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14일 오후 서울광장을 출발해 도심을 한바퀴 도는 ’퀴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퀴어(queer)‘는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영어단어로, 퀴어문화축제는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최준필 기자
# 시청 광장에서 “성소수자 이곳에 있다” 외침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축제는 2000년부터 근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부분 신촌이나 홍대, 종로 등 이른바 ‘게이 스트리트’로 불렸던 지역에서 열렸던 탓이다. 서울시청 광장이 이들에게 문을 연 것은 지난 2015년부터다.
물론 반대와 억압의 목소리가 없었을 수는 없다. 퀴어문화축제의 단골손님인 반동성애 개신교 단체는 물론이고 성소수자들의 노출 퍼레이드, 성 관련 기구들을 현장에서 판매한다는 점 때문에 일부 학부모 단체에서도 지속적인 반대 의견을 밝혀왔다. 어린아이들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대낮의 서울시청 광장에서 ‘낯 뜨거운 광경’이 펼쳐진다는 이유였다.
지난 14일 열렸던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도 여전히 개신교 단체와의 대립이 이어졌다. 축제 당일에는 별다른 물리적 충돌이 없었지만 해당 단체는 축제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난 19일 현재까지도 시청 앞 광장에서 동성애 반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반대와 위협에도 시청 앞 광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서울의 중심부’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청 광장에서 축제가 열리기 시작한 2015년부터 퀴어축제 참가 인원은 늘 역대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7월 14일 열린 제19회 서울 퀴어문화축제 현장. 최준필 기자
# “대낮에 낯 뜨겁게” 반대 세력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퀴어문화축제의 가장 큰 논란은 선정성이다. ‘자유로운 성’을 주장하는 성소수자들의 행사다 보니 성적인 문구가 적힌 피켓이나 성 관련 상품 등이 대낮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기 때문. 지난 14일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도 남녀의 성기 모양을 본 딴 상품이나 자위 기구 등이 그대로 전시, 판매돼 논란을 낳았다.
특히 가장 많은 인원이 운집하는 ‘퀴어 퍼레이드’의 경우는 심한 노출을 한 참가자들로 인해 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이는 이미 지난 2015년 서울역 광장을 이들에게 개방하면서부터 문제시 돼왔던 주제기도 하다.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이 높은 장소이니만큼 서울시청 공무원들이 계도에 나서고는 있지만 강제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일었다. 실제로 지난 14일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는 상의를 벗은 여성 참가자가 활보해 담당 공무원에게 제재 요청이 빗발쳤으나 어떤 대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성소수자들은 “사회에서 억압받은 소수자들이 퀴어축제에서만큼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며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에 직접 참가하지도 않는 일반 대중들의 ‘불편하다’는 주장에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는 입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다만 축제의 규모가 매년 커지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청 광장의 개방성,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 등을 고려해 문제가 된 노출과 성인용품 판매, 자극적인 문구 등을 수정해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19회 서울 퀴어문화축제 현장. 최준필 기자
# 역대 최다 인원 기록하고도 후원금 부족…이유는 ‘여성의 보이콧’?
이처럼 해가 갈수록 참가 인원이 늘고 있는 퀴어문화축제가 올해 역대 최다 인원을 기록하고도 후원금이 부족해 모금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올해 후원금 모금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 성소수자들의 ‘퀴어문화축제 보이콧’ 때문이다.
성소수자들이 단 하루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보이콧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18회 퀴어축제 직후 마련됐던 ‘애프터 파티’에서 여성 성소수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
당시 애프터 파티는 서울 이태원의 유명한 게이바에서 진행하기로 돼 있었다. 이곳은 평상시 남성 손님에게는 1만 5000원을, 여성 손님에게는 5만 원을 책정해 왔다. 그런데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입장객의 요금을 동등하게 책정하기로 합의했으나 의견 전달이 잘못되면서 여성에게는 평상시 요금인 5만 원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던 것.
퀴어축제 조직위 측에서는 곧바로 사태를 파악해 차등 요금을 지불한 여성 고객들에게 돈을 반환했다. 그러나 여성 성소수자들이 그동안 성소수자 사회에서 남성 성소수자들에 비해 받아왔던 차별과 여성 혐오에 대한 불만을 폭발시키면서 이번 축제 후원을 전면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이유로 이미 축제가 열리기 전부터 SNS의 해시태그 ‘퀴퍼(퀴어퍼레이드)보이콧’ 등을 이용해 여성 성소수자들이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던 바 있다.
실제로 조직위 측은 “올해 축제 참여자는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현장에서 후원금은 별로 걷히지 않았고, 온라인에서도 후원이 반토막이 났다”며 모금을 독려했다. 그러나 여성 성소수자들의 보이콧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한 조직위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후원금에 의존하는 행사여서 행사 비용 마련에 매번 힘이 부쳤다. 그래서 많은 분들에게 후원을 요청한 것이지 (여성 성소수자들의) 보이콧으로 인해 후원금이 부족했는지 여부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콧을 주장하는 여성 성소수자들은 “여성들이 후원하는 돈으로 진행하면서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사는 자정하지 않는다면 폐지해야 할 것”이라며 축제 이후로도 후원 보이콧을 유지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한편 퀴어문화축제에서 후원금은 전체 수익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이 가운데서도 개인 후원금은 전체 후원금의 약 40%를 차지한다. 개인 후원금이 예상외로 저조했다는 조직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올해 퀴어문화축제로 인한 적자가 막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김태원·이성진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