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국방부의 위수령·계엄령 검토 문건 수사 파장이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외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목을 겨누는 모양새까지 급변했다. 상황급변의 정점에는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의 작은 쿠데타가 주효했다. 송영무 장관은 곧바로 기무사에 대한 별도 감사를 지시하며, 분위기를 다잡으려 했지만 청와대의 시선은 곱지 않다. 국방부 관계자는 “처음 문건 자체는 ‘계엄 시행 가능성 여부’를 떠나 기무사가 도덕적으로 잘못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이제는 송영무 장관 대처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요신문’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 검토 관련, 사실 관계와 국방부 분위기를 살펴봤다.
# 국회에서 이뤄진 기무사의 ‘작은 쿠데타’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이 7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박은숙 기자
책임 여지가 생길 수 있는 발언에 송 장관은 반발했다. 보고 시간은 5분 수준이었으며, 평소 일반 지휘 보고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 세부자료가 많아 “내려놓고 가라”고 지시한 것이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송 장관의 핵심 반박 근거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민영삼 100기무부대장(대령)의 증언에서 불거졌다. “군인으로서 명예를 걸고, 한 인간으로서 양심을 걸고 답변드리겠다”고 운을 띄운 그는 “송영무 장관이 문건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며 “송 장관이 간담회에서 ‘법조계에 문의했더니 문제될 것이 없다더라.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문제가 없다던 태도를 번복해 문제를 삼고 있다”는 증언에 송 장관은 격분하며 즉각 반발했다. 송 장관은 “(민영삼 대령의 발언은) 완벽한 거짓말”이라며 “국방부 장관을 하고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민영삼 부대장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음날, 기무사는 지난 12일 KBS가 송 장관의 문제의 발언을 보도한 뒤 국방부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는 내용을 담은 사실관계확인서를 돌렸는데, 민 대령이 “거짓말에 서명할 수 없다”며 날인을 거부한 문건까지 공개했다. 민 대령 역시 “거짓말을 했다면 목숨이 10개라도 부족하다, 대장이라고 거짓말 안 한다면 대령이라고 거짓말을 하겠냐”고 얘기하며 송 장관과 불편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무사령관도 그렇고, 100기무부대장도 그렇고, 송 장관에게 척을 지는 얘기를 일제히 한 것을 보면 결국 기무사 입장에서 느낀 불편한 점들을 작정하고 폭로한 게 아니겠냐”며 “기무사와 국방부 장관이 서로의 존재를 걸고 싸우는 모양새가 됐다. 기무사가 하극상 행태를 보인 것은 군 내 문화를 볼 때 올바른 게 아니지만 국방부 안에서는 송 장관의 리더십이 떨어지다보니 ‘기무사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분위기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 그리고는 곧바로 ‘기무사 감사’ 지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7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사법원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뒤늦게 문건을 문제 삼았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비판 앞에 놓인 송영무 장관. 송 장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국방부는 국회에서 논란이 있었던 바로 다음날인 25일,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에 대한 자체 감사에 나섰다. 군내에 계엄 관련 문건이 더 있는지 직접 찾아 보겠다고 나선 것.
이를 위해 계룡대 육군본부에 감사관실 소속 조사관 4명을 파견했고, 조사관들은 본부 작전과와 문서 결재 시스템 ‘온-나라’를 집중 감찰했다. 또 송 장관을 겨눈, 작심 발언을 한 민영삼 대령의 PC도 감사관실 조사관이 직접 감찰했다. 이번 감사는 7월 17일, 군내 계엄 관련 문서나 보고를 모두 제출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와 별개로 내려진 장관 차원의 지시로 알려졌다.
국회에서 ‘하극상 발언’이 있고난 뒤 곧바로 시작된 조사인 탓에 ‘징계성 조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국방부 정보에 밝은 관계자는 “조사 시작 시점은 25일이지만 지시는 국회에서 하극상 발언이 나온 직후라는 얘기가 있다”며 “송 장관이 자신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기무사를 철저하게 응징하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영삼 대령은 당당했다는 후문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KTX를 타고 세종시 기재부에 예산 문제로 가다가 감사 소식을 들었지만, 민 대령은 당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지금 군 내에서는 민 대령 등 기무사에 대한 응원이 상당하다”고 귀띔했다.
# 송 장관 리더십 흔들? 곱지 않은 청와대 시선
사건의 본질인 위수령 검토 관련 문건 실행 여부에 대한 확인이 우선이고, 실제 실행 가능성이 없다는 게 밝혀져 국민적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한다는 게 국방부 내 중론이다.
실제 계엄령 문건의 청와대 보고 과정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나올 정도로 중대하고 위중함에도 보고와 처리가 전혀 신속하지 않았기 때문. 기무사가 국방부에 보고를 한 시점은 지난 3월 16일. 하지만 청와대의 수사지시는 4개월이나 지난 7월 10일 이뤄졌다.
실제 국방부 내 관련 보고서에 송 장관이 “직권남용에 해당되는지는 검토하기 바람”이라거나 “기무사의 세월호 민간사찰 내용은 수사할 사안인가?(수사 진행 중임)“라는 회의적인 입장을 남긴 것도 송 장관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송 장관이 해당 문건을 뭉개고 있다가 뒤늦게 국방 개혁을 앞두고 기무사 손보기용으로 쓰려 했다는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다.
국회 논란으로 국방부 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계엄령 문건 논란과 관련해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원칙적인 수사 방향을 언급하면서도,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계엄령 문건 보고경위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잘못을 따져보아야 한다“고 수사 지침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기무사 개혁 TF 보고를 받은 뒤, 책임의 경중에 대해 판단하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는데 자연스레 송 장관 경질론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안규백 민주당 의원 등 몇 명의 이름이 차기 국방부 장관 이름으로 거론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결국 진짜 문제는 이번 문건이 실제 계엄을 할 의도가 있었는지, 내란 음모 혐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기무사와 송영무 장관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가 됐다“며 ”군이 계엄을 할 의도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입증해서 국민적 불신을 씻고 합참에 계엄 관련 부서가 있는데 기무사가 해당 문건을 왜 작성해야 했는지, 기무사가 왜 그동안 정권 근처에서 기웃거리며 잘못된 행태를 보였는지 잘잘못을 따져야 할 게 많은데 본질이 사라지고 책임 떠넘기기만 남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