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의 발전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은 2017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산 석탄 5119t과 4584t 총 9703t 들여온 혐의로 관세청 조사를 받았다. 관세청은 10일 “한국남동발전은 북한산 석탄인 걸 몰랐었다”며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국남동발전이 수입한 건 무연탄이었다. 석탄은 크게 유연탄과 무연탄으로 나뉜다. 국내 화력발전소는 대부분 유연탄을 사용하지만 한국남동발전과 한국동서발전은 무연탄을 사용하는 발전소도 운영한다. 한반도에서 나오는 건 무연탄이다. 유연탄은 100% 수입에 의존한다.
한국남동발전이 관세청에 제출한 자료 등에 따르면 종합검사인증기관인 인터텍 인증서 기준 1차 선적분의 순발열량은 5907Kcal였고 SGS 인증서 기준 2차 선적분의 순발열량은 6145Kcal였다. 석탄업계에서는 계약 기준보다 낮은 품질의 석탄이 선적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석탄을 배에 실으며 종합검사인증기관의 선적 검사를 거친다. 인터텍과 SGS가 세계에서 가장 인정 받는 종합검사인증기관으로 꼽힌다.
# 북한산 무연탄의 허용치보다 낮은 순발열량… 왜 샀을까?
1차와 2차 선적분의 선적 검사 순발열량은 각각 5907Kcal과 6145Kcal였다. 2차 선적분의 순발열량 6145Kcal은 계약 기준보다 2.46% 낮았지만 허용치 안에 들어와 별 문제 없었다. 한국남동발전은 2.17% 할인 받아서 이 무연탄을 인수했다. 1차 선적분이 문제였다. 계약 기준 순발열량보다 393Kcal나 낮았다. 업계 허용치 200Kcal의 두 배에 가까운 차이였다. 한국남동발전은 그래도 구매를 진행했다. 5.49% 할인 받았다. 석탄업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거래였다.
또 다른 의문은 한국남동발전의 자체 검사 결과와 선적 검사 결과의 차이였다. 수치는 정상적인 오차 범위를 뛰어 넘었다. 한국남동발전이 관세청에 제출한 소명자료에는 두 차례 선적분의 자체 검사 결과가 담겼는데 1차 선적분 순발열량은 6101Kcal였고 2차 선적분 순발열량은 6629Kcal였다. 선적 검사 때 순발열량 수치보다 각각 194Kcal, 484Kcal 오른 수치였다. 석탄업계 허용치 200Kcal도 가뿐히 뛰어넘는 검사 결과였다. 석탄업계 허용치를 벗어나는 저품질의 북한산 석탄이 한국남동발전 자체 검사 결과에선 석탄업계 허용치 포함 계약기준 6300Kcal에 상응하는 값으로 재조정됐다.
기준은 제멋대로였다. 1차 선적분은 건식과 인수식 수치가 담겼고 2차 선적분은 인수식 수치만 담겼다. 석탄은 받은 상태 그대로 검사를 진행하는 인수식 검사와 건조한 뒤 검사하는 건식 검사 등 총 2가지 검사 방법이 있다. 또 검사 결과는 선적 검사 수치와 비교돼 나와야 하는데 한국남동발전은 2차 선적 검사 결과지에 선적 검사 결과를 아예 누락시켰다.
# 석탄업계 종사자는 이 석탄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 때문에 러시아산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묵인하고 거래를 진행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국남동발전 관계자는 “공급업체가 러시아 정부에서 발행한 원산지 증명서를 관세청에 제출했다. 정상적으로 통관됐기에 러시아산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품질과 가격만 보더라도 정상적인 러시아 석탄이 아니라는 ‘이상한 기운’은 애초 인지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게 석탄업계의 입장이다.
석탄은 같은 석탄 지역(탄전)에서 나왔더라도 굴(탄광)의 위치에 따라 성분 함유량이 다르다. 석탄의 품질은 열량과 수분, 황, 회분 등의 함량으로 구분된다. 어떤 탄광은 수분이 많고 또 다른 탄광에는 황 성분이 많이 포함돼 있는 식이다. 석탄을 사용하는 조직 내 석탄 담당자는 각 탄광에서 나오는 석탄의 성분과 특징을 거의 외울 정도로 잘 파악하고 있다. 화염 속으로 들어가는 검은 돌이지만 겉모습과 달리 석탄은 매우 규격화돼 있는 원자재다.
가격 차이도 사실 중요한 단서다. 한국남동발전의 무연탄 입찰에서 최종 낙찰 받은 업체의 입찰가는 1t당 93달러였다. 2위 업체는 123.96달러를 써냈고 3위 업체는 132.50달러를 적어냈다. 한 석탄업계 관계자는 “석탄 입찰에서는 누군가 아무리 싸게 써 내도 업체간 차이는 10달러 이상 벌어지기 쉽지 않다. 30달러 차이는 석탄업계의 입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입찰 업체의 가격을 쭉 보더라도 낙찰 업체에게 ‘사자’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사자(詐字)는 사기꾼 기질을 뜻하는 무역업계 은어다.
석탄업계에서 러시아산을 다루는 일부 수입업체가 사자로 불리는 이유는 러시아 석탄의 특이한 수출 구조에 기인한다. 러시아 시베리아 쪽에 매장된 석탄은 세계에서도 손에 꼽는 품질과 양으로 널리 알려졌다. 문제는 시베리아가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이다 보니 바다가 멀다. 당연히 수출항도 멀리 떨어져 있다. 러시아가 늘 얼지 않는 항구를 가지려 노력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런 연유로 러시아 석탄이 국외로 수출될 때 가장 중요한 건 내륙 운송이다. 시베리아에서 나오는 석탄 90%가 기차를 타고 항구로 향한다. 문제는 아무나 러시아 철도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석탄업계 전문가는 하나같이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광산이나 석탄 물량 소유 여부가 아니다. 그 석탄을 어떻게 실어 나르느냐다”라고 말했다. 특정 세력이 철도 운송권을 쥐고 있어 아무나 시베리아산 석탄을 운송할 수 없는 까닭이다. 러시아 안에서는 시베리안석탄에너지(SUEK)가 시베리아산 석탄의 극동향 철도 운송권을 가장 잘 운용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이렇다 보니 석탄 시장에는 “광산 채굴권을 가지고 있다”는 공급업체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러시아 석탄을 수입해야 하는 조직은 늘 석탄 구매를 제안해 오는 공급업체의 말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까지 이상한 러시아 석탄을 한국남동발전이 덥석 샀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게 석탄업계에서 제기된 의문이다.
한국남동발전은 이 석탄이 젠꼽스까야(Zenkovskaya) 광산에서 나왔다고 했다. 젠꼽스까야 광산은 러시아 서시베리아 지역 케메로보(Kemerovo)주 프로코피옙스키(Prokopyevsky)군에 위치한 탄전에 자리한다. 서시베리아는 무연탄이 아니라 유연탄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의심을 했을 수밖에 없었을 단서가 많았다는 게 석탄업계의 중론이다.
한국남동발전은 별다른 조치나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담당자의 실수였다”는 해명과 “원산지증명서를 믿고 러시아산이라 확신했다”는 입장만 이제껏 반복해 왔다. 이를 두고 석탄업계 관계자는 “단순 실수라고 하기엔 문제가 많아 보이는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명쾌한 답변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