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국면을 타개하지 못하면 정권의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보수정권 몰락의 근저에는 이명박(MB)·박근혜 전 대통령의 갈등이 깔렸다. 참여정부 위기는 친노(친노무현)계와 동교동의 결별에서 시작됐다. 여권은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다. 차기 권력구도 재편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박은숙 기자
“한 사람도 아니고 같은 당에 있는 복수의 대권주자가 동시에 흔들린 적이 있었나 싶다.” 여권 관계자는 수난을 겪는 3인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계파도 지역도 지지층도 다르다. 박 시장과 이 지사는 비문(비문재인)계로 분류되지만, 뿌리는 다르다. 박 시장은 참여연대 출신의 시민사회계다. 이 지사는 2007년 대선 당시 정동영계에 속했지만, 이후 당 주류인 친노계와 동교동계의 유산 없이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김 지사는 친문(친문재인) 직계 중 직계다. 6·13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에서 승리하면서 ‘포스트 문재인’으로 떠올랐다.
3인 3색인데도 동시에 난타를 당하고 있다. 특정 세력의 주저앉히기 차원이 아닌 여권의 전방위적 위기다. 박 시장 재개발 정책은 정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종북→패륜→스캔들→조폭’으로 이어진 이 지사의 의혹은 연일 확산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 복심인 김 지사는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여권발 미래권력 위기론을 ‘안희정의 나비효과’로 규정했다. 포스트 문재인에 가장 근접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파문으로 몰락하면서 여권 미래권력 구도에 공간이 생겼다는 얘기다. 전 평론가는 “정치에는 늘 연쇄반응이 일어난다”며 “안 전 지사가 무너지면서 흔들림의 진폭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여권발 권력구도 새판 짜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애초 이들 3인방은 당선 직후 보편적 복지에 불을 댕기면서 미래권력 경쟁의 신호탄을 쐈다. 박 시장은 7월 2일 취임사에서 “돌봄 해결을 위해 오늘부터 나설 것”이라며 보육의 완전한 공공책임제를 주창했다. 이 지사는 같은 날 취임 후 첫 업무지시로 경기도가 2년 전 성남시를 상대로 대법원에 제기한 3대 무상복지 사업 관련 소송을 취하했다. 성남시장에서 경기도지사로 변신한 뒤 ‘셀프 소송 취하’를 통해 이재명식 복지를 구체화했다. 김 지사도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도지사 시절 무산시킨 무상급식의 정상화에 고삐를 당겼다.
그러나 무상복지 경쟁은 금세 시들해졌다. 박 시장은 7월 10일 ‘여의도 통째 재개발’ 카드를 꺼내 들었다. 1970년대 개발된 여의도를 50여 년 만에 신도시급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8·2 부동산대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은 상황에서 박 시장의 발언은 서울 집값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7월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도시계획이 실질적으로 진행되려면 국토부와 긴밀한 협의로 이뤄져야 한다”며 옐로카드를 들었다. 박 시장도 이틀 만에 “여의도는 서울의 맨해튼처럼 돼야 한다”며 맞받아치면서 정부와 각을 세웠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 시장이 차기 대권 선점을 위한 용트림을 시작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서울시장 최초 3선 타이틀’을 거머쥔 박 시장은 최대 약점은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 사업 등과 같은 굵직한 업적이 없다는 점이다. 전 평론가는 “박 시장의 최근 이슈 제기는 디테일이 강해 큰 그림을 못 그리는 아킬레스건을 극복하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당 한 관계자도 “3선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10여 년의 장기집권인데, 딱히 떠오르는 업적이 없다면 대권주자로서 치명적”이라고 전했다. ‘박원순의 승부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단 정치권과 언론의 주목을 끌면서 이슈 선점 면에선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집값 안정이라는 정부의 우선 과제와 배치되는 데다, 현실성도 떨어진다는 점에서 차기 대권의 꽃길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박 시장의 용산 마스터플랜 한 축인 서울역~용산역 구간 철도 지하화는 국토부 승인이 필요하다. 철도시설공단과 철도정비창 자리는 국토부 산하기관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유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과 배치되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도시 계획 전문가인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원장은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와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비판받는 셈이다. 박 시장의 대권 용트림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강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7월 22일부터 한 달간 서울 삼양동의 2층 옥탑방에 입주했다. 이에 대해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완전 신판 코미디”라고 혹평했다. 앞서 제기한 보육 공공책임제 등은 온데간데없고 ‘쇼잉 논란’만 남겼다.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재명 지사의 현주소다. 이 지사가 민주당 대권주자로 발돋움할 당시 제기된 의혹은 종북 논란이었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2010년 6·2 지방선거 후보단일화 대가로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이 운영하는 ‘나눔환경’을 청소용역업체로 선정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당시만 해도 ‘이재명 죽이기’는 보수진영에 국한됐다.
이내 전선은 넓어졌다. 6·13 지방선거 당내 경선과 본선 과정에서 형수에게 욕설한 파일이 재부상하면서 패륜 논란에 시달렸다. 배우 김부선 씨와의 불륜 의혹도 제기됐다. 김 씨는 물론, 소설가 공지영 씨도 가세했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광란적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했지만,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의혹 보도는 ‘이재명 죽이기’의 화룡점정이었다. 7월 21일 보도한 이 방송은 이 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이 성남국제마피아파에 연루됐다고 폭로했다.
당 내부에선 탈당 요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8·25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진표 의원은 공개적으로 “결단을 내려달라”고 압박했다.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친문계 관계자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이 지사는 여기까지’라는 분위기가 퍼졌다”라며 “‘이재명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는 8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적당히 맞으면 포기와 타협을 생각하게도 되는데 너무 많이 맞으면 슬슬 오기가 생기지 않나“고 말했다. 이틀 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기자회견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겨냥, “다큐멘터리를 빙자해서 판타지 소설을 만들면 가만히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 지사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 법적 조치에 들어갔다.
김경수 지사는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을 죽음으로 내몬 드루킹 의혹의 정점에 서 있다. 김 지사는 8월 6일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소환돼 18시간 동안 밤새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이 출범한 지 41일 만이다. 그는 ”킹크랩 시연회를 본 적도 없다“면서 댓글조작 공모 의혹, 인사청탁 및 불법선거 의혹 등을 모두 부인했다.
김 지사는 1차 소환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유력한 증거나 그런 게 확인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허익범 특검팀은 8월 9일 재소환으로 응수하면서 압박 강도를 높였다. 김 지사는 특검팀이 재소환 방침을 정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는 어떤 길을 가더라도 설사 그 길이 꽃길이어도 늘 조심하고 경계하며 걸어가라는 뜻인 것 같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이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 지사와 청와대 송인배 정무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의 커넥션을 밝혀야 한다”며 특검 연장 카드로 압박했다.
여권 속내는 복잡하다. 당 내부에는 ‘김경수 지키기’와 ‘포스트 문재인’을 분리해야 한다는 기류도 적지 않다. 민주당이 일단 “정치특검의 오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며 ‘김경수 엄호’에 나섰지만, 김 지사의 차기 대권행에는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는 얘기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에서 당이 총력 지원에 나섰는데 생각보다 김태호 전 자유한국당 후보와 격차를 벌리지 못했다”며 “‘김경수=포스트 문재인’ 가능성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귀띔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들 3인방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차기 총·대선 과정에서 대안주자가 부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보수진영 TK 수장 권영진·이철우도 곤욕 광역자치단체장의 수난은 진보 인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수의 마지막 보루인 대구·경북(TK) 광역자치단체장도 위기를 맞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6·13 지방선거 때 전국 17곳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중 TK 두 곳에서만 가까스로 이겼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6·13 지방선거 과정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고발됐다. 지난 5월 5일 현직 지방자치단체장 소속으로 조성제 달성군수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본인의 업적을 홍보하고 지지를 호소한 혐의다. 앞서 지난 4월 22일 동구의 한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에서도 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 권 시장은 7월 31일 피의자 신문으로 검찰에 소환, “시민들께 걱정을 끼쳐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가 고발한 지 두 달여 만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벌금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게 되면 그 직을 상실한다. 권 시장 측은 “고의성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는 “엄정한 수사와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동남권 제2 청사 건립’을 둘러싸고 뭇매를 맞고 있다. 경북도청을 이전한 지 2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이 지사가 제2 청사 건립 구상을 밝히자, 경북은 북부와 동남권으로 갈라졌다. 특히 북부 주민들은 “경북 최대도시인 포항 유권자를 의식한 표 장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선 ‘출근 저지’ 등 실력행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공직사회에서도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구에서 안동으로 이전한 공무원들은 언제 포항으로 전입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 지사가 제2청사 추진 과정에서 공직사회와의 대화 등 공론화 과정이 거의 없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지사는 당선인 시절 “결혼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범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해 시대착오적 발상이란 비판을 받았다. SBS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7월 26일 보도에서 이 지사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인사 청탁성 문자를 보낸 청탁자 중 한 명이라고 폭로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