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조작 의혹 관련 ‘드루킹’ 김동원 씨가 조사를 받기 위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이 USB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결국 드루킹의 말에 맞선 해명이 일부 거짓이나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7월 23일 투신으로 생을 마친 노회찬 의원은 구속된 드루킹으로부터 정치자금 5000만 원을 불법 수수한 혐의를 받아 왔다. 드루킹이 이끌던 경제적공진화모임으로부터 회당 2000만 원의 강의료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의혹은 2016년부터 시작됐는데 드루킹이 노 의원에게 현금 5000만 원을 주려했다는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다 무혐의로 종결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특검에서 당시 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했다. 노 의원은 지난 19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어떠한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 (특검이) 조사를 한다고 하니, 성실하고 당당하게 임해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 의원의 이 같은 해명은 일부 거짓으로 드러났다. 노 의원은 드루킹과 선을 그었지만 수상망이 좁혀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다. 노 의원은 유서를 통해 ‘드루킹 측으로부터 돈 받은 사실은 있지만 청탁이나 대가성은 없었다’며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지난 5월 대선직후 드루킹이 ‘야 정의당과 심상정 패거리들…너희들 민주노총 움직여서 문재인정부 길들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내가 미리 경고한다. 지난 총선 심상정, 김종대 커넥션 그리고 노회찬까지 한방에 날려버리겠다. 못 믿겠으면 까불어보든지‘라고 쓴 트위터 트윗도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결국 이를 두고 드루킹의 트윗이 사실로 밝혀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드루킹이 텔레그램에서 했던 말이나 검찰 조사 결과는 대부분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최소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귀띔했다.
지난 4월 드루킹 의혹이 처음 나온 시점에서부터 이런 패턴은 반복됐다. 드루킹과 관련해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유착관계 의혹이 나오면서 4월 14일 김 지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지사는 “문제가 된 인물은 지난 대선 경선 전에 문재인 후보를 돕겠다면서 스스로 연락을 하고 찾아온 사람이다. 당시 수많은 지지그룹들이 그런 식으로 문 후보 돕겠다고 연락해왔고 ‘드루킹’도 그중 하나다”라며 “선거 때는 통상적 자주 있는 일이다. 당시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비슷한 메시지를 받는 저로서는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명 이후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이틀 뒤인 16일 김 지사는 새롭게 입장발표를 한다. 그는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었다’는 1차 해명과 달리 “(홍보하고 싶은) 기사가 드루킹에게도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고 수정했다.
드루킹의 대선 이후 인사 청탁 요구에 대한 언급도 달라졌다. 김 지사는 1차 입장 발표에서 드루킹의 인사 청탁에 대해 “직접 찾아와서 당일 청탁을 했었고 그런 무리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지만 2차 해명에서는 “드루킹 등이 회관을 찾아와 자신들이 인사 추천을 하고 싶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는 열린 인사, 열린 추천 시스템이 있기에 좋은 분이 있으면 전달하겠다’ 했더니 오사카 총영사로 한 분을 추천했다”며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전달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인사수석실로 전달했다”고도 했다. 김 지사는 이를 “인사청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2차 해명 이후 청와대 입장도 바뀌었다. 청와대는 이전까지 드루킹 인사청탁과 관련해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지만 김 지사 회견 이후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된 A 변호사를 만난 사실을 공개했다. 청와대 측은 “민정수석실에서는 이 사건을 알았지만, 공보 쪽에선 알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초기 해명과 달리 드루킹과의 연락, 오사카 총영사 추천 등은 사실로 밝혀진 셈이다.
2차 해명 이후에도 드루킹과 김 지사의 의혹은 계속됐다. 드루킹의 텔레그램 메신저가 공개되면서다. 드루킹은 오사카 총영사 인사청탁이 최종 불발되자 김 지사의 국회의원 보좌관을 역임한 한 아무개 씨에게 500만 원을 건넸다고 협박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애초 김 지사 측은 ‘드루킹과의 금전 거래는 공식 정치후원금 계좌를 통해 받은 10만 원밖에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또 ‘수많은 지지자 그룹 중 하나’라는 해명과 달리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과 접촉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청와대는 송 비서관이 드루킹이 이끄는 경공모 모임에 4차례 참석했고 사례비로 200만 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송 비서관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일정을 챙기던 일정총괄팀장으로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이렇게 드루킹과 관련된 사실을 부인했던 해명이 대부분 거짓이나 일부 사실로 드러나면서 드루킹의 입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결국 드루킹이 언급했던 트위터나 김 지사에 대한 발언이 나중에 사실로 밝혀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앞서의 한국당 관계자는 “정치적 부담감 때문에 당 차원에서 드루킹 관련 발언은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특검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25일 특검은 앞서 논란이 됐던 트위터 트윗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드루킹 트위터에 올라온 협박성 추정 내용을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라며 “현재는 노회찬 의원 장례식 기간이라 관련자를 소환하긴 어려운 만큼 먼저 드루킹과 경공모 핵심 회원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특검은 처음부터 핵심으로 지목됐던 김 지사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같은 날인 25일 특검은 “남은 수사기간이 30일 정도”라며 “지금까지 양상과는 다르게 수사가 좀 더 핵심에 근접하도록 스피드를 낼 것이고, 그런 걸 기대해도 좋다”고 일종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는 드루킹이 숨겨뒀던 USB를 제출한 이후에 나온 발언이라 USB가 ‘스모킹 건’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반면 앞으로 나올 내용은 별 다를게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17일 김 지사 본인도 YTN과의 인터뷰에서 “오히려 특검을 해야 제가 이 부분(드루킹)에 대해서 전혀 거리낄 게 없고 문제가 없다”며 “특검을 통해서 해소하는 게 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특검 수사에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기 때문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도 “드루킹이 한 언론사에 보낸 편지를 봐도 그의 타깃은 김경수 지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만약 그가 김 지사의 약점을 알거나 밝힐 게 있다면 밝혔어도 진작에 밝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