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프로그램에서는 잡음이 자주 나온다. 얼마 전 ‘전지적 참견 시점’의 제작진이 개그우먼 이영자의 출연 분량을 세월호 희생자를 비하하는 듯 악의적으로 편집해 한동안 방송이 중단된 사태가 벌어진 데 이어 이번에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관찰프로그램에서 또 사건이 터졌다. 프로그램 출연진이 제작진을 향해 공개적으로 “악마의 편집”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신규 프로그램들의 성적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0년간 MBC 예능을 이끈 ‘무한도전’의 부재를 넘어 취임 7개월을 맞은 최승호 신임사장이 밝힌 청사진이 정작 시청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출연자 부부가 악마의 편집 논란을 제기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방송 화면 캡처.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악마의 편집 논란
관찰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일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청자와 만난다. MBC가 6월 방송을 시작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도 마찬가지. “결혼 이후 여성에게 많은 책임과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의 관행을 과감하게 꼬집어낼 신 개념 리얼 관찰 프로그램”을 지향하는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연예인 부부나 연예인을 배우자로 둔 며느리가 시부모와 겪는 상황을 보여준다.
새로운 시도라고 알리면서 출발했지만 시청률은 3%대 내외. 크게 화제도 되지 않던 이 프로그램이 최근 논란이 휘말리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출연자 부부 중 한 커플인 개그맨 김재욱 박세미 부부가 프로그램 제작진을 향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김재욱 박세미 부부는 최근 각자의 SNS를 통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제작진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악의적으로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에 필요한 자극적인 설정을 위해 시부모가 자주 집을 찾아오도록 하는가 하면, 마치 고부갈등을 조장하는 듯한 내용으로 편집해 시청자로 하여금 오해를 사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김재욱은 “(프로그램 출연자 중) 우리 집만 악랄한 집안을 만든다”며 “방송 보면서 스트레스 받으신 분들 죄송하다. 방송 고르는 눈이 아직 부족하다”고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아내 박세미 역시 자신을 돕기 위해 집을 찾은 시부모님의 모습이 의도와 달리 편집된 상황을 두고 “악마의 편집, 그게 바로 편집의 힘”이라고 비난했다.
관찰예능프로그램 출연진이 공개적으로 제작진의 편집에 불만을 제기한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경우. 논란이 거세지만 MBC 등 프로그램 제작진은 지금껏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데도 여전히 제작진의 입장을 확인할 길은 없다.
현재 MBC는 교양국에서도 예능 성격이 짙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예능파트와 교양파트의 협업을 통해 관찰예능프로그램 등을 만들고 있는 상황. 이번에 논란이 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물론 노년 연기자들이 손녀손자와 함께 출연하는 또 다른 관찰프로그램 ‘할머니네 똥강아지’도 비슷한 형식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유명인의 일상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MBC의 이런 의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오히려 고부갈등을 유도하고, 젊은 며느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듯한 내용이 주를 이루면서 시청률도 3%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할머니네 똥강아지’ 역시 줄곧 2%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MBC가 제작발표회에서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진 ‘두니야~처음 만난 세계’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진=MBC
# ‘두니아’ ‘뜻밖의 Q’도 부진…‘나 혼자 산다’로 체면 유지
방송가 안팎에서는 MBC 예능프로그램이 겪는 부진에 여러 원인을 제기한다. 대대적인 개편과 새로운 제작 시도가 한꺼번에 이뤄지면서 대중과 친밀하게 소통하는 데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한 축을 이룬다. 이와 함께 “최근 급변하는 방송 제작 환경과 프로그램이 대중에 전달되는 플랫폼의 변화 속에서 몸집이 큰 지상파 방송사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갖는다. 포털사이트를 넘어 최근에는 유튜브, 넷플릭스 등으로 온라인 플랫폼이 빠르게 확대되는 상황에서 방송사가 기민하게 대처하거나 대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견이다.
이런 가운데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진 MBC의 신규 예능프로그램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예능프로그램의 프라임 시간대로 통하는 주말 오후 시청률은 몇 개월째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예능과 게임을 접목한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는 12일 방송에서 1.9%(닐슨미디어·이하 동일기준)의 시청률에 그쳤다. 6월 3일 방송을 시작한 이래 이렇다 할 반등 기회를 잡지 못한 채 부진의 늪에 빠졌다. 비슷한 시간대 KBS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가 12%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SBS ‘런닝맨’ 역시 7~8%를 오가는 상황에 비춰보면 격차가 확연하다.
토요일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10년간 MBC 예능의 대표주자로 꼽힌 ‘무한도전’의 뒤를 이어 5월 방송을 시작한 퀴즈쇼 ‘뜻밖의 Q’ 역시 부진의 연속이다. 11일 방송 시청률이 2.8%에 그쳤다. 같은 날 KBS 2TV ‘불후의 명곡’이 9.6%, SBS ‘백년손님’이 8.7%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 차이가 분명하다.
이들 프로그램은 MBC가 정상화를 외치면서 론칭했다는 사실에서 아쉬움을 더한다. 그동안 경영진의 부당한 제작 개입 등 정치적 탄압과 오랜 파업으로 어려움을 겪은 MBC는 최승호 신임 사장 취임과 함께 방송을 정상화시키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예능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도 시즌제도를 적극 도입하는 등 새로운 방식에 의욕을 보이지만 아직까지 그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MBC 예능프로그램의 체면을 살리는 건 ‘구관’으로 통하는 ‘나 혼자 산다’와 ‘복면가왕’ 정도다. 방송을 시작한 지 각각 5년, 3년째를 맞은 이들 프로그램은 9%대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예능의 명맥을 잇고 있다. ‘무한도전’이 떠난 자리를 간신히 채우면서 화제를 만드는 MBC의 유일한 프로그램으로도 꼽힌다.
MBC의 감독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최근 발표한 2017년 MBC 적자는 565억 원이다. 이에 따른 2018년 적자 예상치는 700억 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미 케이블채널과 일부 종합편성채널에 주도권을 빼앗긴 드라마에 이어 예능프로그램까지 위기를 겪으면서 MBC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