)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지자체들은 일반적으로 지역 동물병원 등과 계약을 맺고 사업을 진행, 수술을 마친 길고양이 한 마리 당 10만 원가량의 지원금을 해당 병원에 지급한다. 병원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증빙자료를 작성한 뒤 지자체에 제출해 확인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올 초부터 청주시에서 길고양이들이 중성화수술이 안된 상태로 방사되는 일이 잦아진 것. 이로 인해 담당 동물병원과 시 공무원이 부당한 방식으로 지원금만 타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병원은 중성화수술을 마친 고양이에게 그 표식으로 수컷은 오른쪽 귀, 암컷은 왼쪽 귀 끝부분을 잘라 일명 ‘귀커팅’ 흔적을 남긴다. 청주 반려동물보호센터에 따르면, 최근 귀커팅된 고양이들이 임신한 경우를 적지 않게 발견했다고 한다. 센터 관계자는 “올 들어 주민들 불만이 늘면서 직접 고양이들을 포획해 살펴봤더니 10마리 가운데 1마리꼴로 귀커팅된 고양이들이 젖이 부풀어 오르는 등 임신 상태였다”며 “이들은 병원만 거쳐 나왔을 뿐 수술은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당 병원이 길고양이 중성화 과정을 기록, 지원금을 받기 위해 청주시에 증빙자료로 제출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관리카드’가 허위로 작성된 경우도 상당했다. 관리카드는 품종·몸무게·성별·건강상태 등 길고양이의 기본 이력과 포획 시 현장 사진과 수술 후 사진, 방사 사진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2016년 자료에서 서로 다른 관리카드에 동일 고양이 사진이 중복 사용됐거나, 사진에 나타난 포획·방사날짜와 관리카드에 기재된 날짜가 서로 다른 경우가 여럿 발견됐다. 이밖에 관리카드에 기재된 포획장소와 실제 포획 시 찍은 현장사진이 상이한 경우, 암수 구별이 잘못된 상태로 귀커팅된 경우, 3장의 사진 속 고양이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 등도 있었다.
허위로 작성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관리카드’. 수술사진 중복사용.
왼쪽 사진=관리카드와 사진에 기재된 포획장소 불일치 / 오른쪽 사진=방사날짜 불일치
센터 관계자는 “본래 수술을 마친 고양이는 엎드려 있을 수 없는데 지금 대부분이 엎드려 있고 수술로 적출한 자궁 모습도 사진엔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포획 사진도 포획현장이 아닌 대부분이 집안 방바닥을 배경으로 찍혔다”며 허위 조작된 관리카드만 수백 건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담당 공무원이 병원과 담합해 이러한 허위자료를 용인, 지원금을 빼돌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과거 실제 중성화 사업 진행을 도왔던 익명의 관계자는 지원금 책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한 마리를 중성화하는 대가로 병원에 지급하는 10만 원은 수술비뿐만 아니라 포획·마취·약품·사료비 등을 모두 고려해 책정된 금액이다. 만약 포획작업을 병원이 고용하거나 시가 지정한 포획업자가 아닌, 평소 길고양이를 보살피던 일명 ‘캣맘’ 등이 했다면 포획 수당비는 빠져야 한다. 관계자는 “일부 고양이들은 워낙 예민하다보니 포획이 어려워 그들과 친숙한 캣맘이 병원으로부터 수면제 등을 받아 대신 잡아줄 때도 많다”며 “그런 경우 포획 수당은 빠지는 게 맞는데 사실상 지금은 이에 대한 구분 없이 그대로 일괄 지급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청주 반려동물보호센터 관계자는 올 초 이와 관련해 민원을 제기했지만, 청주시는 ‘농림축산식품부 고시에 따라 귀커팅된 고양이를 즉시 방사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만 보냈다. 시는 문제 제기된 2016년도 중성화 사업만 조사해 중복 사진을 사용한 60건의 관리카드를 적발했을 뿐, 그 외 허위제출 건이나 이전 연도에 대한 조사는 아직까지 실시하지 않고 있다.
해당 사업 담당 공무원과 2015년 8월부터 1년 넘게 청주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담당한 A 동물병원 수의사는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A 동물병원 관계자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빚어진 실수”라며 “과거 사업을 담당한 동물병원은 놔두고 왜 우리만 지금 타깃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청주시 관계자는 “물론 주의를 기울여야 했겠지만 관리카드 진위여부 등은 결국 육안으로 확인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고, 담당 병원선정은 공고를 통해 정당하게 이뤄졌다”며 “향후 수사결과에 따라 이전년도 사업 조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성화 사업 지원금 횡령 의혹은 청주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시와 경기도 양평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 지난해 부산의 한 동물병원 수의사는 한 시민이 기르는 애완용 고양이를 길고양이로 속여 중성화 수술을 진행, 지원금을 타낸 혐의를 받았다. 부산 연제구청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으로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양평군은 과거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진행에 문제가 생겨 2016년 담당 동물병원을 바꾼 상태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러한 논란이 일부 사업 참여자의 실수로 발생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서울시를 포함해 지원금만 받고 실제로 수술을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엔 캣맘들이 중성화 전 과정을 감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상임이사는 “제도적 결함과 수의사의 비도덕적 행위에 따른 것”이라며 “우리가 입수한 자료만 살펴봐도 이러한 사건이 실수로 빚어졌다고 보긴 힘들며 중복 자료 청구는 중성화 사업뿐만 아니라 유기동물 구조사업 등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