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승부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은 “자유한국당과의 야합”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보수야당도 일단 거부하거나, 연정계약협약서를 들이밀었다. 당·청이 이 국면을 돌파하지 못하면, 샌드위치 신세였던 노무현 시즌2의 판박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사진=청와대
거침없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짓누른 것은 ‘경제무능 프레임’이다. 참여정부도 이 덫에 갇히면서 조기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에 빠졌다. 경제무능 프레임은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계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친문계 관계자는 “‘경제는 아마추어’라는 말이 가장 뼈아프다”고 말했다.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통계청의 5월 경기순환시계에 따르면 최근 6개월 사이 10대 경제지표 중 7개 지표가 하강 국면으로 진입했다. 설비투자지수를 비롯해 서비스업생산지수, 수출액, 기업경기실사지수, 수입액, 취업자수, 건설기성액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 전환점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불리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1년 전 고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이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갈등은 문 대통령 지지율 급락에 불을 지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7월 16∼20일까지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2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3일 공표한 7월 3주차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5.2%포인트 하락한 62.9%에 그쳤다. 같은 기간 부정평가는 5.2%포인트 오르면서 31.4%까지 치솟았다.
가장 많이 이탈한 계층은 최저임금에 민감한 자영업자였다. 일주일 만에 9.6%포인트나 빠졌다. 50대와 중도층에서도 8.9%포인트와 6.9%포인트 각각 하락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최저임금(7530원) 인상액인 16.4%보다는 낮지만, 2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사용자는 아예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에 불참했다. 소상공인은 최저임금 거부 운동을 펼쳤다. 당·정·청은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도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영업자의 민심이반은 문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해 7월18∼20일까지 사흘간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6%포인트 하락한 74%였다. 자영업자 계층에선 한 주 만에 12%(81%→69%)나 떨어졌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이유 1위에도 최저임금(12%)이 올랐다. 두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야권의 견제도 노골화되고 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7월 17일 KBS 1TV ‘사사건건’에 출연해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실정 파일을 가지고 있다”며 친문계를 겁박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 추세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남북관계 등 외교이슈에 가려져 있던 경제 문제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보수진영 대통령의 지지율 패턴과는 다른 흐름이다. 이명박(MB)·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경제보다는 불통 등 정치이슈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530만 표 차로 이기고 대권 고지에 오른 MB는 취임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파동에 직면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한 자릿수대로 급락했다. 이후 4대강 사업이나 민간인 불법 사찰 등 불도저식 정책결정과 민주주의 훼손 논란이 있을 때마다 지지율은 어김없이 하락했다.
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헌정 사상 첫 부녀·과반·여성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박 전 대통령은 첫 내각구성 때부터 만기친람식 리더십 논란에 휩싸였다. 탄핵 직전까지 불통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탄핵 복선 역할을 한 2016년 20대 총선에서 패배한 원인도 친박(친박근혜)계의 일방통행식 공천권 장악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보수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원인은 ‘정치’였지만, 두 대통령은 ‘민생 올인’ 전략을 펴면서 지지율 반등 모멘텀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문 대통령의 고민도 이 지점이다.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보수 대통령과는 반대로 ‘경제’다. 그러나 단기적 해법은 ‘정치’ 프레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경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는 영역이다. 청와대가 지지층 균열 시점에 협치 내각을 꺼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자영업비서관 임명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청와대 조직을 개편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경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국정운영의 방향이 민생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집권 중반기를 넘어가는 시점까지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정동력이 떨어지는 하반기 때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치에 방점을 찍은 청와대 승부수로 정국상황이 한층 꼬였다는 점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협치 내각은 지방선거 후 민주당이 평화당에 제안하면서 물꼬를 텄다. 그간 양당은 물밑 협상을 벌였다. 특히 평화당은 당내 입각 후보를 물색하면서 논의를 진전시켰다. 애초 양당은 새 지도부 선출 후 이 같은 안을 공개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이지 않는 카르텔은 깨졌다. 청와대가 느닷없이 각 정당과 상의 없이 협치 내각 화두를 꺼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민주당이 중심이 돼서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결정권은 야당에 있지 않겠냐”라고 밝혔다. 9부 능선을 넘어도 100% 합의까지 갈 길 먼 연정을 사전조율 없이 불쑥 던진 셈이다. 이용주 평화당 원내대변인은 “청와대의 협치 내각 제안이 브리핑 형식으로 나온 것은 유감”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범야권의 입장은 각 당과 의원별로 천차만별이다. 여당과 물밑논의를 했던 평화당 내부도 격앙됐다. 천정배 의원은 “협치 내각은 한국당과의 대연정 시도”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의원도 “협치와 연정은 배고픈 사람에게 떡 하나 주는 정치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다만 당의 핵심 의원은 “민주당에서 공식 제의가 오면 논의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논의에서 소외됐던 바른미래당은 반색하면서도 조건부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연정계약협약서’를 체결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뜬금없다”며 단칼에 잘랐다. 다만 소득주도성장론 폐기를 전제로 참여 가능성의 문을 열어뒀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공식 논의가 시작될 경우 ‘개헌 추진’을 협상 카드로 쓸 것으로 보인다.
반대 기류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다. 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은 “청와대의 전략 미스든지, 아니면 (최종 무산을 염두에 둔) 청와대의 미필적 고의든지, 둘 중 하나”라며 “청와대 대변인이 그렇게 발표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한 의원실 보좌관은 “야당과의 연정은 언젠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슈”라며 “협치는 20대 총선 때부터 국회의 최대 과제가 아니었느냐”라고 전했다. 이에 홍영표 원내대표는 “정파와 상관없이 인재를 찾겠다는 것이지, 연정 제안이 아니다”라며 결을 달리했다. 청와대의 협치 내각을 둘러싼 최소공약수는 사실상 전무하다. 협치 내각이 본 궤도에 오를지도 불투명한 셈이다.
일단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속도조절’이다. 진보정치의 산증인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별세도 변수로 작용했다. 노 전 의원이 별세하면서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은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평화당과 정의당 의원이 입각해도 비교섭단체의 한계로 양당은 입법 추진 과정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당분간 정국은 지리멸렬한 상태로 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조만간 새 단장을 하는 각 당에 강경파가 실권을 거머쥔다면, 정국은 강대강 대결로 치달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정국은 기무사 계엄문건으로 적폐청산 프레임이 휘몰아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여의도 정국은 그야말로 시계제로 상태”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