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전략기술본부를, SK그룹은 지주회사인 SK㈜를 신사업 발굴을 위한 혁신 첨단에 세우고 IB를 포함한 금융 전문가를 끌어모으고 있다. 전략기술본부는 지난해 2월 출범한 정의선 부회장 직속 조직이다. 올해 들어 현대차가 진행한 굵직한 M&A와 주요 투자는 모두 전략기술본부를 거쳤다. SK㈜도 SK그룹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진행한 M&A와 지분투자 12건 중 9건을 주도했다. 최 회장은 계열사 관련 투자만으로 그룹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SK㈜를 투자전문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스마트폰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IB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SK는 지난해부터 공유경제 관련 신사업 영역에서 공격적인 M&A와 지분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카풀 서비스 스타트업 ‘럭시’에 50억 원을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차량공유업체 ‘그랩’과 첨단 배터리 개발업체인 ‘아이오닉 마테리얼스’ 등에 지금까지 약 431억 원을 투자했다. 정 부회장이 올해 초 전략기술본부 내 오픈이노베이션센터를 축으로 향후 5년간 스타트업 육성 등 신사업 분야에 23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만큼 현대차의 공격적인 M&A와 지분투자는 이어질 전망이다.
SK그룹은 지난해 신사업 발굴을 위해 4조 9000억 원을 들였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공유경제’로 시장이 변화하는 데 적응하기 위해 경영 좌표로 내세운 ‘딥체인지(근본적 혁신)’에 따라 지난해 반도체 소재와 바이오·제약 분야, 차량공유업체, 카풀 서비스 스타트업 등에 지분 투자를 했다. 특히 SK㈜는 현대차가 투자한 그랩에 현대차보다 3배 많은 810억 원을 투자했다. 최 회장은 올해 신사업 분야를 중심으로 27조 5000억 원 투자 방침을 정했다.
신사업 투자 성과에선 일찌감치 IB 인재 확보에 나선 SK그룹이 현대차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SK㈜는 지난해 지분투자한 미국 에너지 업체 유레카에서 배당금 106억 원을 수령해 투자 수익을 실현한 데 이어 자동차 관련 포트폴리오 확보를 바탕으로 미래 모빌리티에 투자했다. 주가도 긍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안나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연구원은 “차량용 반도체, 전기차 부품소재, 전기차 배터리 등 생산 능력을 갖춘 SK그룹이 차량공유와 같은 미래 모빌리티 분야 전략 투자로 주가 측면에서 순항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SK㈜가 신속하고 효과적인 신사업 투자와 M&A를 위해 IB업무 방식과 노하우를 내부에 접목한 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SK㈜는 IB 전문가를 SK SUPEX(수펙스)추구협의회 임원으로 영입, SK㈜ PM(포트포리오 매니지먼트)팀 내 핵심 임직원 대상 금융투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PM 1·2·3팀을 주축으로 신사업 지분 투자 및 M&A를 검토하는 SK㈜에 IB 역량은 딜(Deal) 발굴부터 인수 후 통합까지 없어서는 안 될 핵심”이라며 “SK㈜는 지난해 이미 IB 노하우를 접목했다”고 했다.
SK그룹은 SK㈜ 직원을 대상으로 IB 경험을 배우게 하는 것은 물론 정통 IB 전문가도 끌어모으고 있다. 연봉과 직급도 기존보다 대거 상향 조정해 불러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SK㈜ 자회사 SK E&S로 온 박종욱 전 바클레이즈캐피탈 코리아 대표가 대표적이다. 박 전 대표는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다이와증권 등을 거친 정통 IB맨으로, LG디스플레이 상장, 하이마트 매각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은 그때그때 저명한 인사를 만나면 그 사람 영향을 크게 받는 스타일이라 딥체인지 선언 후 많은 IB 전문가를 만나고 모시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안다”면서 “불발됐지만 안성은 도이치은행그룹 대표 영입 시도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현대차는 최근 들어 IB를 비롯해 컨설턴트 출신 인력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전략기술본부 오픈이노베이션센터로 회계법인 딜 본부 출신 실무자와 같은 외부 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 사모펀드 인력 영입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와 M&A를 주로 진행하는 오픈이노베이션센터에서 가치 평가, 투자 구조화, 자금 조달 등은 투자 사업 속도를 내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현대차가 외부 인력 수혈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만으로도 놀랄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품질경영을 내세운 정몽구 회장 아래서 현대차는 사실 물량배분, 신차투입시기 조정, 부품업체 간 균형, 시장점유율과 외형 성장에 치중하느라 외부보다 내부 인력 활용을 우선했다”면서 “최근 전략기술본부로 외부 인력을 충원하는 것 자체가 큰 변화”라고 말했다.
IB업계에선 현대차 전략기술본부와 SK㈜의 향후 행보를 주목한다. 과거 재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곳은 기조실 또는 재경본부였지만, 앞으로는 신사업 발굴을 앞두고 투자금이 몰리는 곳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신사업 발굴을 위해 자체적인 기술 개발보다 스타트업을 비롯해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조직을 흡수하거나 협업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때 중요한 것이 어떤 조직에 효과적으로 투자할 수 있을 것인가이니만큼 IB 출신 전문가 등 금융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한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기업으로 퍼지는 IB DNA…신사업 투자 위해 너도나도 ‘전문가 모시기’ 제조업 기반 대기업이 신사업 투자를 위한 이른바 IB DNA 이식에 나섰다. 국내외에서 M&A와 지분투자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대기업에 투자 전반을 관리할 수 있는 IB 전문가는 핵심인력으로 꼽힌다. 지난해 CJ대한통운은 JP모건에서 M&A 자문을 맡았던 이희재 본부장(전무)을 성장전략실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보다 앞서 한미사이언스는 삼일회계법인에서 M&A 부문을 맡았던 김재식 총괄을 재무총괄책임자(CFO)로 임명했다. SK네트웍스에서 M&A 실무를 담당하던 윤승환 파트장은 지난해 말 한국타이어 월드와이어 성장전략팀장에 올랐다. IB 전문가 영입은 M&A 성과로 나타났다. 한미사이언스는 김 CFO 임명 7개월 만에 의약품 관리 부문 글로벌 회사인 제이브엠과 M&A를 맺었다. 당시 김 CFO는 총 인수금액 1290억 원 중 현금은 20%만 내고 나머지는 주식 지분을 맞교환하는 스왑 방식을 적용해 M&A를 성사했다. 오영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실제 투자 경험이 적은 사람이 딜을 진행하면 시행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신사업 투자를 결정한 대기업은 IB 전문가가 가진 풍부한 경험과 투자 실행 관련 효율적 업무방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