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헌법 1조에 언론자유의 조항을 두고 있는 미국은 세계에서 자유 언론의 전통이 가장 강한 나라이고, 특히 NYT와 WP는 그런 전통의 선봉에 섰던 신문이다. 많은 미국 대통령들이 재임 중 언론과 불편한 관계였지만 이처럼 거친 언사로 언론과 싸운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을 남긴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같은 자유언론의 열렬한 옹호자도 대통령이 된 뒤 자신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신문을 ‘오염물질’이라고 매도했다는 것이 그중 심한 대결의 기록이다.
트럼프의 언론에 대한 공격에는 이념적 배경, 논리적 설명도 없어 보인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하는 감정의 폭발만 있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예사로 하는 것 또한 그가 다른 대통령들과 다른 점이고, 더 위험한 이유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셉 나이는 최근 자신의 칼럼에서 WP의 팩트 체커(Fact Checker)를 인용, 올들어 6월 1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3259건의 거짓을 말했다고 썼다. 이는 하루 평균 6.5건꼴이고, 날로 늘어나 거짓말 신기록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모든 정치인이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트럼프의 가식을 정당화한다면서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는 일반적인 명제를 핑계 삼아 대통령의 거짓말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를 경계했다.
지난 7월 29일 NYT의 설즈버그 회장이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과 가진 비밀 면담에 관한 성명은 트럼프 언론관의 위험성을 일깨우는 또 다른 경우다. 오프 더 레코드로 이뤄진 면담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설즈버그는 즉각 면담 내용을 성명을 통해 공개했다. 설즈버그 회장은 성명에서 ‘가짜뉴스’라는 말도 유해하지만 ‘국민의 적’이라는 말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언론인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뉴스’ 타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불량상품’ 논쟁을 떠올리게도 한다. 노 대통령은 보수 언론들의 공격에 언론을 ‘불량상품’으로 규정하고, 허위보도에 대한 고소고발과 불매운동 등 정부 부처의 적극 대응을 독려하면서, 스스로 언론을 고소했었다.
지금 한국의 언론인은 언론이 떳떳하지 못했던 군사정부 시절에도 듣지 못한 ‘기레기’로 불리고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국민 정서, 특히 젊은 층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그런 인식이 노무현 정부의 언론 정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노무현 정부 때만큼은 아니나 정권과 언론 간에는 긴장이 상존한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언론을 향해 불평을 말하면서도 막말을 삼가는 자세를 의젓하게 여긴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