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은 4월 12일 청년농을 대상으로 하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농업정책자금 스마트팜 종합자금지원 1호 대출자로 딸기 재배 스마트팜 신축 자금을 신청한 A 씨(여·27)를 선정했다. A 씨는 전남대 원예생명공학을 전공하고 농업 관련 연구소 인턴, 국외 농업전문기관 연수, 특허 출원까지 하는 등 농업 기술과 경험이 풍부한 청년농업인이라고 농식품부는 설명했다. A 씨는 “개인적으로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청년농이지만 당당한 면모를 갖춘 영농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자 선택이었다”며 “영농의 꿈을 가진 예비 청년 농업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다”고 언론에 말했다.
5월 17일 서울 마곡 R&D 단지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스마트팜 원격 제어 시연을 살펴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2018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대회의 8대 정책 가운데 하나가 스마트팜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농식품부는 A 씨를 지원하며 청년농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팜 종합자금지원의 첫 삽을 떴다. 이는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부총리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개최됐던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스마트팜이 8대 정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 뒤 나온 첫 정책자금 지원이었다. 스마트팜은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각종 기기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농작물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해 주는 지능화 농장이다. 초기 자금이 부족한 청년 농업인 대상 지원은 올해부터 추가됐다. 1인당 최대 30억 원 한도까지 1~1.5%의 저금리 대출이 가능한 상품이 나왔다. 대출액의 90%를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해 실패 부담도 덜었다. 대출 받는 사람은 제출한 사업계획서의 예산 10%만 자가 부담하면 된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익명을 원한 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관계자는 “담보 없이 대출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벤처 지원 등 혁신금융이라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농업계 학맥과 인맥 등을 활용한 부정 지원 등은 우려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었다. 이유는 일반 대출과 달리 스마트팜 종합자금지원 대출은 정량적 평가인 재무 평가가 없는 까닭이었다. 자격증 유무, 전문 컨설턴트의 사업 성공 가능성 평가가 대출 심사에 필요한 전부였다.
긍정적인 반응과 우려가 함께 서렸던 스마트팜 종합자금지원의 첫 단추부터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지원 1호였던 A 씨의 정성 평가에서 주요 이력 가운데 하나였던 한 농업 연구소 연구원 경력이 문제가 됐다. 스마트팜 전문 컨설턴트였던 농협은행 농식품금융부 관계자는 A 씨 지원과 관련해 “대학과 연구소에서 쌓은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다”며 “특허까지 보유한 데다 다양한 첨단시설 도입계획이 있어 사업성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A 씨가 기술력을 쌓았다고 알려진 한 농업 연구소는 전남에 위치한 딸기 및 각종 원예 작물 연구개발 컨설팅 회사였다. 문제는 이 농업 연구소의 대표가 A 씨의 부친이라는 점이었다. 단순 근무만 한 게 아니었다. A 씨는 대외적으로 부소장이라고 알려졌다. 또한 좋게 평가 받은 A 씨의 해외 연수 경력은 2015년과 2016년 네덜란드와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 3회에 걸친 6주 연수로 나타났다. 부친 회사인 농업 연구소 소속으로 다녀온 연수였다. A 씨는 자신의 부친 소유 농업 연구소에서 일한 경력과 연수 경험이 좋게 인정 받아 30억 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A 씨의 부친은 농업 연구소만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 전남에는 딸기 농가 370곳이 주축이 된 전남딸기광역클러스터사업단이 자리하고 있다. 2009년 농식품부에서 정식 사업단으로 선정한 단체다. 2015년 농식품부의 총 12억 원 규모 딸기 전문 육묘 국제인증 사업 진행 때 7억 2000만 원 국비 지원 대상으로 뽑히기도 했다. A 씨 부친 소유의 농업 연구소는 전남딸기광역클러스터사업단의 운영 주체라고 언론에 알려진 바 있었다. 사업단은 연구소 외에도 딸기 생산 및 가공, 유통하는 회사까지 출자했는데 이 회사 소유주 역시 A 씨의 부친이었다. 결국 A 씨 부친은 전남의 딸기 생산과 가공, 유통, 지역 내 농가 연합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두고 한 농업인은 “A 씨에게 나간 청년농 스마트팜 대출은 사실상 A 씨의 부친을 지원하는 대출”이라며 “청년을 지원하려 만든 제도가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부농 가족에게 흘러 들어간 건 분명 잘못된 일“이라며 ”농협은행이 한술 더 떠 A 씨 부친의 이력까지 공개한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이 대출 상품을 만든 근본적인 취지를 농식품부와 농협은행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A 씨는 아직까지 부친의 농업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정황이 발견됐다. A 씨는 ‘일요신문’에 “대출을 받은 뒤 아빠의 농업 연구소를 퇴사하고 4월 내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었다. 지난 3일 ‘일요신문’이 이 농업 연구소에 전화를 걸어 “A 부소장을 부탁한다”고 말하자 직원은 A 씨를 연결해 줬다. 앞선 5월 20일 전남대 SMART 영농 창업 특성화 사업단을 이끌고 A 씨 아빠의 연구소에 방문했던 전남대 한 교수는 A 씨를 부소장이라고 가리킨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이에 A 씨는 “4월에 퇴사했지만 현재는 온실 기초공사 현장과 연구소를 오가면서 아빠의 농업 연구소 부근의 비닐 온실에서 딸기육묘와 추후 제 온실에 필요한 딸기 품종을 조직배양하며 보내고 있다”며 “전남대 교수님께서 착각하셔 영상 하단에 저를 부소장이라고 적은 거다. 난 연구원이었다. ‘일요신문’ 전화를 받은 직원은 제 이름을 듣고 연결해 준 거지 ‘부소장’이라는 직급을 듣고 저를 바꿔준 게 아니었다. 부소장님은 따로 계시다”라고 해명했다.
A 씨는 이 상품 출시에 앞서 대출 관련 정보를 농협은행의 스마트팜 전문 컨설턴트에게 얻었다고 나타났다. 농협은행 농식품금융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 A 씨에게 스마트팜 관련 컨설팅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올해 있을 스마트팜 정책자금 집행 계획을 소개했다. 나중에 실제 A 씨가 신청해서 대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농업 관련 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뒤 창업의지를 가진 대상자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당장 창업할 수 있는 여건 등 비중 평가 항목을 따졌을 때 70점 이상이 된 지원자가 6명이었다. 경력도 중요하지만 관련 교육을 얼마나 꾸준히 들었나, 자질이 얼마나 되는가 등의 비재무적 평가를 거쳐 가장 빨리 시작 가능했던 A 씨부터 선발했다. 나머지 지원자 일부도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라며 “A 씨 부친이 담당하는 클러스터 사업은 수익 사업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A 씨가 부친의 배경 때문에 피해를 본다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한 의혹에 대해 어려움도 토로했다. 그는 “A 씨와 아빠의 관계 때문에 잡음이 나는 건 이해한다. 허나 농촌에서는 대를 이어 농업을 하려는 젊은 세대가 전무하다. 젊은이는 다 도시로 나가려 한다. 농업인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의 대출 자가 부담금 10%조차 대주면서까지 자식을 농업인으로 키우고 싶어한다. 농촌을 살린다는 측면에서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 대출 상품에서 청년이 내야 할 자가 부담금 10%를 많다고 보는 사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10억 원 이하 농업 관련 대출 상품 가운데 자가 부담이 전혀 없는 상품도 마련돼 있다. A 씨는 10억 원 이상의 사업에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1호 대출자로 선정된 거다. 우리의 목적은 젊은이의 농업 진출을 독려하고 농업을 활성화시키는 거지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려는 게 전혀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A 씨 부친은 전남대 출신으로 전남농업마이스터대학을 운영하며 전남대 겸임교수,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던 사람으로 나타났다. A 씨에게 대출을 실행한 농협은행은 전남대가 주류로 알려져 있다. A 씨 부친은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위원장으로 있고 김태년 정책위 의장을 비롯한 여당 의원 13명과 벤처기업 대표, 교수 등 원외 전문가 17명이 참여하는 조직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 A 씨의 아빠는 “전남딸기광역클러스터사업단장으로 법인 대표를 맡아 왔지만 지난 주주총회에서 대표 사임했다. 딸기 전문 육묘 국제인증 사업에 드는 12억 원 가운데 국비 7억 2000만 원 지원은 선정 뒤 사업포기로 반납했다”며 “더불어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회 스마트팜 분야 민간위원으로 2번 참석한 적은 있지만 민주당원도 아니다. 정치권과 관계 없다”고 해명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