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임시국회가 열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강조한 인터넷전문은행(이하 인터넷은행) 활성화를 위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곳곳에 걸림돌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야는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 지분 보유 한도와 대기업집단 제한 여부 등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할 것으로 보여 국회 통과는 난항이 예상된다.
자산 10조 원 돌파가 코앞인 카카오가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예상된다. 박정훈 기자
일단 산업자본의 지분 보유 한도와 관련해서는 34%까지 높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대기업을 배제하는 등 세부 내용엔 이견이 많아 막판까지 뜨거운 격론이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특례법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해당 법안에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현행 4%(의결권 있는 주식)에서 34%로 늘리되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를 금지하고 총수가 있는 대기업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담겼다. 인터넷은행을 위해 예외적으로 문턱을 낮춰주더라도 은산분리 원칙은 훼손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특히 격론이 예상되는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을 특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것인가 여부다. 현재 여야가 논의의 토대로 삼는 정재호 의원의 안에는 산업자본 중 총수가 있는 자산 10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은 제외했다.
문제는 이렇게 특례법이 만들어지면 카카오뱅크의 주주인 카카오가 해당 규제에 발이 묶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자산이 8조 5000억 원에 이르는 카카오뱅크의 산업자본 대주주 후보인 카카오의 자산 10조 원 돌파는 시간문제다. 게다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이미 총수로 지정돼 있다.
이대로 가면 카카오는 은산분리 완화에 맞춰 지분율을 더 높여 카카오뱅크 최대주주로 올라서려던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카카오뱅크의 자본금 1조 3000억 원을 고려하면 최대주주 등극과 동시에 카카오의 자산은 9조 8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자산이 10조 원을 넘어서면 4% 초과 지분의 의결권이 사라지며 금융당국으로부터 지분 매각 명령을 받는다.
물론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추가로 취득할 지분 규모를 새로운 법안에 맞춰 조정한다면 잡음 없이 주주 간 지분 거래를 매듭지을 수도 있다. 카카오뱅크에 추가 증자 계획이 없는 것도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여겨진다. 현재 보통주 10%와 전환주 8%를 보유한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에 대한 지분율이 15% 이상으로 확대됐을 때 1대주주인 한국투자금융지주(지분율 58%)로부터 지분을 매수하는 콜옵션을 보유 중이며 추후 논의를 거쳐 이를 행사할 예정이다.
여야와 정부가 ICT기업에 대해선 ‘10조 원 룰’ 적용을 배제하는 쪽으로 논의를 할 전망이라는 점도 긍정적이다. 금융권에서는 카카오 등 ICT기업은 10조 원 룰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고 있다.
다만, ‘10조 원 룰’ 적용을 받지 않을 ICT기업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는 또 다른 쟁점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혁신 IT기업’의 정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와 상통한다. 삼성전자나 SK텔레콤 등도 넓은 범위에선 ICT기업에 해당할 수 있는 만큼 이들과 카카오와 네이버 등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관건이다. 일각에선 ICT기업 간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선을 긋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이 지난 4월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사옥에서 열린 기자 설명회에서 1주년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케이뱅크는 대주주 KT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증자조차 시도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KT가 지하철 광고 아이티시스템 입찰 과정에서 담합으로 2016년 3월 7000만 원 벌금형을 받았는데 이 사실이 대주주 심사 부적격 요인에 포함된 것. 은행법 시행령에서는 의결권 있는 주식의 10%를 초과 보유할 때 금융위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 최근 5년간 금융·조세 등 법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을 받은 일이 없어야 한다.
당초 케이뱅크는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KT를 주축으로 대대적인 자본 확충에 나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KT의 공정거래법 위반 사실이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최소 3년간 증자가 지연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런 부분은 금융위원회가 경미한 사안이라고 판단한다면 승인받을 수 있다. 이에 케이뱅크 측도 당국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가 ‘사안경미’를 들어 KT에 추가출자의 길을 터주는 데는 많은 부담이 따른다. 케이뱅크 출범 당시 ‘최순실 게이트’에 적극 협조해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특혜를 줬다는 논란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가 다시 KT의 담합 벌금형을 ‘사안경미’로 보고 지분투자를 가능토록 승인할 경우에는 더욱 거센 특혜 논란에 휘말릴 위험이 높다.
KT 측은 “전례를 봤을 때 더 많은 벌금을 부과받고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경미한 사안으로 판단받은 사례들이 있다”면서 “대통령까지 나설 정도로 정부의 규제 완화 의지가 강한 만큼 현명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권 관계자는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 반대 여론이 꽤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특정 기업에 유리한 방식으로 법이 만들어진다면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