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키한 정장차림에 어딘가 낯이 익은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선 작은 키의 이 남자. 바로 실험적이고 독특한 음악성을 발휘했던 1980년대의 왕자 ‘프린스’(46)다. 그의 대히트곡 ‘Purple Rain’이 연주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섹시 핑크 스커트 차림의 비욘세(22)가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8일 열린 팝음악 시상식 ‘그래미’는 이렇게 과거의 팝왕자와 21세기 팝공주의 조인트 공연으로 막이 올랐다.
원래 음악성과 연륜만을 따져 상을 줘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그래미 시상식이지만 올해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탈바꿈했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데이트를 주선이라도 하듯 과거의 스타와 현재의 스타들의 합동공연이 이어져 관중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프린스와 비욘세의 공연뿐 아니라 비틀즈의 미국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며 이들의 히트곡들을 노래한 스팅, 과거 흑인 펑키 음악 그룹 ‘어쓰 윈드 앤 파이어’와 함께한 신세대 그룹 ‘아웃캐스트’ 등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이색 공연으로 화제를 남겼다. 이로써 그래미는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데 일단 성공한 셈. 연속적으로 발표되는 수상자들도 과거 그래미상의 성격에 비춰볼 때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날 가장 많은 그래미 트로피를 거머쥔 이는 다름 아닌 비욘세였다.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며 춤을 춰 때로는 선정성 시비까지 낳는 그녀지만 그래미마저도 그녀의 도발적 매력에 푹 빠져든 것 같다. 비욘세는 최고 R&B 앨범상(
틴 아이돌 그룹 ‘엔 싱크’(N-Sync)의 미소년 멤버에서 섹시한 인기 솔로 가수로 성장한 저스틴 팀버레이크 역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최고 남자 팝가수상’을 낚아챘다. 아찔한 노출 패션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의외로 점잖은 정장 차림으로 공연을 펼치더니 드디어 ‘최고 여자 팝가수상’에 낙점되었다. 게다가 백만불짜리 엉덩이와 이가 모두 드러나는 시원스런 웃음으로 세상 남자들을 사로잡은 카일리 미노그마저도 ‘댄스 가수’ 부문에서 첫 그래미상을 받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밖에 그룹 ‘콜드플레이’는 영국 출신으로는 7년 만에 ‘올해의 레코드상’을,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재미난 그룹 ‘아웃캐스트’가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젊은 세대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시작한 그래미가 언제까지 이 전략을 고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미국의 보수파 음악인들로부터 그래미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상을 받은 뒤 기뻐하는 비욘세 놀즈. 로이터/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