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월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방산비리는 국민을 배신한 중대한 이적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무사 문건을 놓고 국방부 장관과 현직 대령이 공개석상에서 폭로전을 벌인 후 군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했던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방산비리 척결’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도 “우리의 안보 능력을 잠식하는 거대한 비리는 전부 해외 무기 도입”이라며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있었던 무기 비리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산·군납 비리와 같은 예산집행과정의 불법행위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라며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히 척결해 뿌리를 뽑을 것”이라고 했다. 그 직후 매머드급 규모의 방산비리합동수사단이 설치됐고,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당시 기소된 사건 중 상당수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등 ‘부실수사’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군 내부에선 뒷말이 무성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에서 진두지휘했던 수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2000년대 중반부터 대형 무기 계약을 독식해왔던 업체를 견제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업체와 경쟁하던 곳을 밀기 위해 방산비리 수사를 기획했고, 그 배후엔 친박 실세가 있다는 것이었다. 업계에서 잘나가던 로비스트들이 자취를 감췄고, 대신 새로운 로비스트가 등장했는데 이들 모두 친박 실세들과의 친분을 내세웠다. 실제 이들이 대형 무기 계약을 따낸 사례도 있다. 방산비리 척결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무기 계약 과정에서 발생하는 커미션을 따내기 위한 꼼수라는 의혹이 파다했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하자마자 적폐청산 일환으로 방산비리를 겨눴다. 특히 방산업체와 친박 실세 간 커넥션에 초점을 맞췄다. 박근혜 정권 시절 이뤄진 무기 계약 과정도 면밀히 살펴봤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다소 지지부진한 측면이 있었지만 문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방산비리 척결을 주문함에 따라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기무사를 포함해 군 일각에서 문재인 정부 개혁에 대한 조직적 저항 움직임이 속속 드러났다. (방산비리 척결을 통해) 이를 정면돌파하겠다는 게 문 대통령 생각”이라면서 “한국형전투기사업(KFX)을 비롯해 박근혜 정권 시절 의혹이 많았던 몇몇 무기 관련 사업을 들여다보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군은 물론 방산업계엔 긴장감이 흐르지만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역대 정권 방산비리 수사가 그랬던 것처럼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무기 로비스트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국내에서 로비스트의 활동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무기 계약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무기 계약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한 대형 방산업체의 경우 2~3명의 로비스트가 군과 정치권을 상대로 은밀한 로비를 벌인다는 게 여러 번 의심돼 사정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혐의 없이 풀려나기도 했다.
한 로비스트는 “무기 계약을 성사시키면 받는 커미션이 얼마인지 아느냐. 대략 3~5프로 수준이다. 1000억짜리 규모라면 최대 50억은 받는다는 얘기다. 한 건만 제대로 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이라면서 “대부분 외국 국적이거나 다국적 업체에 소속된 로비스트들이 많아 국내 수사력으론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로비스트는 “인맥이 중요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다. 소수의 로비스트들이 오랫동안 활동하는 이유”라면서 “박근혜 정권 때 새롭게 떠올랐던 로비스트의 경우 친박들과 가깝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 때 모두 사라졌다. 로비스트 수사가 그래서 어렵다”라고 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대두됐다. 방산업체들은 정권 출범 전부터 로비스트들을 통해 친문 인사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한 로비스트는 “무기 계약이라는 게 정권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통상 대통령 임기 초 로비스트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정치권과 군 실세들과 어떤 친분을 쌓느냐에 따라 5년이 좌우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찌감치 당선이 유력했기 때문에 방산업체들이 후보 시절부터 라인을 형성하려 애를 썼던 것으로 안다. 지금 몇몇 방산업체가 현 정권과 비교적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라고 귀띔했다.
로비스트들은 지연, 학연 등을 총동원해 인맥을 쌓는다. 로비스트 1세대로 통하는 린다김처럼 ‘미인계’를 활용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 친문 실세들을 상대로 한 로비 역시 비슷했다고 한다. 한 친문 의원의 고등학교 후배로 알려진 로비스트가 여의도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다국적 방산업체에 소속된 로비스트는 과거 운동권 출신의 동생이라는 것을 내세워 문재인 정권 신주류로 꼽히는 운동권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방산업체 임원은 “로비스트들이 이번 정권 실세들에게 접촉하기 위해 애를 썼고, 또 일부는 관계가 맺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이뤄질 무기 계약의 결과를 보면 과연 성공한 로비였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친문계 중진급 의원은 “나도 식사 자리에 나갔더니 방산업체 쪽 사람이 나온 적이 있다. 사업가라고 했지만 로비스트로 보였다. 신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을 막긴 어렵다”면서 “일부 친문 인사들이 (방산업체) 사람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말이 있던데, 일이 커지기 전에 스스로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