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감독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예비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사상 최초로 야구대표팀 전임 감독에 선임됐던 선동열 감독.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야구대표팀을 이끌어갈 그한테 이번 아시안게임은 첫 시험무대나 다름없다. 야구대표팀은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우승(김인식 감독)에 이어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선 3위(김재박 감독)를 차지했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조범현 감독),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류중일 감독)에선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당연시 하는 상황. 선 감독으로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가장 큰 고민은 대회가 70일 이상 남았다는 점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야구대표팀 최종 엔트리를 발표할 당시 선동열 감독이 털어 놓은 속내다. 당시 선 감독은 주최 측의 요구로 다소 이른 시점에 엔트리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가 6월 11일이었다. 그러나 경쟁국 일본은 6월 18일에, 대만은 6월 27일에 최종 엔트리를 발표했다.
선 감독은 “분명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발탁된 선수보다 더 좋은 기량을 선보일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왜 예상을 못 했느냐’라고 지적한다면 할 말이 없다. 대회 개막이 임박해서 뽑았다면 좋았겠지만 최종 엔트리를 서둘러 제출하길 원했던 주최 측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현시점에서 최상의 선수를 선발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불길한 예상은 현실로 나타났다. 병역미필자들의 선발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들 중 부진을 거듭하거나 부상을 당한 선수도 나타나는 바람에 선 감독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최정은 왼쪽 허벅지 근육 손상을, 박건우는 오른쪽 옆구리 외복사근 미세 손상으로 현재 1군 엔트리에서 빠져 있다. 차우찬도 교체 대상으로 꼽힌다. 7월 한 달 동안 등판한 4경기에서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13.75의 성적을 냈다. 양현종과 함께 대표팀 원투펀치로 꼽힌 투수인데 부침이 심한 것은 물론 최근 고관절 부상을 안고 뛰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선 감독은 10일까지 부상자를 면밀히 체크한 후 다음 주에 대체 선수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표팀의 상황에 대해 김인식 전 대표팀 감독은 다음과 같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표팀을 이끌다보면 선발 명단을 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듣기 마련이다. 꼭 마지막에 두세 명 정도의 선수와 관련해서 말이 나온다. 그렇다면 선동열 감독이 직접 나서 선수 선발과 관련된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왜 이 선수를 뽑아야 했는지, 이 선수가 왜 필요한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했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김 전 감독은 현재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가 기술위원회를 통해 대표팀 선수들이 선발되지 않고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회의를 통해 최종 엔트리가 결정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대표팀을 맡을 때만 해도 기술위원회가 구성됐었다. 기술위원회가 열리면 대표팀 감독이 들어가서 기술위원회 위원들과 선발 명단을 놓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런 과정에서 한두 명 정도의 선수 관련해 의견이 엇갈린다. 서로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 기술위원회에선 감독한테 최종 결정을 위임한다. 감독이 써야 할 선수니까 감독한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선발된 선수들에 대해 비난이 들끓는다 해도 감독한테 쏠리는 부담이 덜하다. 기술위원회를 통해 선발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책임을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질 수밖에 없다. 기술위원회가 아닌 감독, 코칭스태프에서 최종 엔트리에 오를 선수들을 뽑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말들이 많아졌다. 감독과 코치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수를 선발했느니, 병역 면제 혜택을 주기 위해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뽑았느니 하면서 말이다.”
야구국가대표팀 선동열 감독과 코치진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 24명 결정을 위한 마지막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전 감독도 대표팀을 이끌 때 이런저런 오해를 받았다고 말한다. 기술위원회에서 뽑은 선수들임에도 말이 나오는 상황인데 선 감독은 더 큰 오해를 받을 거란 말도 덧붙였다.
1990년생인 오지환과 박해민은 지난겨울 상무 야구단 또는 경찰 야구단 지원을 포기하고 팀에 남기로 했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대표팀 선발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선 감독은 이런 상황을 잘 알면서도 오지환과 박해민을 뽑았고 이런 결정은 일부 야구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김 전 감독은 “실력이 있으면 뽑는 거지만 선수 선발에 잡음을 없애려면 10개 구단에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뛰는 선수들 중 제일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뽑아야 한다. 그랬다면 이런 잡음이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선동열 감독으로선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전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아마추어 선수가 단 한 명도 선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문제라고 말했다. 선 감독은 이미 아마추어 선수를 발탁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김응용 대한야구소프볼협회 회장님께 ‘저희 이번에 꼭 금메달 따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고 양해를 구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아마추어 선수 1명을 발탁했던 전례에 비췄을 때 선 감독의 결정은 아마추어 야구 관계자들로부터 큰 공분을 샀다. 얼마 전 한국 대학야구 감독자 협의회는 아마추어 선발 미발탁에 대한 비판 성명서를 내고 대학 야구를 죽이는 선택이라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 전 감독은 이와 관련해서 “아무리 그래도 아마추어 선수 1명 정도는 뽑았어야 한다”면서 “성적 내려면 아마추어 선수를 빼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아마추어 야구가 살아야 프로도 사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민훈기 SPOTV 해설위원도 기술위원회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감독과 코칭스태프한테 전권을 부여한다고 기술위원회를 없앴다고 하지만 오히려 기술위원회의 부재가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더 힘들게 만든 것 같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24명의 엔트리에 뽑히지 못한 선수나 구단 입장에서는 아쉬운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일부 선수들의 병역 문제가 계속 부각되고 있는 것도 선 감독한테 부담이 될 것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지만 이번 대표팀의 병역 문제가 더 심하게 두드러지는 것 같다. 최종 엔트리를 너무 일찍 확정한 것도 그렇고 대표팀이 대회를 치르기도 전에 이런저런 구설에 흔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을 차지한 대표팀 민병헌이 금메달을 깨물고 있다. 연합뉴스
선동열 감독은 당연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김인식 전 감독은 “한국으로선 금메달을 따도 본전이다. 하지만 금메달을 당연시할수록 이상한 변수에 휘말릴 수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기를 당부했고, 민훈기 해설위원은 “(금메달을) 못 따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답했다.
한편 야구대표팀 기술위원회 제도를 폐지한 것과 관련해서 KBO 장윤호 사무총장은 “전임감독 제도가 시행되면서 자연스레 기술위원회를 없앤 것”이라면서 “이건 정운찬 총재 때가 아니라 구본능 총재 때 결정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전임감독 제도가 시행되고 코칭스태프가 구성되면서 기술위원회 제도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왜냐하면 코칭스태프가 현역 코치, 해설위원 등 다양한 형태의 야구인들로 구성돼 있다. 기술위원들도 비슷한 직업군들로 구성되는데 그렇다면 굳이 코칭스태프를 제외하고 기술위원회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본 듯하다. 그래서 구본능 총재가 계실 때 전임감독제를 시행하면서 기술위원회를 없앴다고 알고 있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대만, 인도네시아, 홍콩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18일 소집되는 야구대표팀은 잠실구장에서 이틀간 훈련을 소화한 뒤 23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할 예정이다. 한국의 첫 상대는 26일 맞붙게 되는 대만 대표팀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제2의 최동원·선동열 나와야 한다” 김인식 전 감독의 고언 김인식 전 감독은 대표팀 관련된 얘기를 주고받다가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되짚었다. 노감독의 목소리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대표팀을 이끌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투수였다. 한국은 10여 년 동안 류현진과 같은 빼어난 실력의 투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투수난은 국제대회에서 더욱 크게 느껴진다. 아마 선동열 감독도 금메달을 자신하면서 실력이 떨어지는 투수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것이다. 지난해 청소년대표팀에서 뛰어난 실력파 투수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프로 입단 후 어떤 모습을 보였나. 처음에는 반짝 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왜 그런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근본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 전 감독은 “제2의 최동원, 선동열이 나와야 한다”면서 “상대팀 벤치에서 부담을 느낄 만큼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이는 투수가 보여야 하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런 선수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도 오타니 쇼헤이와 같은 투수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에 거품이 많이 낀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선수들 몸값이 높아지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그에 걸맞은 수준 높은 야구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왜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많이 하는지, 왜 우리는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하는 선수가 적은지도 알고 싶다. 거품이 많이 낀 선수들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하는 건 아닌지도 반성해 볼 부분이다. 매번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 들이밀며 실력 향상을 게을리한다면 결국 그 모든 건 한국 야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김 전 감독은 개인적으로 ‘리빌딩’이란 단어를 싫어한다고 잘라 말했다. “건강한 조직은 베테랑과 젊은 선수들이 균형을 이루는 팀이다. 리빌딩이란 전제를 깔고 나이 많은 선수들을 내치고 젊은 선수들로 팀을 꾸린다면 그 팀이 잘 돌아갈 수 있겠나. 그 젊은 선수들은 누굴 보고 자극받고, 누굴 보고 배움을 가질 수 있겠나. 메이저리그식 운영이라며 리빌딩 운운하고 야구인 출신의 단장을 앉혀 놨다고 해서 팀도 메이저리그가 될 거란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감독이 상대팀 감독과 기 싸움을 하고 선수들을 리드하면서 끌고 가는 힘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야구하는 걸 보면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할 지경이다. 모두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보자. 과연 한국 프로야구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말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