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를 해체하고, 새로운 군 정보부대를 만들기로 했다. 해체에 걸맞게 기무사라는 간판도 떼고, 새롭게 시작한다. 새 군 부대 명칭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유력한데, 국방부는 “기무사를 해체하고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사령부를 신속히 창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상당하다. 특히 기무사 내에서는 “계엄령 검토 자체가 엄청 큰 문제인 척 키워놓고는, 결과도 나오기 전에 기무사를 해체했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 문 대통령 휴가 중에도 속전속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국군기무사령부 개혁안을 건의받고 새 기무사령관으로 남영신 중장을 임명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에서 남영신 특수전 사령관의 삼정검에 수치를 달아주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휴가 중이던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독대해 기무사 개혁에 대한 보고를 받고 ‘사령부’를 유지하는 형태의 개혁안을 승인했다. 이 자리에서 남영신 신임 기무사령관이 ‘창설준비단’ 단장으로 임명됐다. 김정섭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6일 브리핑을 통해 “새로운 사령부 창설에 준비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9월 1일 창설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최대한 신속하게 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등 논란이 잇따랐던 기무사의 힘을 빼기 위해 권한을 줄이고, 인원도 대폭 축소한다. 현 4200여 명의 기무사 요원들을 모두 원대 복귀시킨 후, 30% 정도 축소한 3000여 명으로 새로 꾸린다는 게 창설단의 계획이다.
# 해체한다며 ‘사령부’ 유지?
하지만 형태는 사령부를 유지한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2일 오후, 일부 기자들에게 “기무사가 몹쓸 조직은 아니지 않나. 키워야 된다”며 “정상 위치로 돌려놓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개혁을 진행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송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 독대 자리에서 새로운 군 정보기관 역시 기무사처럼 ‘사령부’ 체제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개혁위원회(TF) 등에서는 기무사를 해체하고 이 조직을 국방부 본부로 흡수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정보 부대의 특성을 감안, 사령부급 직할부대로 두자는 쪽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다. 문 대통령 역시 이 같은 보고를 받아들여, 새로운 사령부 창설단 구성을 지시했다는 게 후문이다.
결국 이는 청와대의 권한을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개혁을 계기로 기무사의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 등은 뿌리 뽑더라도, 보안·방첩을 담당하는 군 통수권 보좌 기능은 유지하겠다는 취지이기 때문.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기무사를 국방부 소속 본부나 외청으로 둘 경우) 보안과 방첩이라는 업무가 특수성과 독립성이 필요한데 외청이 되면 민간인을 임명하게 된다. 이 경우 정권교체 시마다 코드인사를 하는 역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 대통령 독대 막았지만, 민정수석실에는 보고
국방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무사령관이 청와대, 더 나아가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청와대와의 연결고리는 살려놨다. 이를 ‘군인’이 아닌, ‘검사 등 군무원‘으로 바꿨을 뿐이다.
이 자리에는 현직 부장검사급인 이용일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사법연수원 28기)이 내정됐다. 현재 이 지청장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창설준비단 법무팀장 역할을 맡고 있는데, 창설 후에는 첫 감찰실장에 보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감찰실장의 주요 역할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 차원에서 △국가 전복 및 방위산업 관련 비리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군 고위 인사의 불법 비리에 관한 정보 등과 관련해 감찰활동을 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하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결국 청와대의 ‘정보 통제’는 유지하겠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는 기무사의 정보력을 적극 활용했다가 사고가 났다면, 이번 정부는 기무사의 정보력을 통제가능한 수준에서만 활용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며 “계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놀란 정부 아니냐, 기무사를 개혁한다면서도 장악력은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몇몇 금지 사항을 새로 정하는 것 외에는, 기존 역할을 대부분 유지한다. 세부적으로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 및 정치활동에 관여 행위 △직무범위를 벗어난 민간인에 대한 정보 수집 및 수사, 기관 출입 등 행위 △국민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 등을 금지했지만, △군사보안과 관련한 인원의 신원조사 △국내외 군사 및 방위사업에 관한 정보 △국가전복, 대테러 및 대간첩 작전에 관한 정보 △장교·부사관·군무원 임용 예정자에 관한 불법·비리 정보 등 군 관련 정보의 수집, 작성, 처리 업무는 유지한다. 결국 기존 기무사의 역할 99%는 유지한다는 게 기무사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익명의 기무사 관계자는 “규모만 다시 키우면 기존 기무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수사는 박차…출구전략은 어떻게?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이 7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박은숙 기자
하지만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혐의의 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법조계 내에서 우세하다. 현행법상 내란 음모죄가 성립되기 위해선 여러 요건이 필요하다. 공격 대상과 목표가 설정돼 있어야 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탄핵심판 기각을 전제로 문건이 작성됐을 정도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법조계 내 중론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내란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겠다는 정도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료 검토’를 지시하고 이를 이행한 수준에 불과하다면 내란음모 성립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연스레 수사단의 ’출구전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기소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내란음모는 기소를 했을 때 후폭풍이 큰 엄청난 혐의”라며 “그렇다고 무죄를 주는 것도 개혁의 명분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 돼 수사단이 적절한 혐의를 찾아 출구전략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자료를 찾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