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조폭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수라’ 스틸컷
성남국제마피아파와 이들이 설립한 코마트레이드라는 회사는 선거를 돕거나, 금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관내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인 바른미래당 성남시의원은 “사실 (조폭 연루설을 제기한) 방송에 나온 내용들은 오래전부터 의회 내에서 맴돌았던 소문이었다”면서 “그 소문들이 이제야 밖으로 새어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과 조폭의 수상한 관계는 과거에도 종종 구설수에 올랐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부인의 작은아버지가 조폭 출신이라 논란이 됐고, 안철수 전 의원은 행사에 조폭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폭과 정치권이 결탁해 반대 세력에 폭력을 가한 일명 ‘용팔이 사건’(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까지 있다.
정치인과 조폭 연루설을 보도했던 방송사 PD는 자신의 SNS를 통해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조직폭력배와 정치권력과의 유착 정도가) 심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지역 정치인은 “정치인이 조폭을 동원해 그런(폭력행사) 일을 하는 거는 정말 영화에만 나오는 일”이라며 “‘나 정치할 건데 더러운 일 시킬 조폭 좀 소개시켜줘’라고 하는 정치인이 어디에 있겠나”라고 일축했다.
지역 정치인은 자신도 아는 조폭이 있긴 하다면서 “조폭이라고 하면 문신하고 험악하게 생긴 그런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만나보면 일반인하고 구별이 안 된다. 처음부터 ‘나 조폭이요’ 하면서 접근하는 사람은 없다. 돕겠다고 찾아오는데 거절할 수 있나. 나중에야 주변에서 ‘저 사람 조폭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하지만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니 무시하기가 어렵다. 서로 척질 필요야 있겠나. 딱 그 정도”라고 말했다.
조폭 사건을 담당한 경험이 있는 전직 경찰은 “조폭과 일반인의 구별이 어려운 것은 맞다”고 말했다. 전직 경찰은 “옛날에는 조폭들이 대외적으로 별다른 직업이 없고 그냥 조폭이었다. 그런데 요즘 조폭들은 합법적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명함을 보면 무슨 회사 대표, 회장이다. 조직 내에서도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부장님’ ‘전무님’ 하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전직 경찰은 “일부 자신이 조폭이라고 동네에서 과시하고 다니는 조폭은 삼류다. 속된 말로 동네 양아치 수준밖에 안 된다. 그런 부류는 조폭이라고 할 수도 없고 오래가지도 못 한다. 진짜 조폭들은 은밀히 숨어 일반인과 구별이 어렵다. 그래서 요즘엔 조폭 수사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기간 조폭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여러 경로로 접촉을 시도해봤지만 어렵게 연락이 닿은 그들은 모두 인터뷰를 거절했다.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어 하던 과거와는 행태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앞서 한 지역 정치인의 주장과는 달리 일부 정치인들은 조폭과의 관계를 적극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를 돕는 것은 물론이고 조폭이 정치인의 수행과 경호를 맡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한 익명의 인사는 “과거 특정 정치인에게 항의를 하러 갔다가 수행원에게 제지를 당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수행원이 조폭이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치인과 조폭의 수상한 관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인이 조폭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결국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폭이 정치인에게 접근하는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 총경으로 퇴직한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은 “처음에는 (조폭인지) 모를 수 있지만 결국 알게 된다. 지역 사회에서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조폭이 정치인과 어울림으로써 지역에서 자기 인맥을 과시할 수 있고, 영향력도 넓힐 수 있다. 조폭이라도 현재 합법적인 사업가로 위장하고 있다면 신분을 세탁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사업 인허가 등 조폭이 정치인과의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조폭이 정치인에게 접근하는 이유를 듣기 위해 전직 조폭 이 아무개 씨의 입장을 직접 청취해봤다. 이 씨는 여권 인사들을 도와 논란이 됐던 당사자다. 이 씨는 자신은 정말 순수하게 정치인을 도운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씨는 “제가 (조폭으로) 경찰 관리대상에 올라와 있는 것은 맞지만 국제마피아파는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조폭 생활을 그만뒀는데 몇 년 전에 도박사이트 사업에 투자를 했다가 처벌을 받아 관리 대상 기간이 연장됐다”면서 “우리 같은 사람은 정치인을 도우면 안 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 씨는 “(조폭인 자신이 정치인들과 연루되었다는) 방송이 나간 이후로 저를 도와주셨던 분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입힌 거 같아 미안해서 연락도 못해봤다. 저는 정말 조폭이 아니다. 아이가 셋 있는데 그쪽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는 성실하게 살고 있다. 최근 방송은 정말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조직을 동원해 정치인을 도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 (정치인 행사 등에) 저 혼자 갔다. 제 밑에 조직원이 있고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이준석 코마트레이드 대표 측의 입장도 들어봤다. 이 대표는 현재 구속되어 있는 상태다. 표면적으로 이 대표가 특정 정치인을 도운 후 얻은 이익은 고작 우수 기업상을 타거나 몇 건의 MOU를 체결한 것이 전부다. 이 대표가 정치인들을 도운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코마트레이드에 몸담았던 배 아무개 씨는 “자신도 이 대표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배 씨는 이 대표가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운전기사를 제공한 일에도 관여했던 인물이다. 은 시장은 단순한 자원봉사자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배 씨는 “이 대표가 한 달에 20일 이상은 외부 일정이 있었다. 자주 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면서 “은 시장에게 운전기사를 제공한 이유도 알지 못 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