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원장 나눠먹기는 2년마다 일어나는 구태정치다. 이번 20대 국회 후반기에도 상임위원장직을 1년 또는 6개월 단위로 쪼개 배분하는 상황이 재연되며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박은숙 기자
지난 16일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을 위한 상임위원장 배분이 완료됐다. 각축전을 이어가던 여야는 더불어민주당 8개, 자유한국당 7개, 바른미래당 2개, 민주평화당 1개의 상임위를 가져갔다. 이후 각 당은 내부적으로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또 한 번 수싸움을 벌였다. 이 가운데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것은 한국당이다.
한국당의 해묵은 계파싸움을 보여주듯, 일부 상임위에서 친박계‧비박계 의원이 1년씩 상임위를 나눠 배정받는 모습이 연출됐다. 한국당 몫의 7개 상임임위원장직 중 5개는 두 명의 의원이 번갈아 담당하기로 했다. 20대 국회 후반기 2년을 1년씩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일부 상임위의 경우 전반부와 후반부를 친박계 의원과 비박계 의원이 한 번씩 맡는다는 것이다. 외교통일위원장의 경우 전반부는 비박계 강석호 의원, 후반부는 친박계 윤상현 의원이 맡는다. 보건복지위원장도 전반부는 친박계 이명수 의원, 후반부는 비박계 김세연 의원이 담당한다.
한국당은 경선을 실시해 상임위원장을 정하기도 했다. 법제사법위원장은 비박계인 여상규 의원이 친박계인 주광덕 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했고, 환경노동위원장도 비박계인 김학용 의원이 친박계인 이장우 의원과의 경선에서 이겼다. 이 두 상임위 외에 다섯 개의 상임위가 1년씩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 이유는 경쟁 과열에 따른 반발을 막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3선이 너무 많은데 한 번씩 다 시켜주려니 서로 싸움이 나지 않겠느냐. 일부 상임위만 경선을 하고, 나머지 상임위들은 비박과 친박이 사이좋게 나눌 수 있도록 김성태 원내대표가 교통정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년 단위여야 할 상임위원장 자리를 1년으로 쪼개는 것으로도 부족해 6개월짜리도 등장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안상수 의원이 배정받았는데, 6개월만 맡은 뒤 황영철 의원이 1년 반을 맡기로 했다. 이는 안 의원이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 예정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당뿐 아니라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배정받은 총 8개의 상임위원장 중 기획재정위원장과 행정안전위원장, 여성가족위원장 3개의 위원장직을 1년씩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눴다. 이 중 행안위원장과 여가위원장은 인재근 의원과 전혜숙 의원이 각각 맡기로 했는데, 1년 뒤에 이 두 자리를 서로 맞바꾸기로 했다. 두 의원 모두 여가위원장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정성호·이춘석 의원이 각각 1년씩 나눠 맡기로 한 기재위원장의 경우는 결이 다르다. 지역구 SOC 사업 예산을 쉽게 따올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있는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는 분석이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에 대해 “SOC 사업 예산 때문은 아니다”라며 “3선 의원들이 참 많은데 자리가 한정돼 있다보니 당내 화합 차원에서 서로 양보해서 1년씩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성호 의원실 관계자는 “원내대표실 지시대로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선과 3선 의원들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도 있었다. 상임위원장은 관례상 보통 3선 의원들이 맡는다. 하지만 한국당에선 재선 의원들이 상임위원장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장우‧주광덕 의원은 재선임에도 환노위원장과 법사위원장 경선에 나섰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친박계다. 현재 한국당은 비박계인 김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비대위 체제로 흘러가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친박계인 이 의원과주 의원이 경선에 도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팽배했다.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다른 데에선 다 합의했는데 왜 법사위와 환노위만 경선을 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김 원내대표도 “3선 중진이 맡는 상임위원장들을 재선 의원들이 뺏으려 하고 있다. 이 의원과 주 의원이 대표적”이라며 “독한 ‘홍준표 대표 체제’ 아래에서 숨죽이고 있던 친박 세력들이 다시 당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관례를 벗어난 상임위원장 배정도 있었다. 국회 전반기 정보위원장을 맡았던 강석호 의원은 이번에 비록 1년이지만 후반기 외통위원장을 맡게 됐다. 상임위원장은 연달아 맡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강 의원은 이례적인 경우였다. 이에 강 의원실 관계자는 “정보위원장을 8개월밖에 안 맡았고 대북 관련 이슈 등 겹치는 부분이 많아 외통위원장을 맡게 됐다”며 “당 내에서도 조율이 잘 됐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관계자는 “관례대로라면 그렇게 맡으면 안 되지만, 정보위원장은 ‘겸임’이기 때문에 이번에 외통위원장을 맡아도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당에서 특히 ‘1년 단위 나눠먹기’가 만연한 걸까.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상임위원장 자리가 당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자산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총선에서 자신의 입지가 올라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며 “2년을 1년으로 나누고 이마저도 6개월까지 나누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드러나면 국민들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법 41조 4항은 ‘상임위원장의 임기는 상임위원의 임기와 같다’라고 명시하고 있고, 40조 1항은 ‘상임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상임위원과 상임위원장의 임기는 2년을 지켜야 맞지만,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이는 임기가 2년인 상임위원들 안에서 상임위원장을 뽑으라는 의미일 뿐, 2년을 다 채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권은 이같이 계파와 선수, 단기간 상임위를 나눠먹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문성과 경력 등의 기준과 원칙을 두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사실상 전문성은 상임위의 간사에게나 필요한 거다. 상임위원장은 리더십 있고 회의만 잘 이끌어 가면 된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