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선 해녀들이 바다에서 하는 작업을 ‘물질’이라 부른다. 제주 해녀는 보통 10미터 깊이의 바닷속으로 약 1~2분간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한다. 연합뉴스
해녀들이 제주 바다에서 채취한 자연산 전복은 고급 청정 먹거리의 대명사이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최고의 진상품인 전복은 해녀에게 수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제주 여성인 잠녀(해녀)들은 주로 미역이나 해초를, 남성인 포작인들은 전복을 따 정기적으로 진상하거나 관아에 바쳤다. 하지만 진상해야 하는 전복의 양이 점점 늘어나자 힘든 작업을 견디다 못한 포작인들이 제주에서 도망치는 일이 빈번했다. 결국 이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해녀들이 전복을 따서 바쳐야 하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되고 말았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 ‘율기’ 편에는 세종 때의 문신 기건(?~1460)과 해녀에 얽힌 일화가 수록돼 있다. 기건이 제주목사로 부임했을 때 전복을 따느라 고생하는 해녀와 어민의 모습을 보고 ‘백성이 이처럼 괴로워하는데 내가 차마 먹겠는가’라며 그후 밥상에 전복을 올리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일기장인 ‘일성록’ 정조 2년 5월 29일자 기록에도 전복 채취로 인한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정조는 제주목사가 올린 장계를 보고 ‘전복을 채취하기 어려운 상황이 눈에 선하다’며 회전복의 연례 진상을 영구히 감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진상해야 할 많은 전복을 따기 위해 쉼 없이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을 조선시대의 해녀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고 표현할 만큼 고된 작업이었지만, 고초와 수난은 제주 해녀들을 더욱 강인하게 단련시켰다. 척박한 화산토양으로 인해 농사짓기 어려운 환경에서 제주 해녀는 ‘바다농사’를 통해 가정경제를 책임지기도 했고, 남성 중심의 유교사회에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 제주 해녀가 양성평등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제주에선 해녀들이 바다에서 하는 작업을 ‘물질’이라 부른다. 제주 해녀는 보통 10미터 깊이의 바닷속으로 약 1~2분간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한다. 해녀들이 잠수 뒤에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데, 이를 ‘숨비소리’라고 한다. 잠수 중에 생긴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에서 나오는 특유의 호흡 소리다. 해녀들은 숨비소리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신선한 공기를 몸 안으로 받아들여 짧은 휴식으로도 물질을 지속할 수 있다. 물질 기량에 따라 제주 해녀 공동체는 상군, 중군, 하군 등 3개의 집단으로 나뉜다. 상군 해녀는 오랜 기간 물질을 해 기량이 뛰어나며, 지역의 암초와 해산물 서식지 등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고 있어 해녀회를 이끈다. 제주 해녀들은 상군 해녀들로부터 물질에 필요한 지식뿐 아니라 해녀로서의 의무와 삶의 자세를 배운다.
소라 등 채취한 수확물을 정리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주 해녀의 물질 작업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자연친화적인 채집 기술로 지속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는 채취기, 잠수작업 시간, 잡을 수 있는 해산물의 크기 등을 규정하고 물질 작업에 필요한 도구를 통제한다. 해녀회는 언제 어떤 해산물을 얼마나 채취할지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해녀들은 물질을 하는 바닷속을 ‘바다밭’으로 인식해 해산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안가와 조간대(潮間帶)에서 공동으로 청소하고 잡초를 제거한다. 또한 소라나 전복의 종묘를 마을어장에 뿌리는 일에도 참여한다. 이는 바다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녀 공동체에서 동료는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물속에서 닥칠 위험을 상호 예방하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그런 까닭에 제주 해녀들은 동료 해녀에 대한 배려가 깊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해녀탈의장이나 해안가의 불턱(물질 후에 체온이 떨어진 몸을 덥히기 위해 불을 피우는 곳)에서, 초보 해녀들은 선배 해녀들로부터 물질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동료에 대한 배려를 배운다. 실제로 제주 해녀들은 서로 다른 해녀의 행동을 주시하고, 유사시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물질을 한다. 또한 나이가 들어 물질 기량이 떨어지는 해녀들을 위해, 경쟁 없이 이들만이 물질을 할 수 있는 ‘할망바당’(할머니 바다)을 정해 운영하기도 한다.
제주 해녀들은 물질을 생업으로 삼지만, 그 수익이 생계에만 쓰이는 건 아니다. 제주 해녀들은 예전부터 물질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기금을 조성해 마을 안길을 정비하거나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곤 했다. 1950년대 성산읍 온평초등학교의 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1950년 화재로 초등학교 건물이 소실되자 온평리 해녀들은 마을의 한쪽 바다를 ‘학교바당(바다)’으로 삼아 이곳에서 해산물을 채취한 수입금 전부를 학교 건립자금으로 기부한 바 있다. 2016년 유네스코는 제주도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어업의 모범이 되는 제주 해녀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자료=유네스코한국위원회/제주해녀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