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망 구실을 한다. 단 한 곳, 군대를 제외하고 말이다. 군에서는 보안이 가장 중요하다. 군은 자료 유출이나 해킹 위협 때문에 업무 대부분을 인트라넷으로 처리한다. 전세계가 연결되는 인터넷과 달리 인트라넷은 특정 조직 안에서만 사용되는 폐쇄적인 연결망이다. 군 인트라넷으로 접속할 수 있는 외부 웹사이트는 국방 관련 웹페이지 등 극히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군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병은 업무 시간 도중 여유 나는 시간이나 당직 때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사람 냄새 났던 곳은 공군이 모인 카페 ‘공군공감’이었다. 공군은 한때 육군이나 해군도 제한적으로 글을 보거나 쓸 수 있게 해줬다. 여자친구가 군인 남자친구에게 편지를 써주는 ‘사랑은 수송기를 타고’라는 게시판이 인기가 많았다. 판타지 소설, 연애 소설, 연예인 사진, 게임, 음악 파일, 만화, 동영상, 플래시 게임, 맛집 리뷰 등이 공유됐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건 야한 소설이었다. ‘내 여자친구는 일본인’ ‘롯데리아 혜진 누나’ 등이 수작으로 꼽혔다.
시간이 지나며 콘텐츠는 진화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 유명했던 감자 배구는 시간이 지나 피카츄 배구가 됐다. 야한 소설은 계속 살이 붙어 연재물로 재생산됐다. 한 예비역은 “야한 소설을 읽다가 초반부와 후반부의 필체가 완연히 다른 것을 발견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2016년 6월까지만이었다. 공군은 육해군이 오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악성 댓글로 인한 육해공군의 사이버 전쟁이 자주 벌어졌고 불건전한 게시물이 계속 올라왔던 까닭이었다. 넘치는 간부 욕과 여자 간부 외모 품평도 처치곤란이었다. 각 부대 훈련 날짜 등 보안 사항 공유는 특히 결정적이었다.
육군 행정병은 갈 곳을 잃었다. 이들은 인트라넷 여기저기를 뒤져가며 게시물을 공유할 곳을 찾아 헤맸다. 주요 목적지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특정 홈페이지의 게시판이었다. 주로 후방 사단이나 국방대학교, 국군병원 게시판이 대상이었다. 그곳은 ‘대피소’라고 불렸다. 국방일보와 육군교도소 재판대기 게시판까지도 대피소로 이용됐다.
대피소는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오래가지 못했다. 사용자 유입이 많아지면 홈페이지 관리자가 알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피소로 이용된 특정 게시판은 폐쇄되거나 가입승인제로 바뀌었다. 이렇다 보니 행정병에게는 자료 지키기가 생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한 사병 전역자는 “대피소가 활성화 됐을 때 그곳에 올라오는 자료를 컴퓨터에 저장해 놓는 게 그날 근무자의 작은 업적이었다. 한창 대피소 검열이 심해졌을 때 본부대에서 검열을 온 적도 있었다. 모든 자료와 기록까지 삭제했다. 임시 데이터까지 다 뒤졌다. 자료를 보관하던 동기가 휴가제한 징계를 받기도 했다. 군무원이 대피소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갔다”고 했다.
탄압(?)이 심해지다 보니 자료를 지키려는 행정병의 보관 기술도 발전했다. 한 예비역은 “보안 감사가 나올라 치면 파일을 죄다 압축한다. 다른 부대나 다른 사무실에 인트라넷 메신저로 연락해서 자료를 다 보낸다. A 사무실을 검열하는 동안 B 사무실로 파일 전송해놓고 A 사무실에서 파일을 다 지운다. B 사무실로 검열관이 이동하면 다시 그 파일을 받아 A 사무실에 저장해 놓는다”고 했다.
보관된 자료는 대피소로 지정된 특정 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피소가 마련되는 특정 부대 정보는 외부 부대랑 교류가 많은 보급계 사병이 전달했다. 보급계 사병이 대피소의 정보통이었던 셈이다. 정보통 역시 진화했다. 암호 방식으로 바뀌었다. ‘국방 헬프 콜’이라고 군 고충 상담 게시판에 대피소 주소가 암호로 공지됐다. 예를 들면 ‘철의 근원지’라는 글이 내용 없이 올라온다. 간부가 보면 도통 알 수 없지만 철의 근원지가 가리키는 곳은 6사단 홈페이지다. 대피소 암호에 익숙해지면 철의 근원지에서 ‘철’의 근‘원’지를 따로 떼어내어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6사단은 철원에 있다.
7월 24일 페이스북 웹툰 페이지 ‘오늘의 창작’에 올라온 군 대피소 에피소드 ‘인트라넷 게르만족’ 가운데 대피소 지킴이의 합참본부 침입을 표현한 장면. 익살스런 사병과 근엄한 간부의 표정이 폭소를 자아낸다.
2017년 춘삼월 따뜻한 바람이 불 때 합동참모본부 홈페이지엔 피바람이 불었다. 대피소로 사용됐던 클린신고접수함 게시판은 합동참모본부 감찰실에서 관리하던 게시판이었다. 당시 게시판에 접속해 있었던 한 육군 행정병에 따르면 게시판을 지켜보던 감찰실 간부가 이상한 게시글 아래 “글을 지우면 봐주겠다”는 댓글을 남겼다. 게시판에 모여 있었던 육군 행정병 대부분은 간부의 댓글을 사병의 사칭이라고 판단했다. 익명이었던 까닭이었다. 되레 간부의 댓글 밑에 욕설을 쓰고 “인증해 보라”고 간부를 자극했다. 결국 간부는 자신의 계정으로 들어와 “이제 됐습니까?”라고 증명했다.
그날이 육군 행정병의 대피소 마지막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몇 명은 영창에 보내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육군 인트라넷에는 암흑기가 찾아왔다. 국방 헬프 콜의 암호도 사라졌다. 현역 사병에 따르면 자료를 가진 이들이 품앗이를 해 자료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지만 올릴 곳을 아직까지도 마땅히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태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합동참모본부 인트라넷에 클린신고접수함이란 게시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 게시판은 내부공익신고를 접수하는 익명 게시판이다. 2017년 3월에 실제 그런 일이 있는지는 군 내부 규칙상 알려줄 수 없다. 다만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지금도 10여 개 정도 게시물이 내부공익신고가 아닌 목적으로 올라와 있다는 것”이라며 “글 때문에 영창 보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정도로 영창을 보내진 않는다. 신고 목적 외의 글이 올라오면 댓글로 삭제해 달라고 한 뒤 일정 기간 지나 완료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사병의 놀이공간을 만들어 줄 순 없을까. 국방부 관계자는 “사병의 수가 너무 많아 각 군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은 각 군에 위임한 상태”라며 “사병의 고된 점 잘 알고 있지만 국방부가 나서서 공간을 만들어 주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육군본부 관계자는 국방부의 이런 반응을 전해 들은 뒤 “국방부에서 각 군에 위임했다곤 하지만 이런 문제는 국방부가 중심이 돼서 명을 내려 줘야 각 군이 발맞춰 해결할 수 있다”며 “차라리 국방부에서 육해공군 전체가 모일 수 있는 통합 게시판을 만들어 주면 사병 입장에서도 이를 관리하는 간부 입장에서 여러모로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육군본부 홈페이지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군 관련 시설은 재미로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특정 게시판을 만들어 달라는 사병의 요구도 없어서 향후 설치 계획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인트라넷 게르만족’ 마지막 장면. ‘일요신문’은 ‘오늘의 창작’ 작가와 협업해 이 기사를 만들었다.
현재 육군 행정병은 남는 시간에 오갈 데가 없어서 인트라넷 좁은 바다를 이곳 저곳 떠돌고 있다. 어쩌면 2000년대 초반부터 쌓여 온 육군 행정병의 사료가 다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를 전해 들은 한 전역자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