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노웅래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 당대표 후보들이 1일 오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공명선거실천 서약식을 갖고 서명한 서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정치권에선 민주당 전당대회가 다소 싱겁게 끝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유력한 후보였던 이해찬 의원 출마로 최대 계파인 친문 진영의 교통정리가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컷오프에서부터 친문계 표심은 갈렸고 ‘이해찬 대세론’은 깨졌다. 당 규정에 따라 득표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이 의원 측은 자체 예상보다 낮은 표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컷오프를 통과한 김진표 송영길 이해찬(가나다 순) 의원 모두 범문재인계로 분류되긴 하지만 그 결은 다르다는 평이다. 굳이 나누자면 김 의원은 친문, 이 의원은 친노, 송 의원은 신친문에 가깝다. 송 의원의 경우 당초 비문계였지만 지난해 대선 때 선거대책본부 총괄본부장을 맡으며 신친문으로 떠올랐다. 당권을 놓고 여권 주류가 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1차 전선은 김진표 이해찬 의원 간에 형성됐다. 이 의원을 지지하는 친노 정청래 전 의원은 자신의 SNS에 “한번 맞춰 보실래요? 다음 중 최순실 은닉재산 몰수 특별법 발의에 동참하지 않고 완강히 거부한 사람은?”이라는 질문을 냈다. 보기로는 “1. 김진표, 2. 송영길, 3. 이해찬”을 내놨다. 발의에 참여하지 않은 김진표 의원을 겨냥한 글이었다. 인터넷상에서도 이 의원 지지층은 김 의원을 집중 공격하는 모양새다.
김 의원도 TV토론회 등을 통해 이 의원을 겨냥했다. 김 의원은 “이 의원은 보수궤멸, 20년 연속집권 등 발언으로 야당의 반발을 샀다”며 “이런 식의 불필요한 공세와 논란은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친문 핵심으로 꼽히는 전해철 의원 지지를 받고 있는 김 의원 측은 “문심이 우리에게 있다”는 얘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친문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너도나도 친문’을 외치긴 했지만 ‘뼈문’ ‘진문’은 아니지 않느냐. 친노 역시 마찬가지다. 한 뿌리이긴 하지만 친문과 친노는 분명 다르다. 전당대회를 계기로 각자도생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권을 잡지 못할 경우 다음 총선과 차기 대권에서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우려와도 맞물린다. 청와대 중심으로 국정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당권에서마저 멀어져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김진표 이해찬 의원 지지를 놓고 친문이 분화하자 ‘문심’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 의중에 따라 친문 표가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청와대는 철저히 선을 긋고 있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그 어떤 뜻도 밝히지 않았다. 당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이는 자칫 친문계 내부 갈등으로 비칠 것이란 우려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내심 특정 후보를 원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친문계의 한 핵심 의원실 관계자는 “청와대는 무엇보다 야당의 협조를 잘 이끌어낼 후보가 되기를 바란다. 민생과 개혁 입법 처리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강성인 이 의원에 비해 비교적 온건파로 꼽히는 김 의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김 의원을 지지하는 친문 의원 역시 사석에서 “문재인 정부 최대 불안 요소는 경제와 민생이다. ‘경제통’인 김 의원의 당선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친문 핵심부가 이 의원을 껄끄러워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친노 좌장으로서 ‘할 말은 하는’ 성격의 이 의원이 당 대표가 될 경우 청와대로선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청와대의 김 의원 지지설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여권 일각에선 ‘김진표 대표, 전해철 사무총장’ 시나리오가 세워졌다는 음모론도 공공연히 돈다. 친문 핵심들이 총선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무총장 자리를 보장받고 김 의원을 밀어준다는 게 골자다.
이 의원 측은 친문 의원 상당수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자신했다. 전해철 의원을 비롯한 친문 소장파 의원들이 김 의원을 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 의원은 “정치하면서 이런 것이 부담되지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실제 이 의원은 민주당 대표 적합도를 묻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26.4%로 1위를 차지했다. 김 의원(19.1%)과 송 의원(17.5%)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의원은 민주당 당원들의 표심을 유추할 수 있는 민주당 지지층 430명 여론조사에서도 35.7%를 기록해 가장 앞섰다. 송 후보 17.3%, 김 후보는 14.6%의 지지율을 보였다. 두 후보가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수치였다(7월 31일과 8월 1일 실시된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리얼미터 홈페이지에서 확인).
이 의원은 약점으로 공격받는 소통과 협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TV토론회에서 “(지금까지) 소통을 많이 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열심히 잘하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야당과의 협치에 대해서도 “최고 수준의 협치가 당연한데, 다른 당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노력이 소홀했다”고 했다. 이 의원은 ‘경제 대표’를 내세운 김 의원에 맞서 “강한 리더십으로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해야 한다”며 ‘강한 대표’를 부각했다.
이 의원을 지지하는 한 의원은 “문재인 정권의 성공 여부는 다음 총선에 달려 있다. 세대 교체를 통한 개혁 공천이 관건이다. 이 의원이 총선 불출마 카드를 꺼낸 것도 이 때문으로 봐야 할 것이다. 본인이 먼저 희생하겠다는 얘기다. 이러한 진정성이 당원들에게도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문심이 김 의원에게 있다거나, 이 의원이 청와대에 섭섭해 한다는 등의 말은 호사가들이 만들어낸 소설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과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좋다”고 말했다.
친문의 이러한 분화로 인해 송 의원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송 의원은 비문계와 호남, 86그룹(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에서 두 의원에 비해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유일한 호남 출신(전남 고흥)인 송 의원의 ‘호남 대표론’이 먹힌다면 컷오프에서의 돌풍이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체 권리당원 중 호남은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18만 7336명으로, 27%에 달한다. 21%의 서울(14만 4595만 명)과 20%의 경기(13만 9121명)를 크게 웃돈다.
당 대표 선거는 대의원 현장투표 45%, 권리당원 자동응답시스템(ARS) 투표 40%, 일반 여론조사 15%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동안 권리당원 표심이 투표 결과를 좌우해왔다. 송 의원을 지지하는 한 비문 의원은 “친문 표가 분산되고, 호남에서 몰표가 나온다면 송 의원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선거”라면서 “김진표 이해찬 의원은 누가 되든 패권주의와 올드보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 대통령에게 가장 부담이 덜한 후보가 송 의원”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