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전 공동대표와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 2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추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한 바른미래당 당원은 “서로 누구 뜻이라며 싸울 바에는 차라리 두 사람(안철수, 유승민)이 직접 나와서 대결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처럼 바른미래당 전당대회가 사실상 안철수-유승민의 대리전으로 변질되면서 향후 국민의당 출신과 바른정당 출신의 계파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한 바른미래당 당직자는 “현재 우리 당은 국민의당 출신과 바른정당 출신의 화학적 결합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다. 당사도 각각 운영하고 있지 않나. 전체 당원 모임을 해도 국민의당 출신들은 국민의당 출신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바른정당 출신은 바른정당 출신들끼리만 이야기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당 문화도 너무 다르다. 국민의당 출신들은 불만이 있으면 대놓고 이야기하고, 당 대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 반면 바른정당 출신들은 이런 문화를 이해 못하더라. 보수정당은 위계질서를 매우 중시한다. 밑에 사람이 비판하면 벙찐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2월 창당됐다. 창당 후 반년도 지나지 않았으니 양당 출신들이 화학적 결합을 할 시간이 부족했다. 또 극과 극의 성향인 인사들이 뭉쳤으니 화학적 결합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과정에서 지역구가 겹치는 지역위원장들을 공동 지역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넘어간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됐다. 바른미래당 당직자는 “한 지역에 지역위원장이 두 명이니 지방선거 때 (서로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난장판이 됐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전당대회는 당비를 납부하는 책임당원 50% 일반당원 25% 일반여론조사 25%의 비율로 실시된다. 당원 투표의 반영비율이 75%나 되다보니 선거 과정에서 당내 편가르기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일부 당원들 사이에선 ‘굴러온 돌(바른정당)에게 당권을 내줄 수 없다’ ‘국민의당 출신들이 당 지도부를 다 장악하면 우리는 들러리냐’ 등의 거친 말이 오가고 있다. 양당 출신들이 화학적 결합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당대회가 세대결 구도로 가면 계파싸움에 기름을 붓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례로 과거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는 대선 경선 과정에서 생긴 감정의 골을 메우지 못해 지금까지도 대립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력 당권주자인 하태경 의원 측 관계자는 “지방선거 참패로 지금 당이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인데 무리하게 당권에 욕심을 낼 사람이 있겠느냐. 전당대회로 인한 갈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이번에 당권을 잡으면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고 지역위원장 선출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두 사람(안철수, 유승민)이 차기 대권을 생각하고 있다면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선거다. 당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향후 대선 경선에 큰 영향을 미칠 거다. 당권 욕심이 없다면 왜 전당대회 룰을 놓고 싸웠겠나. 바른정당 출신들의 요청으로 당초 8월 19일에 예정됐던 전당대회가 9월 2일로 연기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권에 대한 당내 관심을 뒷받침하듯 벌써 당권주자로 자천타천 거론되는 인물들만 10여 명에 달한다. 이준석 노원병 당협위원장은 이미 전당대회 출마의사를 밝힌 상태고 이외에도 하태경 의원, 정병국 의원, 손학규 전 선거대책위원장, 장성민 전 의원, 김성식 의원, 이동섭 의원, 이언주 의원, 문병호 전 의원, 김영환 전 의원, 김철근 대변인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현재 공식적으로 출마의사를 밝힌 인물은 이준석 위원장이 유일하지만 물밑에선 이미 당권주자들의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사는 여의도에 선거캠프용 사무실을 차리고 지지자들과의 만남도 갖고 있다. 몇몇 국회의원은 특정후보 선거캠프에 합류했다는 소문도 돈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원래 전당대회가 8월 19일이었다. 8월 19일로 스케줄을 맞춰놓았던 후보들은 미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며 “9월 2일로 전당대회가 미뤄지면서 출마결심을 굳힌 후보들이 공식 출마선언만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바른미래당은 국민의당 출신 국회의원이 18명, 바른정당 출신이 9명이다. 합당 당시 당원 숫자도 국민의당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전당대회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평가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일반 당원 숫자는 국민의당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책임 당원 숫자는 국민의당 출신과 바른정당 출신이 비슷하다. 책임 당원 투표가 50%나 반영되니 국민의당 출신이 무조건 이길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다른 변수는 역투표 가능성이다. 현재 바른정당 출신 당원들의 경우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당적을 동시에 가진 2중 당적자들이 있고, 국민의당 출신은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당적을 모두 가진 3중 당적자도 있다. 이합집산 과정에서 당적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 생긴 현상이다. 이들이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당에 유리하도록 역투표를 할 가능성도 있다. 전당대회에서 중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학규 전 선거대책위원장의 출마 여부도 중요한 변수다. 현재 바른미래당 내에서 안철수, 유승민 두 사람을 제외하고 손학규 전 위원장만큼 정치적 무게감이 있는 인물은 없다. 손 전 위원장은 지난 7월 16일 한 토론회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으면 맡을 수 있다”고 밝히며 출마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낙선했을 경우 손 전 위원장이 입을 타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이번 전당대회는 1위를 한 후보가 당 대표가 되고 2~4위 후보가 최고위원이 된다. 최악의 경우 올해 만 33세인 이준석 위원장이 당 대표가 되고 만 71세인 손 전 위원장이 그 밑에 최고위원이 된다. 그림이 이상하지 않나. 이준석 위원장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당 대표가 되어도 손 전 위원장은 자신보다 급이 낮은 상대에게 졌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런 부분 때문에 출마를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당내에선 호남이 지역구인 의원들이 손 전 위원장을 당 대표로 내세운 후 민주평화당, 정의당과의 연대 또는 통합을 통해 제3지대 진보정당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소문도 돈다. 호남에서 민주당과 1 대 1구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손 전 위원장이 출마할 것인지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