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내 다른 지역보다 준수하게 받았다는 개성공단 근로자에게 지급됐던 월급은 약 15만 원 수준이었다. 40시간 근무를 가정하더라도 시급 1000원도 되지 않는다. 한국의 8분의 1 수준이다. 무역 거래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격 경쟁력이다. 저렴한 인건비 덕에 북한산 상제품의 가격은 충분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무역업계는 가격 경쟁력이 좋아 북한산 상제품에 늘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제재가 심해지기 전인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북한산 제품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라이터조차 북한산이라고 명확히 적혀 전국 곳곳에 유통됐다. 미국부터 시작된 대북 제재가 UN을 거쳐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자 북한산 상제품은 찾아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전부터 북한산 상제품을 유통하던 수입업체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북한산 상제품을 다른 국적으로 둔갑해 수입하는 일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양, 연길, 용정으로 불리는 선양, 옌지, 룽징 등 북한과 국경을 마주한 랴오닝성과 지린성에 위치한 도시의 일부 중국무역회사는 북한산을 중국산으로 바꿔주는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일단 북한산 상제품을 원하는 구매업체는 중국무역회사와 계약을 맺는다. 중국무역회사는 북한에서 물건을 받는다. 주로 보세구역에서 현금과 맞교환된다. 선철과 의류가 보통 많이 거래됐다. 중국에서 무역을 하는 한 사업가는 “한족이 많이 사는 옌지와 룽징에 가면 오전에 대형 트럭이 많이 왔다 갔다 한다. 이는 대부분 북한 김책제철소에서 나오는 선철”이라고 말했다.
북한산 선철을 공급했던 한 무역상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북한 천리마제철소 생산 선철.
선철은 쉽게 말해 철강 제품의 가장 기초가 되는 철 덩어리다. 철광석과 원료용 석탄을 함께 녹여 쇳물을 굳히면 선철이 된다. 북한산 선철은 싸고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특히 북한 최대 제철소인 김책제철소와 천리마제철소의 선철이 품질 좋기로 알려져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북 제재가 없었던 시절인 2013년까지만 해도 북한의 선철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제법 높았다. 국내 주요 철강사 가운데에서도 북한산 선철을 쓰는 곳이 꽤 있었다”고 했다.
중국무역회사는 현금 거래로 구입한 북한 제품을 주로 단둥항을 거쳐 국외로 수출한다. 완제품은 그대로 수출한다. 반제품은 중국에서 추가 작업을 한 뒤 내보낸다. 의류의 경우 북한의 공장에서 옷을 거의 완성하고 중국으로 가져와 ‘Made in China’ 태그만 꿰매 단 뒤 ‘중국산’으로 국적 세탁돼 수출된다.
선적 서류는 ‘중국 제품’으로 표기된다. 선적 서류는 보통 가격이 적힌 인보이스와 물품 수량과 무게가 적힌 패킹 리스트, 원산지증명서로 이뤄져 있다. 원산지증명서는 판매자가 작성한 인보이스를 기초로 발급돼서 위조가 쉽다. 별다른 확인 작업도 없다.
한때 북한산을 다뤄봤던 한 사업가는 “아직도 북한 상제품을 수입하는 업체가 꽤 있다”며 “지금 러시아항만 다들 관심 있게 지켜 보는데 북한산이 의심되는 상제품 대부분은 중국 단둥항을 거쳐 들어온다. 단둥항에서 들어오는 상제품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