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가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재벌 불법파견 및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 하후상박 연대임금 관철, 금속산업 노사공동위 설치, 사법부·노동부 적폐세력 청산, 최저임금 개악법 폐지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현대제철은 인천, 순천, 포항 등에 제철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근로자는 1만 922명이고 그 중 비정규직은 189명에 불과해 비정규직 비율이 1.73%다. 우리나라 300인 이상 기업의 평균 비정규직 비율이 40%에 육박하는 것에 비하면 정규직 비율이 극단적으로 높은 셈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제철의 비정규직 비율은 정규직 직원보다 많다.
현대제철은 외주사, 사내하도급, 하청의 재하청 등 간접고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1차 협력업체 직원이 4000여 명이고 2, 3차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현대제철에서 일하는 근로자 중 간접고용 인원이 전체 노동자의 60~70%에 육박한다. 작업장의 힘들고 위험한 일들은 정규직 직원보다 비정규직이나 사내하청근로자가 담당한다는 것이 지회의 주장이다. 결국 사내하청이라는 불법파견 방식으로 근로자를 활용해 임금 및 복지에 차별을 두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 5일 현대제철이 돌연 협력업체 22개 사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22곳 가운데 14개 사는 전체공정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업력 3~5년 사이의 중소업체들은 하루아침에 밥줄이 끊기게 됐고 이들 업체에 속한 사내하청근로자는 1300여 명에 달한다. 하청근로자들은 고용불안과 노조교섭력 약화 등을 노리고 노조의 힘을 빼기 위해 사측이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5년을 주기로 협력사들을 유지·관리하고 1년 단위로 도급계약을 맺어왔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6개월 단위로 도급계약을 맺어 노동자와 협력업체는 불안감이 컸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일방적으로 이유도 모른 채 계약이 종료돼버린 협력업체는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됐다. 이상하게도 정작 도급계약이 해지된 중소업체 22개 사 가운데 반발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일요신문’이 접촉한 업체 대표는 대부분 “억울한 점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A 업체 대표는 “밥줄이 끊긴 것은 맞지만 억울해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 통상 도급업체는 원청에 대해 절대적 을의 입장에 있다. 도급계약이 일방적으로 끝나 억울할 텐데도 도급업체 대표들이 함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도급업체 대표들은 대부분 현대제철을 퇴직한 부장 이상 간부급이다. 실제로 구매협력팀, 인사팀 등의 고위직 직원들이 퇴임 후 차린 업체가 다수다. 이들은 협력업체를 차려 3~5년간 일감을 받아왔다.
B 업체 대표는 “두어 군데 빼고 협력업체들은 거의 현대제철 퇴직 임원이 차린 회사다. 도급계약이 해지돼도 아무 말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도급업체는 현대제철이 가격을 후려치든 어떻게 하든 내미는 계약서를 읽어보지도 못하고 도장만 찍을 뿐이다”고 토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협력업체들은 현대제철이 일방적 도급계약 해지와 같은 강수를 두는 것은 불법파견 꼬리 자르기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2016년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철강업계 최초로 현대제철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사내하청업체가 원청인 현대제철로부터 지휘명령을 받았는지 여부와 기술력 등의 판단기준을 고려해 “원고들은 각 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사업장(현대제철)에서 원청의 지휘감독을 받는 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봐야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 하청근로자들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주문했다.
비정규직지회와 협력업체들은 현대제철이 외부 컨설팅을 받아 일방적 도급계약 정리 및 노무관리를 한다고 주장했다. 앞의 B 협력업체 대표는 “올해부터 갑자기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더니 아무런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살길이 막막하고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주 52시간제 도입 때문에 기존의 도급관계를 해지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철강업 특성상 24시간 4조 3교대를 돌리는데 주 52시간제가 도입돼 중소 협력업체로는 이에 대응이 안 된다. 협력업체 대형화를 통해 경영효율화를 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존 협력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고 그 업체가 맡던 일감을 다른 협력업체로 떼어 붙이는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홍승완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현대제철의 협력업체들 사이의 분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등이 우려되고 고용 불안정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노조관리와 노사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현대제철이 또다시 외부 컨설팅 업체에 용역을 맡기고, 일방적 도급업체 계약해지를 강행하자 정부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불법파견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협력업체를 입맛대로 떼어 붙이는 과정에서 주 52시간제를 핑계삼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앞의 현대제철 관계자는 “협력업체를 우리가 떼어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협의를 통해 진행할 것”이라며 “현업 부서에서 필요할 경우 외부 컨설팅에 용역을 줄 수 있지만 이는 대외비라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