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이 입수한 현대기아차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부지 개발 관련 문서에 따르면 국방부는 2월 28일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개발 계획이 공군의 수도권 군사작전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을 서울시에 전달했다. 2017년 12월에 열린 수도권정비실무위원회에서 비행안전영향평가 및 전파영향평가 등 협의가 필요하다는 안건이 나온 까닭이었다.
수도권정비위원회는 수도권정비계획 수립 및 변경, 정책과 조정 등을 심의하는 곳이다. 국토교통부 장관을 장으로 관련부처 차관과 수도권 지자체 부시장 혹은 부지사, 민간위원 등으로 꾸려진다. 서울시는 1월 4일 국방부에 의견을 요청했고 국방부는 2월 27일 공군의 의견을 제출 받아 서울시에 알렸다.
국방부는 “현대기아차 신사옥이 예정대로 지어지면 특정 군사 안테나가 가려진다. 또한 인근 지역 레이더 일부가 보이지 않게 된다. 수도권 비행로 일부 구간에서 장애물 최저 회피거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공군의 보고사항 3가지를 그대로 서울시에 전했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에 위치한 공군성남기지 서울공항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에서 약 8㎞ 떨어져있다.
공군 비행기와 기지가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신호를 교환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였다. 고층 건물 때문에 특정 지역으로 전파가 닿지 않아 레이더 상에서 어둡게 표시되는 지역도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포함됐다. 위급 상황에서 비행체가 장애물을 피할 충분한 공간 마련이 어렵다는 내용도 담겼다. 비행경로 조정과 더불어 항공장애등 설치, 지형인식경보체계 장비 갱신 등의 필요성 역시 제기됐다.
항공정보관리체계에 나온 서울 인근 시계비행경로. 청담대교 중간지점(C-1)부터 대치동과 일원동을 잇는 대치교지점(C-2) 한중간에 현대기아차 신사옥이 들어선다. 사진=항공정보관리체계
특히 비행경로 조정이 필요하다는 국방부의 의견은 현대기아차그룹이 신사옥 첫 삽을 뜨기까지 과정이 첩첩산중이 될 것을 예고했다. 항공정보관리체계에 따르면 청담대교 중간지점부터 대치동과 일원동을 잇는 대치교까지의 한강 물줄기는 시계 비행 경로다. 시계 비행이란 계기판을 보며 운전하는 계기 비행과 달리 조종사의 눈으로 지형을 관찰하며 비행하는 방식이다. 일반인에겐 보이지 않지만 비행체 조종사에겐 시계 비행 경로는 일종의 공중 도로다.
옛 한국전력 부지는 시계 비행 경로 한복판에 있다. 115층짜리 초고층 건물이 공중 도로의 중간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 비행체 조종사 입장에서는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셈이다. 실제 비행 경로 조정은 국방부 외에도 국토교통부까지 연결돼 있다. 관련 규정까지 바꿔야 한다.
2월 28일 국방부의 첫 의견이 나온 뒤 5개월이 넘게 지났지만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관련 진척된 사항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 재벌 기업의 초고층 건물 투자에 부정적인 여론도 현재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감사원이 들여다 보고 있는 롯데그룹의 롯데월드타워 특혜 논란이 한몫했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 7월 행정협의조정위원회는 “잠실 주변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공군기지를 뜨고 내리는 비행기의 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국방부의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계속 보류됐던 건축 허가가 풀린 건 2009년 이명박 정권 때였다. 2017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는 롯데월드타워 건축허가 등에 대한 국민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했다. 2월 9일 감사원은 롯데월드타워 신축 관련 행정협의조정과 시설·장비보완·비용 추정과 보완 합의사항 이행 등을 챙기겠다고 밝혔다.
신사옥이 들어설 삼성동 주변에서 2013년 발생했던 LG그룹의 전용 헬리콥터 충돌 사고 역시 지역 주민에겐 ‘역린’ 같은 사건이다. 2013년 11월 16일 아침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잠실로 향하던 헬리콥터는 돌연 강남구 삼성동 영동대로 근처 아이파크 삼성 아파트로 돌진했다. 헬리콥터가 전손됐고 기장과 부기장 모두 사망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당시 “지표에서 150m 이상 되는 고층 건축물은 장애물로 분류된다”며 “항공기의 안전 운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물에 대해 주간장애표지 혹은 고광도 항공장애표시등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빠른 착공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다. 모든 절차를 최대한 빨리 처리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그 외에는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허나 냉가슴을 앓고 있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가 계속 튀어나와 내부적으로 답답해 할 게 뻔하다. 그 지역은 삼성동 인근에서 가장 낙후돼 있는 곳이다. 개발이 되면 현대기아차그룹이나 지역에도 나쁠 게 없다. 그런데 서울시나 국방부 관련 절차 때문에 늦어지다 보니 관가(官家)늪에 빠진 발목을 하나씩 빼나가며 힘겹게 걷는 느낌일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체되는 현재 상황에 대해 관련 절차를 밟는 중이지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시 동남권사업단 관계자는 “국방부에서 예하부대까지 자세한 사항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절차상 문제는 없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국방부와 국토교통부 등과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관련 문제 사항을 잘 풀어나가고 있는 상태”라며 “롯데그룹이 겪었던 건 활주로 관련 문제였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시계 비행 경로 문제를 풀고 있는 과정이다. 아예 다른 문제라서 동일선상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비행 경로 조정도 조만간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릴 거라고 기대된다”고 밝혔다.
당초 예상됐던 2017년 초 착공은 2019년 초까지 일단 미뤄졌다고 알려졌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지불한 10조 5500억 원의 연이자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1.5%로만 계산해도 연 1582억 원이다. 현대기아차는 이제껏 이자로만 최소 3000억 원 넘게 손해를 봤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환경영향평가 이어 인구유발효과에 ‘턱’…현대기아차 신사옥 ‘발목의 역사’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한전부지에 세워질 현대기아차그룹의 115층 신사옥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2015년 9월 25일 잔금을 완납하고 옛 한국전력 부지 7만 9342㎡(약 2만 4043평)의 주인이 됐다. 2014년 9월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옛 한전부지를 10조 5500억 원에 낙찰 받은 바 있었다. 2015년 6월 현대기아차그룹은 ‘한전부지 개발 구상 및 사전협상 제안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제안서에는 높이 571m에 이르는 115층 건물에 건폐율 38.42%, 용적률 799.13% 등의 건축 계획안이 담겼다. 2016년 2월 서울시는 연중에 지구단위계획 변경과 건축 허가를 거쳐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착공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화답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봉은사의 민원으로 잡힌 환경영향평가 등의 변수를 제외하면 2017년 6월쯤 착공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2017년 1월 밝혔다. 불행하게도 환경영향평가는 변수가 됐다. 서울시는 2017년 6월 13일 신축사업 환경영향평가심의회에서 ‘재심의’를 의결했다. 통과까지는 5개월이 더 소요됐다. 2017년 11월 17일 서울시는 재심의 끝에 사실상 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켰다. 당시만 해도 2018년 상반기에 착공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핑크빛 예상이 흘렀다. 하지만 2017년 12월 수도권정비실무위원회에서 국방부 관련 문제가 본격화되며 또 다른 진통이 시작됐다. 2018년 3월 21일 수도권정비실무위원회에서 서울시는 국방부 관련 문제 외 현대기아차그룹이 인구유발 효과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며 승인을 미뤘다. 2018년 7월 20일 심의 때도 또 다시 보류했다. 애초 신사옥은 2021년에 완공 예정이었다. 올해 안에 착공도 힘들 거라는 예상이 많다. 완공까지는 1년 이상 더 소요될 거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