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송영무 국방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박은숙 기자
“송영무 장관이 육군 출신이었다면 그랬겠습니까.”
7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민병삼 100기무부대장(육군 대령)이 공개석상에서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봤던 군의 한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민 대령은 “송 장관이 ‘위수령 문건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폭로했고, 이에 송 장관은 “완벽한 거짓말”이라면서 “대한민국의 대장까지 마치고 장관하고 있는 사람이 거짓말하겠습니까”라고 맞받아쳤다.
민 대령은 다음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강도 높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대장이라고 거짓말 안 하고 대령이라고 거짓말하라는 건 없잖아요. 모든 대장 분들은 거짓말 안 하나요, 대령들은 거짓말하고. 만약에 거짓말이라 하면 일개 대령이 장관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고 얘기하는 그 자체가 목숨이 10개라도 모자라죠. 어떻게 꾸며낼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현직 국방부 장관과 육군 대령이 상대방을 향해 ‘거짓말쟁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한 것으로 창군 이래 초유의 일이다.
군 안팎에서는 존폐 위기에 놓인 기무사가 의도적으로 송 장관 흔들기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주를 이룬다. 앞서의 군 고위 인사는 “기무사 내부에선 송 장관이 제대로 처리를 하지 않아 일을 키웠다는 문제 인식이 팽배하다. 모든 책임을 기무사가 지게 됐으니 사생결단의 자세로 항명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기무사는 이번 싸움을 기무사와 국방부가 아니라 해군과 육군의 프레임으로 가져가려 한다. 해군 출신인 송 장관 취임 후 소외됐던 육군의 불만을 활용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 속내가 없었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장관을 공격하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왜 기무사를 해체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느꼈다. 기무사는 군이 아니라 정치집단처럼 사고한다.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송 장관의 보고 문제는 본질이 아닌데, 이를 국회에서 제기하며 논란을 부추겼다. 그것도 사령관부터 참모장까지 총출동해서 말이다. 이는 기무사가 조직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배수진을 친 기무사는 자충수를 둔 것”이라면서 “송 장관 역시 부실 보고로 빌미를 제공하고, 부하 지휘관과 공방을 벌여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송 장관을 경질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7월 26일 직접 “문제의 본질은 계엄령 문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달을 가리킨 손가락을 보고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달을 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기무사 개혁의 본질을 흐리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기무사 관계자들이 어제도 사후 보고 경위를 둘러싼 진실공방을 부추기는 폭로를 내놓고, 일부 야당이 편승하고 있다”며 “기무사 개혁에 반대하는 조직적 저항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선 기무사 해체론이 빠르게 공감대를 얻고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여권에선 기무사 문건 사태가 국방부와 기무사 간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광화문·여의도에 탱크와 장갑차 등을 투입해 촛불시위를 무력 진압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초헌법적 계엄 모의의 진상 규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엔 국회의원 성향 분류에 따른 통제 방안, 국민 기본권 제한, 언론 보도 검열 및 SNS 계정 폐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계엄 선포 시 미국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도록 하는 외교적 조치 계획도 포함돼 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군대와 불법을 동원했던 12·12 쿠데타와 다를 바 없는 2017년의 12·12 버전”이라고 꼬집었다.
이 문건을 살펴 본 군 전문가들은 단순한 검토 수준이 아니라 실행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눈에 띈다고 했다. 우선 왜 기무사인가 하는 점이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계엄 관련 부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무사가 문건을 만든 이유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 국회의원 체포 등을 통해 계엄해제를 하지 못하도록 한 문구 등도 통상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과연 이것을 계엄 업무에 정통한 군인이 만들었을지 의심이 간다”면서 “특정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문건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여권에선 기무사 문건을 박근혜 정권 친위 쿠데타 성격을 띤 내란음모 시행계획으로 보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이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출국금지 당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문건 작성 배경에 당시 박근혜 정부 실세들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과 맞물린다. 이 경우 기무사가 문건 작성을 하게 된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박근혜 정권 들어 기무사가 비선 실세 그룹에 의해 장악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했다(본지 1366호 ‘박근혜도 계엄에 관심 보였다’ 참고).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 심판을 받고 있던 박근혜 측으로선 국방부나 합참보다는 기무사를 컨트롤하는 게 쉬웠을 것이란 얘기다.
이와 관련, 사정당국 및 군검 합동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한 비선 인사가 기무사 문건을 작성하는 과정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참모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을 비롯해 측근 대부분이 검찰 수사를 받거나 수감된 상태여서 운신의 폭이 좁지 않았던 데 반해 이 인사는 비교적 외부엔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문건이 만들어지기 전인 2016년 11월경부터 계엄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기무사가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지난해 3월보다 5개월 앞선 시점이다.
그 인사와 군 또는 기무사 사이에 어떤 라인이 형성됐었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만, 사정당국의 한 고위 인사는 “그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일부 육사 출신 군인들이 계엄 논의를 주도했다.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가 소위 ‘멘토’로서 많은 의견을 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귀띔했다. 그 인사와 가까운 한 친박 의원은 “충성도로 따지면 그 인사는 3인방 못지않은 박 전 대통령 측근이다. 박 전 대통령이 직무정지를 당했을 때 변호인 선임을 알아보는 등 외부에서 동분서주했던 것으로 안다. 이러한 움직임엔 박 전 대통령 의중이 반영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