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와 원료용지 재생 사업이 주력인 중국 기업 ‘차이나하오란’은 지난 5일 코스닥시장위원회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결과 상장폐지 처분을 받았다. 중국 기업이 국내 증시에서 상장폐지 심의 결과를 받아든 건 올해만 벌써 두 번째다. 지난 5월에는 중국 타일업체인 완리가 코스닥에서 퇴출당했다.
2010년 2월 5일 오전 차이나하오란리사이클링유한공사의 코스닥시장 신규상장 기념식 모습. 왼쪽부터 차이종 중국 강음시 서기, 박상조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 장하오롱 차이나하오란리사이클링유한공사 대표이사, 김재찬 코스닥협회 부회장, 김정익 신한금융투자 기업금융본부장. 연합뉴스
차이나하오란이 상장폐지 처분을 받은 이유는 늑장공시로 국내 투자자들을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자회사 17곳 중 16곳이 영업정지된 차이나하오란은 3개월이 지나서야 이를 공시했다. 투자자들은 투자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악재를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차이나하오란의 소액주주 보유주식 비율을 지난 1분기 기준 62.33%에 달한다. 차이나하오란이 상장폐지될 경우 일반 투자자들이 입을 피해액은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가에 따르면 차이나하오란은 중국 기업 중에서도 유독 공시 불이행․번복이 잦았다. 지난 5월에는 주주들을 대상으로 한 현금 배당을 철회한다고 공시를 번복해 거래소로부터 벌점을 받기도 했다. 결국 차이나하오란은 불성실 공시 및 공시번복 등 공시 규정을 수차례 어겨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됐다. 상장기업의 경우 공시의무를 위반할 때마다 벌점이 부과되는데 1년간 누계벌점 15점 이상이 되거나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고의·중과실로 공시의무를 위반하면 상장폐지 심사 대상이 된다.
차이나하오란은 억울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지난 16일 상장폐지 이의신청서를 내 코스닥시장위원회의 상장폐지 여부(개선 기간 부여 포함)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8월 6일 이전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차이나하오란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이 대부분 투자자들에게는 요주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2013년과 2017년 각각 상장폐지된 중국 섬유업체 중국고섬과 중국원양자원 등 고질적인 ‘먹튀’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2011년 초 코스피에 상장된 중국고섬은 1000억 원대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2013년 10월 상장폐지됐다. 2009년 코스피에 상장된 중국원양자원 역시 허위공시와 회계문제로 논란을 빚다가 결국 지난해 퇴출당했다.
올해에도 중국 기업들의 상폐 행렬은 계속됐다. 1세대 중국 상장사인 완리는 회계 불투명성 등의 이유로 감사의견 거절을 통보받고 국내 상장했던 23개 중국 기업 중 10번째 상장폐지 대열에 합류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국내에 상장한 외국 기업 중 상장폐지 1순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2011년 이후 국내 유가증권 및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된 12개의 상장사 중 10개가 중국 기업이다. 이 중 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수순을 밟은 상장사는 5개다. 국내 증권가에 ‘중국 기업 포비아(공포)’라는 단어가 퍼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의 상장폐지 사태가 빈번하자 국내 증시를 관리해야 할 한국거래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부 유출은 물론 투자자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을 통해 피해를 알리고 대책을 호소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마땅한 구제책이 없는 상태다. 그동안 중국 기업이 허위 공시와 회계 부정을 일삼으면서 상장폐지된 이후 투자자들이 피해를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했다. 2011년 분식회계로 상장폐지되면서 투자자들에게 2100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안겨줬던 중국고섬 역시 5년이 넘는 소송전이 이어졌지만 결과는 흐지부지됐다.
중국 기업들이 우리 증시의 취약점을 이미 파악해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증권가 한 고위 관계자는 “국내 증시 상장을 통해 공모금 등 자금을 끌어 모은 뒤 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지분을 조금씩 팔아 현금화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면서 “이후 상장폐지를 통해 국내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전형적인 ‘먹튀’ 행태”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한국거래소도 뒤늦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래소는 현재 중국 세무당국과 협업해 한국 증시 상장을 신청한 현지 기업들의 회계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한국 증시에 상장됐던 중국 기업들의 잇단 퇴출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금융권에 따르면 거래소는 회계장부에 기재된 매출의 실재성, 제출한 영수증의 진위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는 회계법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해 왔는데 이제는 거래소가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지난 4월 이후 상장 신청이 접수된 2곳의 중국 기업에 우선 적용하고 있다.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에도 ‘깐깐한 심사’를 통보했다. 거래소는 기술력 있는 우량주 위주로 상장 신청을 받겠다면서 실사에 더 힘써 달라는 내용을 담은 메일을 지난 5월 전 증권사 IB부문에 발송했다. 거래소는 “중국 기업에 대해서는 최소 2년 정도 실사를 해야 한다”며 “중국 현지에서 회계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복건성 지역의 기업은 더 깐깐하게 심사할 방침인 만큼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