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우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사진 이종현 기자.
성난 여론에 놀란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동의 없는 연금개혁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국민연금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왜 기금운용 수익률은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일까.
국민연금을 둘러싼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찬우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을 만나봤다. 국민연금 CIO는 650조 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해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자리다. 퇴임 후 국민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본부장 3년 임기(2년+1년 연임)를 모두 채운 2명 중 한 명이다.
─정부가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지금보다 보험료를 더 오래 납입하고 수령시기도 늦추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공개된 개혁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저는 기금 운용의 전문가지 재정수지 문제는 제 전문분야가 아니다. 그래도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은퇴 시기는 점점 더 빨라지는데 보험료를 더 오래 납입하고 수령시기를 늦추면 국민들이 납득하겠나.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어찌됐든 제도개혁 없이 국민연금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방식으로 개혁되어야 하나.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수령시기를 늦추는 것은 30~40대가 느끼기에는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다. 빠르면 50대 중반이면 은퇴하는데 그런 방안이 논의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고 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더 높여 해결할 수는 없나. 올해 0%대(2018년 1~5월 기준 수익률 0.49%) 수익을 내고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면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제도개혁 없이 투자 수익률만 높여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대체투자(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적인 투자 상품이 아닌 다른 대상에 투자하는 방식) 비중을 높여야 한다. 국민연금은 아직도 채권 투자 비중이 높아서 주식시장이 좋으면 수익률이 높았다가, 주식시장이 나쁘면 수익률이 낮아지는 구조다. 이런 점이 개선되어야 한다.”
─국민연금 투자 수익률이 2017년 7.26%에서 올해 0.49%로 떨어졌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주식 시장이 나빠진 탓이 가장 크고 그 외에도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 기금운용본부장 장기 공석 사태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본다.”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이 수익률 악화의 원인인가.
“전주 이전이 투자수익률 악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원인은 된다.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으로 좋은 인재들이 다 빠져나가고 있다(※ 기금운용본부 퇴사자수는 2014년 9명, 2015년 10명에서 지방 이전이 결정된 2016년 30명으로 급증했다. 2017년에도 27명이 기금운용본부를 떠났다). 연봉을 높여서 인재를 붙잡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기금운용본부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 통제받기 때문에 크게 올려줄 수도 없다. 전주 이전으로 좋은 투자를 하는 것에도 많은 제약이 생겼다. 전주 이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통신이나 교통이 발달되어 있는데 무슨 제약이 있냐고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투자를 결정할 때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 정도는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좋은 투자 건이 있으면 국민연금부터 찾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서울에서 투자 자금을 모아보고 안 되면 국민연금으로 찾아온다. 일반적인 정보야 인터넷 뒤지면 나온다지만 금융전문가들과 만나서 얻는 고급정보도 있다. 국제적인 투자 트렌드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전주 사람들은 섭섭하겠지만 본부를 다시 서울로 이전하는 게 맞다. 아니면 최소한 서울에 사무소라도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못하게 했다. 서울에 회의실 하나만 만들려고 해도 반발이 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1년 넘게 공석이다. 수익률 악화에 영향을 미쳤을까.
“영향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면 미리 위험 자산 비중을 줄여야 하고, 국내 주식시장 전망이 나쁘면 해외 주식 비중을 늘려야 한다. 본부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누가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겠나. 본부장이 부재했기 때문에 악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기금운용본부장의 임기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본부장 임기는 2년+1년 연임으로 최대 3년이다. 지금까지 임기 3년 채운 사람이 딱 2명이라고 한다. 600조 넘는 자산을 운용해야 하는데 본부장 되고 현황 파악하는 데 6개월 정도 걸린다. 1년 정도 일하고 나머지 6개월은 임기 말이라 힘이 없다. 제대로 일하는 기간은 딱 1년이다. 장기 투자를 할 수 있겠나. 임기를 최소 5년(3년+2년 연임) 정도로 늘려야 한다.”
─기금 운용과 관련해 국민들이 또 걱정하는 것이 있다. 역대 정권이 국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다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 삼성물산 합병 파동,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란 등이 모두 정치적인 결정 아니었나.
“제가 본부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도 자원외교와 관련된 분야에 투자를 하라는 압박이 있었다. 산자부 이런 데서 ‘해외자원투자 회의하는데 참석해 달라’ 이런 요구가 있었다. 참석해달라는 것은 투자해달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다. 기금운용본부가 정치권에 마구 휘둘리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기금운용본부장의 권한과 임기를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이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많은데 궁극적으로는 운용본부를 독립시켜야 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특정 인사를 기금운용본부장에 앉히려 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를 본부장 자리에 앉히면 국민연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한 것 아닌가.
“(특정 인사를 본부장에 앉히려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정말 잘못된 거다. 저도 검증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지만 인선 과정에서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도 기금운용은 시스템적으로 운용이 되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본부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투자원칙 규정과 의사결정 시스템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법은 ‘국가는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만 규정되어 있다. 기금이 고갈되어도 국가가 책임진다는 명시적인 지급보장 규정이 없어 국민들이 불안해한다.
“국민연금에 대한 명시적인 지급보장 규정을 넣으면 우리나라 국가 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한다. 국가 신용도도 하락하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에서 명시적인 지급보장을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앞으로도 국가가 지급보장을 하는 것은 힘들 거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으로서 기금을 직접 운용해보셨다. 국민들이 믿고 맡겨도 되겠나.
“기금운용본부가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상적으로 인력이 충원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 650조 원 중에서 기금 운용으로 불린 자산이 300조 원이 넘는다. 얼마든지 지속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신뢰를 가져도 괜찮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