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필 기자=선거 기획사들은 이번 지방선거를 두고 ‘돈 가뭄’ 선거라 칭한다.
“정말 이번 선거만큼 이렇게 힘들긴 처음이다. 아무래도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여의도에서만 10년 넘게 선거기획을 해온 A 대표가 기자에게 맨 처음 건넨 말이다. A 대표는 주로 선거 홍보물 인쇄와 제작을 전문으로 한다. 그는 평소 작은 소호 사무실에서 혼자 일한다. 선거철을 앞두고서야 파트타임 카피라이터를 고용해 선거 홍보물을 제작하는 형편이다. 여의도에 우후죽순 영업 중인 전형적인 영세업체 사장인 셈이다.
A 대표는 “제법 많은 선거를 치러왔지만, 수금이 이렇게 어려운 적은 없었다”라며 “지금도 한 기초단체장 선거 낙선자에게 받아야 할 돈만 1000만 원이 넘는데, 수금을 차일피일 미루고 확답을 안줘 싸우고 오는 길”이라며 “이런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우리야 매번 다음 선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어도 ‘똥 밟은 셈’ 치고 삭혀왔지만, 이번 만큼은 형편이 너무 어려워 법적 다툼도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A 대표는 이어 “이번 선거는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라며 “내 의뢰인들 중에서도 원내 정당 소속임에도 득표율 기준을 못 넘어, 선거비용 보전을 못 받은 군소 후보들이 정말 많다. 반대로 여권에서도 예선만 통과하면 당선이란 심산으로 출마한 예비후보들이 난립했다. 이들 가운데 수금이 안 되는 경우도 꽤 많다”고 전했다.
올해 지방선거에 출마한 9266명 가운데 득표율 기준치인 10%를 넘지 못해 선거비용을 단 한 푼도 보전 받지 못한 후보는 2647명이나 된다. 10명에 4명꼴이다. 미보전 후보 비율이 20~30%대를 오갔던 과거 선거에 비해 높아진 수치다. 선거비용의 절반을 보전 받는 10% 이상 15% 미만을 득표한 후보자도 979명으로 집계됐다.
A 대표가 말한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양상의 선거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돈 가뭄’을 야기하기도 했다. 함께 자리한 또 다른 영세 업체 B 대표는 “나는 여당 보좌관 출신이기에 영업도 그동안 주로 여당을 대상으로 했다”라며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여당 후보들이 돈을 안 풀더라. 굳이 많은 돈을 안 쓰고도 이길 수 있는 선거였기에 당연한 현상이었다. 예전 같으면 유세차 두 대를 임대해 돌릴 선거구도 여당 후보는 오히려 한 대를 줄여 운영하더라. 우리같이 한철 장사에 나서는 업자들 입장에서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 기울어진 운동장 양상에서 선거를 치른 한 여당 광역단체장 후보의 한 캠프 관계자는 “이런 선거는 나도 처음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할 정도로 한산하고 여유로웠다. 그 넓은 지역구를 유세차 한 대로 누볐으니 말 다했다”라며 “보전 비용 청구를 위해 회계 장부 계산을 해봐야 알겠지만, 기탁금을 제외하면 접전이 벌어진 기초 선거구보다 돈을 덜 쓴 것 같다”고 회자했다.
앞서의 영세업자들이 이번 ‘돈 가뭄’ 선거의 직격탄을 맞았다면, 주로 광역 단위 캠프를 담당하는 대형 업체들은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편이다. 대형 업체들은 앞서의 홍보물과 유세차는 물론 캠프의 전략 컨설팅과 여론조사까지 거의 대부분을 도맡아 한다. 그럼에도 대형 업체들 역시 이번 선거판의 영업 실적 저조로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다.
한 대형 선거기획사 대표는 “우리 업계에서 속된 말로 선거 전에 ‘몇 억은 그냥 깔고 간다’고 한다. 선거철에 발생하는 일부 후보들의 먹튀와 그로 인한 미수금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배짱과 참을성 없이는 여기서 영업하기 어렵다”라며 “그런데 이번엔 정말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우리가 맡았던 여당의 광역단체장 선거 캠프 한 곳은 자체 여론조사 수주 외에 우리가 중간에 스스로 포기했다. 상대 후보와의 여론조사 결과가 20% 이상 벌어지자 굳이 캠프에서 홍보비용 예산을 집행하지 않더라. 우리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지방선거 이후 각 당의 전당대회가 이어진다는 것”이라며 “물론 본격적인 선거만큼의 대목은 아니겠지만, 각 업체들은 후보자들의 캠프와 접촉해 저조한 지방선거 실적을 벌충하고자 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앞서의 영세 업체 A 대표는 “아직 결산이 되지 않았지만, 각 후보들의 선거보전비용 청구액은 과거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현장에서 느끼는 기획사들의 돈가뭄과 달리 청구액이 비슷하다는 것은 뭘 의미하겠는가. 결국 일부 후보자들이 편법적으로 실제 집행한 돈과 청구한 돈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편으론 제도권 문턱을 낮추기 위해 정치신인들에 한해 선거비용 보전 기준치를 낮추는 방안도 강구했으면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