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 훼손 사건’ ‘남성 승객 흉기 위협 사건’ ‘남아 낙태 인증 사건 ’ 등으로 연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온 워마드. 사진=워마드 홈페이지 캡처
다양한 논란을 야기한 일베를 둘러싸고 최근 가장 심각한 이슈로 떠오른 것은 이른바 ‘할카스 사건’ 이다. ‘할카스’란 할머니+박카스의 합성어로 노년의 성매매 여성들이 박카스를 들고 다니며 성구매자를 찾는 데서 나온 말이다.
지난 7월 22일 오후 11시께 일베에 이와 관련한 충격적인 게시물이 올라왔다. “32살 일게이(일베 이용자를 일컫는 용어) 용돈 아껴서 74살 박카스 할매 먹고 왔다”는 제목의 글에 노년 여성의 얼굴과 은밀한 신체 부위가 적나라하게 나온 사진까지 게시된 것. 불법 성매매 인증이라는 사실을 떠나서 몰카로 추정되는 사진의 상태에 네티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순식간에 ‘할카스’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탄 사진은 결국 하루 만인 7월 23일 원본 작성자가 게시물을 삭제함으로써 일단락 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미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등에 모자이크 처리 되지 않은 사진이 유포된 뒤였다. 일부 디시인사이드의 회원은 이 노년 여성의 얼굴 부분을 편집해 이모티콘으로 사용하며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일베 박카스남’이라는 이름으로 보도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와 급상승 검색어에도 오랜 시간 동안 1위를 고수하며 사건의 심각성을 알렸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청이 직접 신고자 소재 지방경찰청에 수사할 것을 하달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비교적 조용했던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지난 7월 22일 노년의 성매매 여성과의 성매매 후기와 사진을 올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일베저장소 캡처
수사가 진행될 경우 게시물 작성자에게는 성매매 및 명예훼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위반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경찰은 모욕적인 댓글을 쓴 네티즌들이나 2차 사진 유포자들까지 같은 혐의로 함께 수사할 방침을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문제의 사진은 첫 게시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라 유명 성매매 사이트에 올라와 있던 사진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라며 “그러나 사진을 2차 유포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이고, 해당 사이트에 먼저 사진을 올렸던 사람이 일베 게시자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으니 이와 관계없이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워마드가 참전한다. 이 사건 직전까지 워마드는 ‘남아 낙태 인증 사건’ ‘성체 훼손 사건’ ‘남성 승객 식칼 위협 사건’ 등으로 연일 인터넷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중이었다.
워마드 회원들은 “여성이 가해자인 사건은 자극적인 보도는 물론이고 신속한 검거에 포토라인까지 세우더니 왜 박카스남 수사는 지지부진한가”라며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워마드와 달리 국내에서 운영 중인 일베는 이용자를 파악하는 것도 쉬울 텐데 검거가 늦어진다는 게 이상하다”며 의도적인 수사 부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지난 5월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의 피의자는 불과 열흘 만에 구속영장까지 발부됐던 것과 비교하면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 워마드 회원은 ‘일베 박카스남 살인 예고’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흉기를 촬영한 사진과 함께 “박카스남이 (경찰서) 포토 존에 서면 칼침 놓고 그 포토 존에 내가 서겠다. 박카스남이 포토 존에 안 서면 찾아가서 죽이고 천국 가겠다”는 글을 올려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 해당 글은 현재 삭제돼 있다.
‘일베 박카스남’ 청원은 7월 27일 기준 7만 2000명의 서명을 받았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워마드는 ‘일베 미러링(상대방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해 ‘역지사지’를 보여준다는 용어)’을 표방하면서 각종 사건사고 핫 이슈를 갈아치워 왔던 바 있다. “같은 짓을 저질러도 남성은 비교적 적은 관심을 받고 수사도 미진한 반면, 여성이 피의자가 되면 필요 이상으로 신속하고 과도한 수사가 이뤄진다”라며 그 증거로 일베에서 발생했던 사건사고를 그대로 흉내 내는 모습을 보여 왔다.
예컨대 일베에서 속옷차림의 어린 여자아이들 사진을 올리면 워마드에서는 헐벗은 외국 소년들의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일베에 살인, 강간 모의 또는 성매매 글이 올라오면 워마드에도 똑같은 내용의 글을 등장하는 남녀만 성반전해서 올린다. 이런 식으로 일베와 경쟁적인 구도를 만들어 여성과 남성이 같은 범죄 글을 올렸을 때 어느 쪽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지, 더 빨리 수사에 착수되는지를 보여준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워마드의 ‘일베 따라잡기’는 오는 8월 4일 예고된 ‘제4차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와 궤를 같이 한다.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이 도화선이 됐던 이 시위는 초기부터 워마드가 “우리로부터 촉발된 시위이니 우리가 (시위 운영진 자리를) 먹어야 한다”며 공격적인 세 불리기에 나섰던 바 있다. 몰카 피의자인 안 씨가 워마드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오는 8월 4일 예정된 4차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서 ‘홍본좌 무죄’ 슬로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 카페
특히 이번 일베 ‘노년 여성 성매매 몰카 사건’의 확실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같은 슬로건을 꼭 외쳐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성범죄자인 일베 박카스남을 검거해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을 것이라면 홍본좌도 무죄 석방해라” 라는 것.
그렇다면 경찰들은 이런 워마드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 일선 경찰서 수사과 관계자는 “(홍대 도촬 사건은) 단순히 여성이 몰카를 찍었다는 이유로 포토라인에 세운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몰카 촬영 범죄에서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희소해 이번 포토라인 사례가 첫 사례다 보니까 다소 과한 감이 있다고 느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경찰들이 일베에서 발생한 강력 사건을 단 한 차례도 수사하지 않았거나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일부 신고자가 보기에 미흡한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실제 범행 사건이 아니라 단순히 해외 사이트에서 사진을 도용해 조작한 건이어서 피해자가 없어 수사가 흐지부지 종결되는 경우까지 경찰에게 수사 미진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짚었다.
한편 현재 경찰은 최근 한 달 새 발생한 워마드와 일베 내에서 신고된 사건 사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먼저 워마드의 ‘남성 승객 흉기 위협 사건’은 서울 강동경찰서가 수사 중이며 ‘문재인 대통령 나체 합성 사진 사건’은 구로서, ‘남자 화장실 몰카 사건’은 성북서, ‘남자 아이 살해 예고 사건’은 부산 동래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일베의 경우는 가장 최근 발생한 ‘박카스남 사건’을 첫 신고자 소재 지방경찰청에서 수사 중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