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수사에 드러난 공정위의 ‘취업 경력 세탁’ 프로그램
노대래 전 공정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임준선기자
공정위의 재취업 알선 문화부터 짚어보자. 검찰 등에 따르면 퇴직 간부를 챙겨주려는 공정위는 치밀하게 움직였다. 공직자윤리법 위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퇴직 예정자들을 관련 기업 업무에서 미리 빼는, 이른바 경력 세탁도 진행했다. 경제 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위의 요구에 기업들도 순순히 자리를 내줬다. 이를 조율하기 위해 기업 인사담당 임원들을 공정위로 불러들여 퇴직 간부 취업 관련 회의를 하기도 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공정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기업도 퇴직 공정위 출신들에게 특별한 업무를 주지 않고, 억대의 연봉을 지원했다. 이렇게 1~2년간 편의를 누린 해당 간부들은, 후배 퇴직자가 나오면 자리를 물려주는 식으로 운영돼 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에게 갑(甲)의 위치에 있는 게 공정위 아니냐”며 “누가 아무 대가 없이 수억 원의 인건비를 추가 지출하겠냐. 부탁할 게 있으면 당연히 청탁을 넣기 위한 자리였을 것이고 공정위도 이를 충분히 감안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역시 이 과정에서 공정위 퇴직 간부에게 자리를 제공한 기업들이 공정위로부터 특혜를 받은 사실이 없는지도 수사 중이다.
# 벌벌 떠는 다른 공공기관? “재취업 관행은 있는데”
문제는 이게 공정위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공정위원회 외에도 다수의 공공기관들이 승진 경쟁에서 밀린 퇴직 예정 고위 간부의 재취업을 챙겨준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 공기업 관계자는 “몇몇 힘 있는 기관의 경우 인사팀 등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승진 경쟁에서 밀렸거나 퇴직을 앞둔 고위 간부들이 1~2년 정도 더 명함을 파고 다닐 수 있도록 민간이나 외부 공기업들의 자리를 알아보는 것”이라며 “각 기관마다 ‘어느 회사 어떤 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암묵적인 룰도 있다. 그 자리를 다른 기관 은퇴자에게 내주지 않도록, 우리 기관의 몫으로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2014년 국정감사에서는 한국은행 퇴직 임원급들의 ‘재취업’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국은행 퇴직자들의 재취업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1급 이상의 임원급 인사들이 퇴직 직후 한은 고유 업무와 밀접한 기관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는데, 당시 추흥식 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을 비롯한 부총재보 등 1급 이상 고위직 20명은 퇴직 후 한국투자공사·JP모건·골드만삭스 등 유수의 글로벌 IB와 금융기관에 고문·감사 등으로 재취업했다.
특히 추 전 원장의 경우 외자운용원장 임기를 다 채우기도 전에 한국은행의 위탁운용사인 한국투자공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에 대해 “이들 고위직의 재취업과 한국은행 외환보유고 위탁운용사 선정이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 정부 말로만 공직자 재취업 심사 강화?
공직자의 재취업에 대해 정부는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0명 중 9명 이상이 별 문제 없이 재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에 따르면, 2014∼2017년 취업제한 심사를 받은 전체 공직자 1465명 중 1340명(93%)이 취업 승인을 받았는데 취업제한 심사를 받은 퇴직공직자 수가 212명(2014년)에서 436명(2017년)으로 4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는데도, 취업 승인률은 84%(2014년)에서 93%(2017년)으로 늘어났다. 기관 차원에서 경력 관리를 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히 국가정보원과 한국은행을 퇴직하고 취업제한심사를 받은 공무원들은 100% 재취업이 가능하다고 승인받았고, 경찰청은 99%, 국세청은 97%가 재취업에 성공했다. 갑(甲)의 위치에 있는 공직기관일수록 재취업률이 높았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공정위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조사·고발권을 가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주요 권력기관과 그곳의 퇴직자들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금융기관 관계자는 “심지어 한국은행은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에 있는 금융기관인데도 재취업이 쉽지 않냐”며 “우리 기업을 문제삼고 있는지 내부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라도 퇴직 간부를 모셔가겠지만, 만에 하나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 같은 우월적 위치에 있는 갑(甲)이 ‘퇴직 간부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을(乙)에게 부탁하면 누구라도 거절하지 않고 고문이나 감사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