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메이저리그는 신인선수를 뽑는 일을 ‘달빛 속에서 미인 고르기’라고 표현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지만, 울창한 숲속에서 최고의 재목을 골라내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잘 고른 신인 한 명이 구단의 10년을 결정하는 시대. 스카우트들의 자부심만큼이나 애환도 커져 간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선수 보는 눈’을 인정 받아 KBO 리그 감독이 된 송일수 전 두산 감독. 두산 베어스 제공
대부분의 구단은 은퇴한 선수들 가운데 시야가 넓은 인물들을 스카우트로 채용한다. 보통 구단마다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 스카우트팀을 꾸리고 있다. 팀장급은 대부분 그 분야에서 10년 이상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다. 현장에서 직접 유망주들을 지켜보고 육성해왔던 2군 감독 출신들도 많다. 재일교포인 송일수 전 두산 감독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한 경력 덕분에 오로지 ‘선수 보는 눈’ 하나로 KBO 리그 감독까지 경험하기도 했다.
스카우트들은 1년 내내 전국을 누벼야 한다. 전국 고교야구대회는 물론이고, 지역예선과 학교 연습경기까지 빠짐없이 챙겨본다.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 내후년을 대비해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수도권 구단 A 스카우트는 “한 시즌이 끝나면 이듬해 1월까지 다음 시즌 지명 대상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살펴본다. 해마다 고3 야구 선수 1000명 정도가 졸업을 하는데, 그 가운데 이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250명에서 300명 정도를 1차로 추려낸다”며 “그 다음엔 1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지방 곳곳을 돌면서 훈련하는 모습과 경기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러면서 대상자 폭을 더 좁힌다”고 설명했다.
오늘은 부산, 내일은 광주, 모레는 대구로 이어지는 살인적 일정. 12월 한 달을 제외하면 늘 출장의 연속이다. 게다가 지켜봐야 할 선수는 너무 많다. 하지만 한 번 봤다고 판단을 끝낼 수도 없다. 어린 선수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과 하락을 반복한다. 몇 달 전의 데이터도 쓸모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직접 눈으로 직접 봐야 안심이 된다.
A 스카우트는 “지난해 경기에 안 나간 선수들 가운데 올해 잘하는 선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반대로 잘하던 선수의 실력이 더 좋아지거나 반대로 줄어들 수도 있다”며 “봐야 할 학교는 100개가 넘는데, 하루에 한 학교씩만 가도 3개월이 훌쩍 간다. 뽑고 싶은 선수는 최소 몇 번씩은 봐야 하는데, 준비 기간은 200일이 조금 넘으니 폭 넓게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구단 B 스카우트 역시 “시즌 초에는 모든 학교를 한 번씩 다 둘러본다는 목표를 세우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약팀부터 먼저 살펴보고 핵심 팀을 분류한다”며 “저학년 때부터 선수들을 지켜봤기 때문에 지명 후보들도 어느 정도 결정돼있다. 그 안에서 누락됐던 선수가 없는지 찾아내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 스카우트 전쟁은 체력과 눈치 싸움
전국대회가 열리는 기간엔 말 그대로 ‘아침부터 밤까지’ 야구만 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야구를 하고 있는 ‘선수들’을 본다. 눈이 얼얼하고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A 스카우트는 “3월 초중순부터 서울권 리그가 시작된다. 그러면 (고교야구 경기가 열리는) 목동구장에 상주하게 된다”며 “전국대회를 하면 일주일 넘는 기간 동안 하루에 서너 경기가 매일 열린다. 오전 9시에 첫 경기를 시작하고, 마지막 경기는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에 끝나기도 한다. 그 경기를 다 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 경기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첫 세 경기를 열심히 봐놓고 마지막 네 번째 경기를 건성으로 지나치면, 그 경기에 나온 선수는 뭐가 되겠냐”며 “우리의 판단과 결정에 그 선수들의 인생이 달렸다고 생각하면 한 경기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루의 경기 일정이 끝나면 그날 본 선수들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선수들을 찍은 영상을 편집한다. 매주 회의도 해야 한다. 관심 있게 본 선수들을 지명 후보 리스트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작업이다. 6월 진행되는 1차 지명이 첫 번째 고비다. A 스카우트는 “1차 지명은 가장 실수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주로 1차 지명 선수 위주로 지켜보고, 그 주변에서 열리는 게임들을 보면서 대상자를 체크해 데이터를 쌓는 방식으로 한다”고 했다.
연고지역 선수 가운데 한 명을 뽑는 1차 지명이 끝나면 진짜 다른 구단들과의 ‘전쟁’인 2차 지명이 기다리고 있다. 6월부터 8월까지 스카우트들의 막바지 작전 싸움과 치열한 눈치 경쟁이 펼쳐진다. A 스카우트는 “1라운드는 어느 정도 뽑힐 만한 선수들이 정해져 있지만, 그 다음부터는 구단마다 보는 관점이 너무 다르다”며 “우리가 4라운드에 뽑겠다고 정해 놓은 선수가 있어도, 다른 구단은 그 선수가 너무 필요해서 2라운드에 뽑아 버릴 수도 있다”고 했다. “어떤 팀이 어느 선수를 보고 있느냐도 잘 파악을 해놓아야 지명 전략을 잘 짤 수 있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신경전도 펼쳐진다. C 스카우트는 “항상 같은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각 구단 스카우트끼리 친하게 지내지만, 또 결정적일 때는 말을 아끼게 되는 부분이 있다”며 “멀쩡해 보이는 선수가 사실 부상이 있다거나 개인 생활에서 안 좋은 면이 있다는 것과 같은 정보도 누가 더 많이 갖고 있느냐 싸움이기 때문에 숨겨야 할 것도 많다”고 전했다. D 스카우트는 “거짓 정보도 많이 흘린다”고 고백했고, E 스카우트는 “지명선수가 결정되면 일부러 학교에 찾아가지 않고 관심 없는 척한다. 그래서 스카우트들끼리는 진실을 말해도 서로 안 믿을 때가 많다”며 웃기도 했다.
# 선수들은 ‘몰래’ 지켜본다
과거에는 스카우트들이 선수 본인이나 선수 가족에게 접근해 환심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역대 최고 투수 선동열을 놓고 벌어진 프로와 아마의 스카우트 전쟁, ‘황금의 92학번’ 임선동-조성민-손경수를 둘러싼 서울 구단 LG와 OB(두산의 전신)의 눈치 싸움은 여전히 전설로 남아 있는 일화다.
발품도 필수였다. F 구단 스카우트팀장은 팀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하다 지금은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한 투수 G를 데려오기 위해 1년간 G의 모교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훈련 때 배팅볼 투수를 자청했고, 전지훈련까지 따라갔다. G 선수의 훈련이 끝나면 밥을 사주고 집에 데려다줬다. 선수의 아버지에게도 끊임없이 안부 전화를 건 것은 물론이다. F 팀장은 다행히 계약에 성공해 보람을 느꼈지만, 이 정도 노력을 기울이고도 결국 선수를 데려오지 못한 사례도 허다했다.
영화 ‘스카우트’ 포스터
A 스카우트는 “확실하게 영입 후보에 오른 선수들은 소속 학교에 수차례 불시에 찾아가서 몰래 지켜본다. 앞에 나타나 대놓고 체크하면 선수가 갑자기 너무 열심히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평소 생활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며 “어떻게 경기하는지도 중요하지만, 평소 훈련 태도나 인성도 중요하게 여기는 구단이 많아 멀리 떨어져서 몰래 보게 된다. 선수와는 접촉하지 않고 감독이나 코치와 대화를 나누는 편”이라고 했다.
지명 시기가 다가오면 전략을 잘 세우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날고 기는 외야수가 있어도 비슷한 스타일의 유망주가 팀에 많다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반대로 무조건 뽑아서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포지션도 팀 별로 다르기 마련이다. 지명회의가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상황을 대비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도 마련해 놓는다.
# 잘해도 본전이라 슬픈 스카우트의 애환
하지만 그렇게 애써 뽑은 선수가 프로에서 펄펄 날아도 칭찬은 별로 못 받는다. 다들 “현장에서 잘 키운 덕분”이라고 한다. 반대로 몇 년 동안 신인 선수가 성장하지 못하면 “잘못 뽑은 탓”이라고 비난한다. 이래서 스카우트들끼리는 자신들의 현실을 ‘잘하면 본전, 못하면 역적’이라고 표현한다. H 스카우트는 “우리 팀에서 성장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지나친 선수가 타 팀에 가서 잘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A 스카우트 역시 “수억 원을 주고 데려온 선수가 한 게임도 못 던지고 수술을 하는 일도 있다. 그렇다고 안 뽑을 수도 없는 선수였기에 우리로선 괴로운 일”이라며 “요즘에는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선수는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그냥 뽑는 추세다. 좋은 자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팔을) 고쳐서라도 쓰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고교야구 유망주들은 ‘베이징 키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보고 야구를 시작한 황금 세대들이 서서히 프로로 밀려드는 시기라서다. 지난해 신인왕 이정후(넥센)나 올해 신인왕 후보인 강백호(KT) 등이 그 대표주자. 시속 150km 강속구를 던지는 고교생 투수들 소식도 자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스카우트들은 ‘선수 난’을 허덕인다. A 스카우트는 “좋은 선수가 많긴 하지만, 과대포장이 된 면도 있다. 공이 빠른 투수들은 넘쳐 나는데 여전히 게임 운영을 잘하는 투수들은 많지 않다”며 “야수들은 더 어렵다. 투수들은 그래도 한두 명씩 즉시전력감이 보이지만, 야수들은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들의 고충을 알아준다. E 스카우트는 “지명된 뒤 부모님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 선수들을 보면 나도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했다. A 스카우트도 “내가 뽑은 선수가 단시간에 1군에 올라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며 “그런 선수들이 연락을 해와 ‘뽑아줘서 감사하다’고 하면 더 큰 보람이 느껴진다. 그런 마음이 힘든 일을 버티는 데 큰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미국까지 찾아갔는데 경기 안 나오면 허탈” 외국인 스카우트도 힘들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는 신인 스카우트보다 즉각적인 부담이 더 크다. 미래를 내다보고 뽑는 신인들과 달리, 외국인 선수는 당장 핵심 전력으로 활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인들은 계약금 외에 KBO 리그 최저 연봉을 받고 뛰지만, 외국인 선수들은 팀 내 베테랑 선수들보다도 몸값이 더 비싸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의 성패가 팀의 한 시즌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 구단을 거치면서 8년간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를 담당했던 한 야구 관계자는 “5년은 해봐야 외국인 선수를 뽑는 데 노하우가 생긴다. 시즌 중에 대체 외국인선수를 뽑는 일은 특히 더 어렵다”고 했다. 스카우트들은 구단 안팎의 인맥을 활용해 자체 외국인선수 후보 리스트를 작성한다. 라이언 사도스키나 브랜든 나이트처럼 아예 KBO 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외인 스카우트 담당으로 영입했던 팀도 있을 정도다. 당연히 같은 선수가 여러 구단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잦다. 후보가 10여 명으로 압축되면 비행기에 오른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2∼3월), 트리플A 경기(7∼8월), 중남미 윈터리그(11∼12월)를 주로 찾는다. 한 번만 보고 판단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이 관계자는 “일단 처음에는 60여 개 마이너리그 팀을 꼼꼼하게 둘러봐야 한다. 리스트에 있는 선수를 보러 갔다가 다른 선수가 눈에 들어와 뽑는 일이 더 많다”며 “가장 허탈한 경우는 꼭 직접 보려고 미국까지 찾아간 선수가 경기에 나오지 않을 때다.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에이전트가 아예 만나지도 못 하게 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유력한 후보를 점찍은 후에는 그 선수가 소속된 팀의 메이저리그 40인 엔트리를 확인해야 한다. 실제 경기에 출전하는 25인 로스터에 들어있지 못해도, 40인 엔트리에 속한 선수는 언제든 빅리그로 콜업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잘 떠나려 하지 않는다. 베테랑 외국인 스카우트들은 그동안 에이전트나 구단과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그 선수의 방출 예정 여부나 금전적인 문제를 몰래 전해 듣는 이점을 누리기도 한다. 한 구단 운영팀장은 “실제로 KBO 리그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이후, 현지에서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을 설득하는 게 좀 더 쉬워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선수를 뽑을 때 야구 실력만큼 중요한 것은 성품과 자세다. 앞서 언급한 관계자는 “외국인선수를 잘 뽑으려면 기량을 떠나 멘탈과 마인드가 중요하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절실함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오직 한국에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찬 선수들도 협상이 쉽지 않다. 라커룸 생활이나 등판 일정을 놓고 향후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서울 한 구단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는 현지에서 일부러 선수와 식사 자리를 마련해 말투와 태도, 교양을 살피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