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장고 끝에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인 이해찬 의원까지 등판했지만, 판을 바꾸기는커녕 계파 경쟁 흐름은 한층 강화됐다. 이 국면을 극복하지 못하면, 누가 당 대표에 오르든 기다리는 것은 ‘위기의 민주당’이다. 최악의 경우 ‘진보판 박비어천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들이 14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100분 토론’ 녹화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기호순)송영길 김진표 이해찬 후보. 사진공동취재단
퇴행으로 얼룩진 민주당 8·25 전당대회는 예고된 수순이다. 최대 변수였던 이해찬 의원이 마지막 열차에 탑승하면서 당 주류의 분화는 가팔라졌다. 특히 예비경선(컷오프)에서 김진표·송영길·이해찬(가나다순) 의원이 나란히 본선행에 오르자, 친문 내 쟁투는 극에 달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탈당을 둘러싼 갈등 국면에선 “당 주류 좌장과 실세 간 골육상쟁(가까운 혈족끼리 서로 경쟁하고 다툼)”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혁신 경쟁을 해도 모자란 판에 민주당 8·25 전당대회가 ‘친문 옥석 가리기’로 전락한 셈이다.
꼬박 빼닮았다. 직전 정부 몰락의 불을 댕겼던 ‘과잉 충성 경쟁’ 얘기다. 박근혜 정부 때도 그랬다. 보수 혁신보다는 ‘박심’(박근혜 전 대통령 의중)이 모든 것을 갈랐다. 애초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로 나뉘었던 계파는 집권 중·후반기로 갈수록 진박(진짜 친박), 뼈박(뼛속까지 친박), 골박(골수 친박) 등으로 분열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홀박(홀대받는 친박), 곁박(곁불 쬐는 친박), 울박(울고 싶은 친박), 수박(수틀린 친박), 쪽박(쫓겨난 친박) 등 온갖 수식어가 난무했다. 친박·비박 갈등은 2016년 4·13 총선의 막장 공천으로 이어졌다. 결국 제1당을 민주당에 내줬다. 이후 국정농단 게이트로 완전히 몰락했다.
집권 2년차에 불과한 문재인 정부의 상황은 다르지만, 민주당 당 대표 경선이 비전 경쟁 없이 ‘문심’(문재인 대통령의 의중)만 바라보는 선거로 전락했다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8·25 전당대회 변수의 처음과 끝은 ‘문심 잡기’다. 송 의원은 “세 후보 중 내가 가장 친문”이라고 선제공격을 날렸다. 이 의원은 “친문은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출마선언 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친문 직계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식사를 하는 등 다분히 친문 지지층을 의식한 행보를 했다. 김진표 의원은 문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친문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줄 세우기 정황도 포착됐다. 과거처럼 각 계파 수장들이 줄 서기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현역 의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지지 후보를 표명하고 있다. 김 의원은 8월 13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내) 초·재선을 비롯해 당 혁신을 갈망하는 30∼40명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이해찬 대세론은 끝난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3철 중 한 명인 전해철 의원의 지지를 끌어냈다.
앞서 전 의원은 8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군림하지 않는 민주적 소통의 리더십을 가지고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정책 등을 실현할 수 있는 당 대표가 선출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김진표 지지’를 우회적으로 밝힌 셈이다. 측근들은 “최재성 혁신안을 지지한다”며 최 의원 끌어안기에도 나섰다. 민주당 권리당원 카페인 ‘문파랑’ 등도 김진표 지지를 선언했지만, 일부 회원은 ‘이해찬 지지’를 선언하면서 탈퇴를 감행했다.
이 의원의 원군도 움직이고 있다. 컷오프 탈락 후 이종걸 의원은 ‘이해찬 지지’를 선언했고 친문계 박범계 의원도 “칼칼한 리더십이 절실하다”며 사실상 이 의원을 지지하고 나섰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우원식 의원 등도 비공식적으로 ‘이해찬 지지’에 나섰다. 핵심 지지층을 보유한 정청래 전 의원도 이 의원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TK) 구심점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측근들도 이 의원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 장관 측 일부 인사들이 합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기에 원조 친노인 노무현재단 관계자 일부도 이 의원을 돕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남권이 약한 고리인 이 의원에게는 천군만마인 셈이다.
호남 대표론을 앞세운 송 의원은 8월 13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줄 세우는 정치는 당의 화합을 저해한다”며 김진표·이해찬 의원을 싸잡아 비난했다. 송 의원은 8월 14일 “‘김진표 지지’에 나선 전해철 의원의 당헌·당규 위반 여부를 확인해 달라며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공명선거분과위원회에 확인을 요청했다.
줄 세우기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하자 당 선관위는 현역 의원 4명에게 구두 경고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이종걸 우원식 전해철 박범계 의원에게 옐로카드를 꺼낸 것이다. 민주당 당규 제33조 제11항은 국회의원, 시·도당위원장, 지역위원장의 공개적이면서 집단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반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계파 갈등은 여권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고 잘라 말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8·25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당·청 지지율은 최저점으로 떨어졌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8월 6∼10일 전국 성인남녀 25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3일 발표한 8월 2주차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5.1%포인트 하락한 58.1%에 그쳤다. 취임 후 지지율이 50% 선으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5월 1주차(77.4%)와 비교하면 19.3%포인트나 하락했다. 리얼미터는 “‘경제·민생’의 부정적 심리 장기화, 김경수 경남도지사 ‘드루킹 특별검사’ 출석 보도 확산, 정부의 전기요금 인하 방식·수준에 대한 비판 여론 등이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8월 2주차 40.6%로, 정권교체 후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6·13 지방선거 때인 6월 2주차(57.0%)와 비교하면 16.4%포인트나 하락했다. 핵심 지지층인 진보층(74.6%→57.6%)에서 17.0%포인트로 가장 많이 하락했다. 중도층(55.0%→38.9%)과 보수층(25.7%→18.0%)에서도 16.1%포인트와 7.7%포인트 각각 떨어졌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 6.4%포인트(59.7%→53.3%), 연령별로는 40대 7.2%포인트(50.7%→43.5%) 등에서 한 주간 가장 많이 하락세를 보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8·25 전당대회 이후다. 여당 전당대회가 문심 잡기의 장으로 변질된 것은 수직적 당·청 관계와 무관치 않다.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의 힘의 균형은 청와대로 급속히 쏠렸다. 정책 하나부터 열까지 문 대통령의 원맨쇼에 의존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여당 당권 후보들이 문 대통령과의 친분만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8·25 전당대회가 ‘인연 레이스’로 전락했다”는 비아냥거림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어떤 후보가 포스트 추미애 체제에 오르든 청와대에 대한 의존성을 탈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경우 당·청은 ‘수직적 관계 지속→권력집중 해소 실패→지지율 하락’ 등의 악순환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 전 평론가는 “정권교체 이후 당·청의 높은 지지율은 박근혜 탄핵에 따른 기저효과가 한몫했다”면서도 “이제는 경제성과 등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민주당 위기에도, 한국당 기회는 없네’ 당 지지율을 둘러싼 고민은 여당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급락에도 요지부동인 자유한국당과 고 노회찬 전 의원 별세 후 당원 가입 수가 급증한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한국당은 그야말로 비상상태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 하락의 반사이익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8월 6∼10일 전국 성인남녀 25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3일 발표한 8월 2주차 조사에서 한국당(19.2%)은 20%에 근접했지만, 민주당이 최근 2개월간 16.4%포인트가 하락하는 사이 1.6%포인트(6월 2주차 17.6%→8월 2주차 19.2%) 상승하는 데 그쳤다. 특히 이 기간 보수층에선 되레 8.6%포인트(55.0%→46.4%)나 빠졌다. 같은 기간 무당층(7.4%→16.6%)은 9.2%포인트 늘어났다. 보수층 중 상당수가 무당층 지대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탄핵 정국 이후에도 한동안 탈피하지 못한 수구냉전적 사고, 포스트 주자 부재,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의 혁신 부족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당이 오른쪽에 치우친 사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은산분리 완화에 시동을 걸었다. 무주공산이었던 중원을 당·청에 내준 셈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한국당의 약점은 당 구심점 역할을 할 차기 대권주자가 없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당 재건 임무를 맡은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현안 대응보다는 국가주의 등 거대 담론에 치우친 것도 지지층 복원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야당 한 관계자는 “혁신을 말하는 김병준 비대위가 인적 쇄신에는 소극적인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용태 사무총장은 “여론조사를 가지고 시비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 우리의 잘못”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정의당의 고민도 깊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은 2달 동안 7.3%포인트(6.9%→14.2%) 증가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은 “여론조사만 보면 제1야당은 정의당이 아니냐”라며 “한국당보다 더 대접을 해줘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선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차기 총선 때까지 두 자릿수 지지율을 관리할 능력이 있느냐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참여정부 당시 민주노동당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선명성 경쟁에 드라이브를 걸다가 집토끼를 놓쳤다. 당 한 관계자는 “우리 당 지지층 가운데 애초 민주당 지지층이거나 친문(친문재인) 성향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며 “정책의 선명성을 강조하면 진보 분열 논란에 직면하고 민주당과 차별화하지 않으면 2중대 비판을 듣는다”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당장 정의당은 은산분리를 놓고 당·청과 각을 세우고 있다. 차세대 주자를 키우지 못한 점도 약점이다. 정의당은 노 전 의원의 죽음으로 심상정 의원에게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한 당직자는 “노 전 의원 별세 전 언제까지 ‘노·심’(노회찬·심상정)이냐는 비판은 언제 들어도 뼈아픈 말이었다”라고 말했다. 한편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