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근린공원 박정희 흉상은 매년 철거 논란에 휩싸이는 조형물 중 하나다. 우태윤 기자
높이 2.3m, 폭 0.4m 크기의 박정희 흉상은 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66년, 군부대가 홍익대에 의뢰해 세워졌다. 1986년 문래근린공원이 조성되기 훨씬 이전부터 지금의 자리를 지켰다. 원래 문래근린공원은 5·16 군사정변의 지휘부이자 수도군단의 전신인 6관구 사령부가 있었던 자리었다. 6관구 사령부는 박 전 대통령이 사령관으로 있었던 곳으로 실제 흉상 하단에 ‘5·16 혁명 발상지(五·一六 革命 發祥地)’라는 글귀를 확인할 수 있다.
1985년 군부대가 철수하며 박정희 흉상은 대중에게 공개됐고, 오랜 기간 별다른 논쟁 없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이후 군사정권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5·16의 의미를 강조하는 박정희 흉상이 공원 내에 존치되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 사건이 2000년 11월에 발생했다. 박정희 기념사업 추진에 반발한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 등에 의해 박정희 흉상이 기습 철거돼 홍익대로 옮겨진 것이다.
흉상은 원위치로 돌아왔지만, 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던 2016년, 예술가 최황 씨가 스프레이 래커로 흉상 얼굴을 붉게 칠하고 ‘철거하라’는 문구를 적시하면서 철거 논쟁이 재점화됐다. 최근에는 영등포의 지역시민단체 내부에서 박정희 흉상이 위치한 문래근린공원이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할 새로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는 얘기나 나오면서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배기남 영등포시민연대 피플 대표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 초기 단계기 때문에 아직 위치 선정에 관해서는 결정된 바가 전혀 없다”며 “실제로 활동할 때는 ‘박정희 흉상 철거·평화의 소녀상 건립’이라는 구호로 활동했지만 참여하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시민 분들의 의견을 담을 수 있을지 신중하게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철거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쟁이 불붙을 때마다 결국 물음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박정희 흉상의 소유권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동안 문래근린공원의 관리자인 영등포구청은 ‘흉상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며 철거 권한 역시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러면서도 영등포구청은 2000년 흉상이 기습철거된 이후 흉상 주변에 철제 펜스와 보안장치를 설치하며 이를 실질적으로 관리했다.
하지만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황 씨가 지난해 11월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재판부는 “박정희 흉상은 영등포구청의 소유물로 판단된다”면서 “주인이 없는 무주물이 아니므로 특수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고 선고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영등포구청 입장에서도 더는 흉상 철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로 소유권이 없음을 내세우기가 모호한 상황이 된 것이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재판부에서 (최황 씨 판결 내용에) 흉상의 소유권자를 영등포구청으로 명시했고 이런 상황에서 영등포구청이 철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주체인 건 사실이다”라며 “흉상과 관련한 사건들이 있었고 민원도 많이 제기돼 철거 여부에 대한 내부 검토도 몇 차례 진행했었다”고 설명했다.
2016년 최황 씨에 의해 훼손된 흉상. 연합뉴스
최 씨는 박 전 대통령 흉상이 여전히 주인이 없는 무주물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최 씨는 곧바로 항소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최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역사적, 정치적 문제를 떠나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는 오로지 행정적인 부분에서만 문제를 제기했다. 영등포구청의 공유재산관리대장에는 박정희 흉상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 씨는 “박정희 흉상이 미학적인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박물관 같은 곳에 옮겨진다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하지만 공원은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이다. 이곳에 5·16 혁명 발상지라는 글귀가 적힌 박정희 흉상이 존치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역시도 박 전 대통령 흉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논의하고 있는 바가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16년 11월 열린 정례회에서 박정희 흉상에 대한 질문에 “서울시가 (철거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도 “근거를 새로 마련하든 전문가와 협의를 하든 가능한 철거나 이전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당시 박 시장님이 개인적으로 발언하긴 했지만, 실제 이와 관련해 행정적인 지시가 내려오거나 논의된 바는 없다”고 답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
문제의 박정희 흉상은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합작품 박정희 흉상의 뒷면. 우태윤 기자 1966년 7월에 건립된 문래근린공원 박정희 흉상은 당대 유명 예술가 3명이 합작해 만들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흉상 뒷면에 보면 조각은 최기원 홍익대 교수, 글은 문학가 월탄 박종화, 글씨는 서예가 손재형이 담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초대 한국 조각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최기원 전 홍익대 조소과 교수는 생명력 넘치는 작품들로 이름을 알린 한국 1세대 조각가다. 한쪽 무릎을 꿇고 칼을 치켜든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을지문덕 장군 동상, 한국마사회의 청동마상 등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이다. 동상 하단부에 적혀 있는 글을 작성한 월탄 박종화는 ‘논개’, ‘민족’, ‘여명’ 등 민족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을 써온 소설가다. 우익 진영을 대표하는 문객이었던 월탄은 1949년 발족한 한국 문학가협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재임기간인 1966년, 제1회 5·16민족상을 수상했고 그때 받은 상금이 ‘월탄 문학상’ 창설의 밑천이 되기도 했다. 글씨를 쓴 서예가 소전 손재형은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세한도’를 일본에서 되찾아온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소전은 박 전 대통령의 서예 스승이었다. 박 전 대통령도 소전 선생을 어려워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소전 미술관 관계자는 “두 분이 함께 찍으신 사진이 남아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다”며 “소전 선생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게 된 배경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