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률구조공단 홈페이지.
이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4개월 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지난 4월 법무부는 이헌 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전격 해임하기로 결정한다. 이 전 이사장은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공동대표 출신으로 임기가 약 1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공단 내 이사장 사퇴를 골자로 한 파업이 발생하자 법무부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공단에 손실에 손실을 입혔고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그 밖에 임원으로서 적합하지 못한 비행을 저질러 더 이상 정상적으로 이사장 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결정됐다. 당시 공단 파업은 1987년 공단 창립 이후 31년 만에 처음 발생한 일이었다.
공석은 2개월 만에 채워졌다. 2개월 전인 지난 6월 법률구조공단에 수장으로 조상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취임했다. 조 이사장은 대형로펌인 김앤장에서 법조인의 첫 발을 뗐다. 이후 민변에서 활동하면서 건국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했다. 공단 내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민변 출신’인 점을 들어 문재인 정부의 ‘코드 인사’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얘기됐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조 이사장 취임 이후 발생한다. 법률구조공단은 법률상담이나 법률지원 등이 주 목적인 기관인 만큼 변호사의 수가 많다. 변호사가 약 90명,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군 복무 중인 공익법무관이 160명이다. 지난 7월 조 이사장이 90명의 공단 내 변호사 중 일부에게 징계적 의미의 전보 발령을 내린다.
전보 조치의 타깃은 서울에서 근무하는 김 아무개 변호사부터 시작됐다. 공단 내 가장 경력이 많은 변호사 중 한 명인 김 서울지부장은 서울에서 약 30년을 근무했다. 조 이사장은 김 지부장이 30년 내내 서울 지역 근무를 문제 삼아 전보 조치를 내리려 했다.
반면 김 지부장은 입장문을 통해 ‘7월 20일자로 광주지부장으로 인사발령을 받은 서울중앙지부장입니다. 주말 내내 고민하다 입장문을 작성하게 됐다. 정기인사 시기도 아니고, 광주와 전혀 연고도 없고, 관사도 없고, 발령지가 광주라는 사실도 인사발령 공문 시행 직전 통보받았다. 인사발령이 났으니 가야 한다면 일단 광주지부로 가겠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이어 “그러나 이번 저를 포함한 소속 변호사 인사발령 전반에 관하여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한다. 서울에 계속 근무한 것은 사실이나 공단 설립 입사했고 이후 오랫동안 평균 근속률이 2~3년을 넘지 못할 정도로 소속 변호사 이직률이 높아 원하는 곳에 계속 근무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며 “바로 밑 후배 변호사와 공단 경력차도 10년이나 돼 후배 변호사들이 본부에서 중요보직을 맡는 대신 송무 업무를 책임져온 측면이 있으며 (경력이 모두 많지 않아) 서울중앙지부장을 원하는 변호사도 었었다. 특별한 권한을 행사하거나 특혜를 받은 것도 없지만 이사장께서 저를 마치 특혜를 받은 것처럼 생각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 지부장의 말처럼 변호사들은 이번 인사이동을 조 이사장의 입김으로 보고 있다는 게 대부분의 공통된 시각이다. 또한 임기직인 조 이사장과 소위 ‘짬’이 높은 김 지부장의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다.
어쨌건 김 변호사를 전보 조치 하기 위해서는 연쇄 인사이동이 필요했다. 여기서 박 아무개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는 전주지부장을 맡고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공단은 김 지부장의 지방 발령에 따른 연쇄 이동으로 박 지부장의 광주 전보가 가능한지 의견을 물었고 박 지부장은 ‘가능하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지난 7월 공단은 박 변호사에게 전주지부 군산출장소장으로 전보하는 인사 조치를 내린다. 군산출장소는 전주지부의 하부조직이다. 지부장에서 소장으로 강등됐다. 반대로 군산출장소장이었던 홍 아무개 변호사를 전주지부장으로 발령내 자리를 바꾼다. 광주 지부 전보는커녕 징계성 전보 인사 조치를 당한 셈이다.
이에 7월 23일 박 변호사는 조 이사장에게 전자우편으로 전보 사유를 묻는다. 7월 25일 조 이사장이 답변을 보내온다. 답변 내용에는 ‘박 변호사가 전주지부 방문시 허위보고를 했다’, ‘일반 직원의 상담이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강변해 법률구조법 내용과 다르다는 이야기로 공단 내부의 발전적 해결보다는 대결 구도를 조장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판결문에 따르면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를 살펴보더라도, 채무자 이사장이 위 전자우편으로 채권자에게 밝힌 사유가 채권자에게 명백히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 소명자료가 충분치 않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만약 징계를 해야 한다고 봤다면 내부 인사규정상 징계에 관한 절차가 있음에도 진술 기회 부여나 위원회를 통한 심의, 의결 등 절차적 보장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징계적 의미의 전보 발령을 내린 것도 문제로 봤다.
박 변호사의 근무 기간도 걸렸다. 부득이한 사정 외에는 원칙적으로 한 곳에서 2년 이상 근무로 정하고 있는데 박 변호사는 2년 미만의 근무를 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전보 조치는 무효가 됐다.
공단 내 분위기는 쑥대밭이 됐다는 게 내부 전언이다. 더군다나 이런 갈등이 여기서 끝이 아니란 게 대다수의 생각이라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공단 내부 관계자는 “이사장이 일반직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공단 내부 변호사들과 부딪히고 있다”며 “현재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판결 다음날인 8월 14일 조 이사장은 박 변호사와 홍 변호사에 대한 전보 명령을 취소했다. 법률구조공단 내부 공지에 조 이사장은 “전보 명령 취소는 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다. 법원의 법적 판단이 선뜻 이해되지 않고 동의할 수 없어 상급심 법원의 판단을 받고 싶었지만 논란과 분쟁을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일단 법원의 견해를 존중하기로 했다”고 자신의 뜻을 알렸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