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고성준 기자
8월 14일 네이버에 게재된 ‘文대통령 “기무사, 국민 배신…‘정치악용 금지’ 제도화해야”’ 기사의 경우 최신순(오후 1시 30분 기준) 댓글 100개 중 89개가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나머지 11개 댓글 중 9개는 문 대통령 옹호 댓글, 2개는 중립적인 내용의 댓글이었다.
해당 기사는 이날 문 대통령과 관련된 기사 중 가장 조회 수가 높은 기사였다. 문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가 아니었음에도 비판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댓글이 크게 늘어난 것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민희 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장은 “댓글 실태는 우리도 알고 있고 우려하고 있다.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식 팬카페인 문팬에도 달라진 인터넷 여론을 우려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8월 13일 한 회원은 요즘 민주당 및 대통령을 욕하는 인터넷 방송이 많아졌다면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적었다.
정부여당 칭찬 일색이던 댓글 기조가 180도 달라진 것에 대해 네이버 댓글 정책의 영향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네이버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이후 정치 뉴스에서 순공감순 댓글 정렬을 폐지하고 최신순으로만 정렬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네이버는 댓글 조작을 막고자 계정 1개로 하루에 쓸 수 있는 댓글도 20개로 제한하고 있다.
바이럴마케팅연구소 전효백 소장은 “댓글창이 있는 한 하려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 (댓글조작을) 할 방법이 있겠지만 (최신순 댓글 정렬로 바뀐 후)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 소장은 “순공감순으로 정렬하던 때에는 한 번에 상위 댓글을 장악해버리면 끝이었지만 이제는 (댓글조작을 하려면) 실시간으로 꾸준히 작업을 해야 한다. 기사 하나당 몇 사람이 붙어서 계속 관리를 해야 한다. 인력이나 시간이 몇 배로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 옹호 댓글을 달던 달빛기사단, 문꿀오소리 등 여당 지지자들의 활동도 뜸해졌다. 정권 초기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달빛기사단, 문꿀오소리 등의 커뮤니티, SNS계정 등을 통해 댓글운동에 참여했다. 운영자가 특정기사의 좌표(기사 링크)를 게시하면 회원들이 몰려가 댓글을 다는 방식이다.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달빛기사단만 해도 비슷한 이름의 커뮤니티나 SNS계정이 수십 개에 달한다. 한 달빛기사단 운영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언론 기사들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며 밤새 댓글방어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어떤 대가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달빛기사단 SNS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관리자 이 아무개 씨는 “최근 전당대회 때문에 회원들이 그 쪽에 신경을 쓰다 보니 댓글작업을 하지 않는다”면서 “회원들이 각 후보자 캠프에 참여해 활동하느라 바쁘다. 달빛기사단 내부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정권 초창기만 해도 문 대통령을 돕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댓글 때문에 여론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댓글창이 많이 기울었다는 우려는 나오는데 당분간은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한 달빛기사단 SNS페이지를 살펴봤다. 과거에는 문재인 정부 옹호 댓글을 독려하는 활동을 주로 했는데 최근에는 민주당 전당대회와 관련된 게시글이 크게 늘었다. 같은 달빛기사단이라고 하더라도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다.
한 문꿀오소리 SNS 운영자가 민주당 당대표 여론조사 결과와 함께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게시글을 남겼다.
또 다른 달빛기사단 관계자는 “최근 문 대통령 지지자들과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자들이 대립하면서 진보진영의 화력이 전체적으로 많이 약해졌다”고도 했다. 이 지사 지지자들은 진보진영에서 조직력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이탈하면서 댓글 여론이 급격하게 기울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보수진영의 댓글조작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지난 6월 자유한국당(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댓글조작 의혹을 경찰에 고발했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과거 선거에서 매크로(반복작업) 프로그램을 활용해 댓글 등 인터넷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최민희 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장은 “아직까지 그런(댓글조작) 움직임이 있는지 파악하지는 못했다. 댓글이 비판적으로 변한 것은 알고 있는데 현재 전당대회 때문에 인력이 다 파견되어서 원인을 파악할 인력이 없다”면서 “문 대통령에 대한 악의적 패러디 등이 돌고 있는데 대응할 인력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전당대회 이후 대다수 당직을 개편할 거다. 그 이후에나 당이 대응할 수 있을 거 같다. 전당대회 때문에 당이 제대로 대응 못하고 있는 것도 댓글 여론이 바뀐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치연구소 박정희 소장은 댓글 여론이 급격하게 변화한 원인에 대해 “정권 초기에는 적폐청산 이슈로 보수 성향 국민들이 침묵했는데, 최근 민생 관련 이슈가 불거지자 샤이보수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라면서 “일부 중도층 국민들까지 정부 비판에 동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소장은 “특히 은산분리 완화 등 문재인 정부가 우클릭 정책을 펴면서 진보 진영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직 한국당 의원은 “특정세력의 조작이 있다면 당연히 조사해서 처벌해야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댓글 여론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지자들과 당이 댓글 방어하겠다고 나설 때가 아니다. 민생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