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월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7월 24일 공개석상에서 벌어진 국방부 장관과 현역 육군 대령의 공방은 기무사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별 넷, 대장 출신으로 군 경력 40년이 넘는 국방부 장관과 대령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기무사 100부대장 민병삼 대령은 송영무 장관을 향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그 이후에도 공격을 이어갔다.
이를 본 군의 한 고위 장성은 “기무사 군인들이 평소 상급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라면서 “장관한테도 이러는데 다른 군인들한텐 어떻겠느냐.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군 질서를 무시했던 게 기무사”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도 “기무사에 찍히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부대 지휘관들조차 기무사에서 파견 나와 있는 요원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기무사가 이처럼 군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은 동향 보고와 관련이 깊다. 일선 부대에 배치된 기무사 요원들은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여기엔 부대 지휘관의 업무태도, 충성심 등이 포함된다. 이 보고서에 따라 인사가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에 지휘관으로선 직급과 상관없이 기무사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얘기다. 민병삼 대령이 속한 100부대는 국방부 파견 업무를 맡는 곳이다. 앞서의 군 고위 장성의 말이다.
“100부대의 존재 이유는 기무사와 국방부 간 긴밀한 업무 협조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고위 인사들을 감시하는 역할이 더 크다. 장관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이는 일선 부대도 마찬가지다. 기무사 요원들의 계급이 낮아도 상전을 모시고 있는 셈이다. 여기엔 기무사를 통해 군을 통제하겠다는 권력자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 진급을 앞두고 있는 지휘관들은 인사철만 되면 기무사 요원들 보고서에 신경을 쓴다.”
기무사 보고서엔 군 관련 내용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인들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에 대한 세평과 비위 첩보, 주요 현안에 대한 분석 등도 그 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사찰도 공공연히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유족들도 그 중 하나였다. 기무사령관은 직속상관인 국방부 장관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서를 건네는 경우가 많았다. 기무사 정치개입 논란의 근본적 원인으로 꼽히는 대통령 독대를 통해서다. 이는 기무사에 특권의식이 깊숙이 박히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 때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기무사령관 독대 보고는 이명박 전 대통령 때 다시 부활했다. MB는 기무사 보고서를 상당히 신뢰했다고 한다. MB 정부 때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 했다. 대기업 출신인 MB는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전달하는 보고서를 좋아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기무사 보고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기무사는 보고서를 만들 때 육하원칙에 따라 ‘팩트’만 나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기자가 여러 차례 받아본 기무사 보고서는 다른 사정기관의 그것과는 확실히 구별됐다.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기무사 스타일이었다. 기무사 전직 관계자는 “아마 보고 단계는 우리가 제일 짧을 것이다. 바로 대통령이 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관적 견해 없이 정확한 내용만 담는 데 중점을 둔다”고 귀띔했다.
MB는 다른 기관에서 올라온 보고서에서 의문이 생겼을 때 기무사를 거쳐 확인을 했던 경우가 간혹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검찰에서 대통령 친인척과 관련해 한 기업과의 유착 의혹을 보고했는데, MB는 기무사에 ‘크로스 체크’를 지시했다. 기무사는 며칠 후 이러한 내용이 시중에서 돌긴 하지만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보고했다. 당시 MB는 “청와대까지 올라온 (검찰) 보고서가 단순 의혹만 제기해서야 되겠느냐”는 취지로 말하면서 기무사 보고서에 흡족함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기무사 보고서를 선호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기무사 전·현직 관계자들은 “기무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려 했던 때가 박근혜 정부 시절”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무사 계엄 문건 작성도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한 사례를 들려줬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경영권 분쟁으로 어수선하던 롯데그룹을 향해 전방위 사정 칼날을 꺼냈고,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도 불거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컨트롤타워를 맡은 정권 차원의 기획이었다.
그런데 기무사에서 ‘의미 있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제2롯데월드 수사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보고서였다. 기무사가 청와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사정 드라이브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몇몇 친박 실세가 영향력을 행사해 기무사가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제2롯데월드와 관련해선 요란했던 움직임과는 달리 별다른 결과가 나오진 않았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은 기무사를 각별히 신뢰했고, 이는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군 관계자들은 기무사 전·현직 요원들이 비리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거나 아예 은폐된 사례가 적지 않다고 폭로했다. 군에서도 이를 알고 있지만 쉬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무사 전직 관계자는 “아무래도 기무사가 힘이 센 집단으로 비쳐지다 보니 군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 여러 청탁이 오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군 내부 청탁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 인사와 관련된 것이 많다. 기무사 보고서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앞서의 군 고위 장성은 “지금은 퇴직한 기무사 요원이 현직일 때부터 병역 브로커와 연관이 있다는 말이 많았다. 그를 통하면 보직은 물론 자대 배치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면서 “군 검찰을 비롯해 그 어떤 곳에서도 확인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이 퇴직 기무사 요원에게 돈을 건네고 아들의 보직 변경을 청탁한 적이 있다는 한 60대 남성은 ”지인에게 소개를 받았다. 기무사 요원과 함께 아들 면회를 갔는데, 지휘관이 직접 나와서 잘했다 싶었다”면서 “은근히 대가를 바라는 것 같아 1000만 원가량을 줬는데, 그 후 아들의 보직이 행정병으로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군 안팎에선 기무사와 방산 비리를 연결 짓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군에 대한 영향력은 물론 대통령과의 은밀한 관계 때문에 기무사를 로비에 동원하려는 방산 업체들이 적지 않은 까닭에서다. 굴지의 방산업체를 위해 일하는 한 로비스트도 “기무사 요원들을 통하면 일이 편할 때가 있긴 하다. 특히 누구를 소개받고 싶으면 우선 기무사 요원들에게 부탁하곤 한다. 이들이 전국 일선 부대에 모두 파견 나가 있어 웬만하면 선이 닿더라”면서 “기무사 요원들은 우리가 특별히 관리하는 인맥”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