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도’라는 가명의 소년과 조지타운 대학 병원의 어느 사제에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엑소시스트’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곧 영화화되었다. 감독은 윌리엄 프리드킨. ‘프렌치 커넥션’(1971)으로 최연소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했던 촉망 받는 신예였다.
촬영 현장은 심상치 않았다. 악령 들린 소녀 리건 역을 맡은 린다 블레어가 엄마 역을 맡은 엘렌 버스틴을 밀어서 쓰러트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갑자기 솟아난 괴력으로 힘껏 밀어 버스틴은 거의 공중에 떴다가 떨어졌다. 이때 등을 심하게 다치며 실제로 큰 비명을 질렀는데, 이 장면은 영화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이후 버스틴은 평생 등 부분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상한 건 같은 부위를 린다 블레어도 다쳤다는 것. 블레어는 주로 침대 위에서 연기를 했는데, 침대가 공중 부양하는 장면에서 고정 장치가 고장 났고, 침대에서 튕겨져 나간 블레어는 등 부분을 크게 다쳤다. 세트에 불이 나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퇴마 의식이 이뤄지는 리건의 방만 멀쩡했다.
잭 맥고란
하지만 이런 사고들은 어쩌면 사소할지도 모른다. ‘엑소시스트’는 실제의 죽음과 관련된 영화였다. 이상하게 촬영 기간 동안 영화와 관계된 사람들과 그 주변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일단 영화에 출연한 두 명의 배우가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하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그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도 죽는 역할이었기에 충격은 더했다. 버크 데닝스 역을 맡은 잭 맥고란은 당시 유행하던 런던 독감에 걸려 합병증 증세를 일으켜 5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바실리키 말리아로스는 제이슨 밀러가 맡은 카라스 신부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배우였다. 영화 속에서 카라스 신부는 노모를 방치해 외롭게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악마에게 공격당하는데, 그 어머니 역을 맡은 말리아로스는 영화가 끝나자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프리드킨 감독이 그리스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나 캐스팅했던 말리아로스는 단 한 편도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는 비직업배우. 역할에 적합한 이미지로 캐스팅된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를 마치 소명처럼 마치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바실리키 말리아로스
몇몇 배우들은 촬영 기간 동안 상을 당했다. 메린 신부 역을 맡았던 막스 폰 시도우의 첫 촬영 날, 그의 형이 세상을 떠났다. 린다 블레어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도 ‘엑소시스트’ 촬영 기간이었다. 카라스 신부 역의 제이슨 밀러에겐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이 있었는데, 촬영 기간에 안타깝게도 어린 아들은 먼 곳으로 떠났다. 촬영 현장의 야간 경비원, 특수효과 전문 스태프도 죽었고, 카메라맨의 갓 태어난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면 우연이 아니라 진짜로 어떤 저주처럼 여겨지는 상황이었다. 영화가 완성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전세계 가톨릭의 중심인 로마에서 시사회를 하던 날, 천둥 번개와 함께 폭풍우가 몰아쳐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 근처에 오래 된 교회에 번개가 쳐, 400년 된 십자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폴 베이트슨
세월이 지나도 저주는 잦아들지 않았다. 1979년, 영화평론가 애디슨 베릴을 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한 남자가 체포되었다. 그의 이름은 폴 베이트슨. 알고 보니 그는 적어도 여섯 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으로, 사체를 토막 내어 비닐 백에 넣은 후 허드슨강 주변에 버렸던 흉악한 인간이었다. 이때 그의 과거를 조사하던 경찰은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베이트슨은 NYU 메디컬 센터에서 방사선 기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있었던 것. 바로 ‘엑소시스트’였고, 리건이 엑스레이 검사를 받던 장면에 그가 등장했다.
메르세데스 맥캠브리지
‘엑소시스트’가 개봉된 지 14년이나 지난 1987년. 그녀의 아들 존 마클은 ‘스티븐스’라는 투자사에 취직한다. 선물 거래 전문가였던 그는 큰 실적을 내며 승승장구했는데, 회사 감사실에서 이상한 사실을 발견한다. 마클이 어머니 이름으로 비밀계좌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던 것. 그는 회사 돈으로 사적인 펀드를 유용했고, 손실이 생기면 회사 돈으로 해결했다. 내부 조사 결과, 계좌를 만들 때 어머니인 맥캠브리지의 사인을 위조한 것이 밝혀졌다. 결국 그는 해고되었고, 회사는 유용한 공금을 상환하라며 법적 조치를 취했다. 이때 맥캠브리지는 아들을 도와주지 않았고, 곤경에 빠진 마클은 1987년 11월 두 통의 유서를 남기고, 아내와 두 딸(14세, 9세)을 총으로 쏴 죽인 뒤 자살한다. 갑작스러운 비극이었고, ‘엑소시스트’의 저주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호사가들의 수군거림이 다시 떠돌기 시작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