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국정원장을 시범적으로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이렇게 무리를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런 논리라면 장관이나 대법원장도 도지사, 시장, 군수 모두 회계직원이 된다. 대통령과 국정원장은 안보공동체다. 대통령을 직속으로 보좌하는 국정원장이 자신의 재량범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돈을 보낸 게 국고손실죄라면 검찰총장이 자신의 판공비 일부를 장관에게 보낸 경우나 법원행정처장이 대법원장에게 돈을 보낸 경우는 전혀 다른 것일까.
사법부의 존립근거는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법원의 무리한 법해석은 국민의 신뢰를 잃는 독이다. 지금 이 사회는 분노한 대중이 법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권력이다. 그들의 큰소리가 여론으로 포장되고 있다. 분노한 대중은 본능적으로 파괴할 대상을 찾기도 한다. 사법부는 광풍에 떠밀려가는 돛이 아니라 국가의 중심을 잡는 닻이어야 한다.
혁명기에 법과 재판소는 혁명의 도구로 이용되곤 했다. 5·16 이후 혁명재판소는 법의 형식을 취했지만 혁명의 도구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과연 올바른 법령해석을 했던가. 당시 소신껏 법률의견을 제시한 대법관들은 모두 쫓겨나고 권력과 영합한 법관은 승진하면서 영화를 누렸다. 광주의 5·18문제에 대해서도 사법부는 처음에는 폭동을 일으킨 군중으로 보았다. 그러다 권력이 추락을 하자 이번에는 광주시민들을 민주화를 지키려는 헌법기관으로 바꾸어 해석했다.
권력의 변화에 따라 법과 재판은 시대를 마감하는 포장재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법부가 무리한 법해석으로 살아있는 권력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을 억지로 회계직원으로 간주해서 처벌하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는다. 지나가는 시민 누구에게 국정원장이 회계공무원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관례같이 역대 국정원장이 다 하던 짓을 특정인만을 골라 처벌하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적폐에 대해 형사책임을 물으려면 당당하게 불법한 사실들을 찾아내어 공정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 결론을 정하고 억지로 꿰어맞추는 논리의 장난은 비겁하다. 법관들은 법기술자가 아니라 올곧은 법률가이어야 한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