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업체 아나리츠 로고. 아나리츠 홈페이지 캡처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아나리츠는 2017년 중순까지 수많은 P2P 중소업체 중 하나였다. 그러다 원금과 이자를 확실히 지급하는 믿을 만한 중개 업체로 ‘갓나리츠’로 등극하면서 순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자율이 높은 만큼 위험부담이 큰 P2P 업계에서는 안정성, 신용이 중요한데 이를 아나리츠가 확보한 게 주효했다.
그런데 6월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원금 상황은커녕 이자조차 주지 못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는 P2P 도산 사례였던 헤라펀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2016년 9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부동산 PF대출 사업을 하겠다고 홈페이지에 올린 투자 건은 사실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출상품 138건 중 128건이 허위 상품이었다.
이들이 갓나리츠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평균 약 16%에 달하는 고액 이율을 약속한 데다 투자금의 2%를 백화점 상품권으로 지급했다. 고액의 이자와 함께 백화점 상품권까지 주는 갓나리츠에 투자자들이 점차 금액을 더 많이 늘려갔고 결국 돌려 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게 된 셈이다.
검찰이 대검찰청 자금추적팀과 함께 계좌를 조사해 본 결과 사실상의 대표이사였던 이 아무개 씨 등은 1만여 명에게 3만 7222차례에 걸쳐 돈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아나리츠 측은 약 1300억 원을 받아 978억 원을 반환했고 322억 원을 상환하지 못했다. 이 중 112억 원에 대해서는 일부라도 회수 가능한 대출 채권이 있었다. 공주시 아파트 현장 대출, 건설업체 대표에게 집행한 대출, 경기도 광주 공사 대출, 인천 청천동 공사 대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나머지 210억 원은 주식투자, 회사 운영비, 돌려막기 비용 등으로 이미 쓰여 피해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다.
아나리츠가 상환하지 못한 금액 사용처. 사진=수원지방검찰청 수사결과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 결과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아나리츠가 애초부터 사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사라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이사였던 정 아무개 씨는 다른 직장을 다니며 명의만 빌려준 속칭 ‘바지사장’이었다. 정작 아나리츠를 실제 운영한 이 씨는 자신의 실명을 이민호(가명)이라고 속이며 시간이 지날 때마다 또 다른 바지를 찾아 나섰다. 아나리츠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정 씨 이전의 대표이사들도 모두 바지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질적으로 마지막으로 걸려든 사람이 현직 대표이사인 정 씨로 보인다.
정 씨는 현재 구속된 상태에서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 아나리츠 관계자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 씨는 대표이사로 활동하지 않았다. 그는 또 다른 직장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정작 아나리츠에는 그의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돈 때문에 대표를 맡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정 씨는 아는 선배를 통해 이 씨와 조 아무개 씨를 만났다. 그들은 새로 차리는 대부업체에 명의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굳이 명의를 빌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 씨는 “우리들은 너무 어려서 미팅하면 깔본다. 법무 업무 계약서 검토도 있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이 대표로 있었으면 해서 모시고자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둘은 같은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형 건설사에서 근무하다 알게 됐다고 해 믿음이 갔다. 이 씨는 운영이사를 맡았고 정 씨는 대표이사가 됐다.
대가는 있었다. 명의 대가로 한 달에 350만 원씩을 준다고 했다. 믿는 선배가 부탁한 데다 생활이 쪼들리던 정 씨는 이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기로 결정했다.
P2P 대부업에 등록하려면 대표가 대부업협회에서 교육을 받은 증명서를 구청에 제출해야 했다. 정 씨는 교육을 받고 교육 필증을 내고 대표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어주는 등의 역할을 했다. 이후 정 씨를 찾는 일은 줄어든다. 그래도 돈은 계속 들어왔다. 아나리츠가 파국을 맞기 전까지 이렇게 받은 돈이 경찰 조사 결과 약 70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다 수사망이 좁혀오면서 대표이사인 정 씨를 포함해 운영이사인 이 씨, 초기부터 이사 직함으로 활동하며 현장 관리 업무를 담당하던 김 아무개 씨가 구속된다. 정 씨 측은 ‘고객간담회에서 대표로서 인사하라고 해 인사말 했을 뿐 아나리츠에 책상도 없었다’며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바로 이민호 씨라고 자신을 소개한 실권자의 정체가 드러나면서다. 놀랍게도 그가 주변에 소개한 정보는 거의 전부는 거짓이었다. 심지어 주변에 소개한 이민호라는 이름조차 정 씨는 수사 과정에서야 알게 됐다. 더군다나 그는 사기 전과 5회의 사실상 사기 상습범이었다. 그가 본명을 숨긴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기 전과로 인해 이름을 감추고 다녔거나 애초부터 사기를 목적으로 접근하지 않았겠냐는 추측이 나올 뿐이다.
사기로 들통난 아나리츠의 이사 구성도 눈길이 간다. 아나리츠는 3개 회사로 등기돼 있다. 아나리츠, 주식회사 아나리츠 캐피탈 대부, 주식회사 아나리츠 대부다. 각 회사마다 경찰, 금감원 등 전직 사정기관 관계자와 금융권 고위 인사가 포진돼 있다. 퇴임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현재 H 중견그룹의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면면을 살펴보면 감사인 정 아무개 씨는 전직 간부급 경찰로 알려졌다. 이사인 박 아무개 씨는 금융감독원 국장 출신이다. 홍 아무개 씨는 아나리츠의 전직 이사인데 시중은행 부행장 출신이다. 홍 씨는 현재 중견그룹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수만 명의 피해자를 만든 기업의 이사를 맡았던 인사가 사외이사로서 회사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 게 적절하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정기관 전직 관계자들이 아나리츠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다만 아나리츠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사정기관에서 조사가 나오기 전에 미리 그 사실을 알고 대비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구속도 피했고 불구속 기소도 되지 않아 별다른 처벌 없이 이번 사태를 피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구속된 실질적 대표 이 씨는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구속된 ‘바지’ 역할을 했던 정 씨는 현재 구속은 지나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사정기관 관계자들, 금융기관 전직 고위관계자 등은 다 빠져나갔고, 주범인 이 씨와 함께 초기부터 아나리츠에 관여한 대출 상품 모집을 홈페이지에 게시한 이 아무개 씨, 홈페이지 및 고객관리를 담당한 조 아무개 씨가 불구속 기소로 그친 점을 배경으로 들고 있다고 한다. 방조의 책임을 묻는다면 앞서의 이사진들 처벌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사기관이 아직 수사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돈을 대주는 자, 속칭 ‘쩐주’가 누구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밝혀지지 않았다. 사기 전과 5범의 이 씨가 진행했다기에는 규모도 크고 정교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나리츠가 대출 상품을 집행하기 위해 만든 A 시행사 등 두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도 베일에 싸여 있다.
P2P 대출 특성상 개인별 피해액은 소액이다. 하지만 이 돈은 피해자들에게 무척이나 절실한 돈이다. 등록금을 잠시 맡겨 얼마간 이자라도 받고 싶었던 대학생, 약간의 이자라도 더 받으려고 모은 돈을 넣어뒀던 사회 초년생들 등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아나리츠뿐만 아니라 다른 P2P 업체를 강도 높게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아나리츠 피해자는 아나리츠를 수사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 그는 이 청원에서 “업체가 사기를 쳐도 눈감아주겠다는 모임도 있다. 이들은 업체의 사기를 눈감아줘야 돌려막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본인의 투자금을 돌려받을 몇 달만 눈 감자고 한다”며 “몇 달 동안 계속해서 유사한 사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래서는 피해만 더 커질 뿐이다. (사고가 터지지 않은 업체에 대해서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