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e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단. 박은숙 기자
[일요신문] “이전까지는 ‘국가대표’라는 말을 쓰지 못했다. 그동안 각종 대회에 나설 때마다 ‘한국대표’라는 말로 대체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불러보고 싶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한민국 e스포츠 역사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전용준 게임 캐스터의 감격에 찬 소개 멘트다. 지난 18일 개막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아시안게임 사상 최초다. 이에 대한민국도 대표선수단을 파견한다.
e스포츠계는 오랜 기간 e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왔다. 계속해서 지위를 격상시켜온 e스포츠는 올해에 이르러 사상 최초로 종합 스포츠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4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올해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를 시범종목으로 채택한다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이에 국내 팬들은 ‘페이커’ 이상혁, ‘스코어’ 고동빈 등 인기 프로게이머들이 아시안게임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떠올리며 설렜다. 하지만 이들이 대회에 나서기까지는 결코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처야 했다.
당초 e스포츠 종주국인 대한민국은 최초로 열리는 아시안게임 e스포츠 종목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한국e스포츠협회가 대한체육회 회원 자격을 잃는 동시에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고 파견할 수 있는 자격도 함께 상실했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시·도지회가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발목을 잡았다. 안타까운 상황에서 대한체육회의 가입요건 완화 조치가 이어졌다. 지난 5월 말 대전체육회가 대전e스포츠협회의 가입을 승인하며 협회가 대한체육회 준회원이 됐고, 극적으로 대표팀이 꾸려졌다.
아시안게임 참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협회는 대표팀 구성을 준비했다. 아시안게임서 열릴 6개 세부종목에 각각 협회, 국내 개발사, 배급사 등이 참여하는 기술위원회를 구성해 선수들을 선발했다.
지난 6월 8일부터 12일까지는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마카오, 홍콩이 참가한 동아시아 지역 예선이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됐다. 대한민국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스타크래프트 II(스타), 2개 종목에서 1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에 나설 e스포츠 선수가 결정된 것이다.
스타에선 오프라인 선발전이 열리기도 했다. 지난해와 올해 포인트를 합산해 8명의 선수를 추렸다. 이들 간의 오프라인 선발전을 치렀고 ‘마루’ 조성주가 금메달을 노리게 됐다. 그는 동아시아 지역 예선에서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최우범 감독과 이재민 코치가 이끄는 LoL 팀은 ‘기인’ 김기인, ‘스코어’ 고동빈, ‘피넛’ 한왕호, ‘페이커’ 이상혁, ‘룰러’ 박재혁, ‘코어장전’ 조용인이 나선다.
협회, 게임 제작사,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참가팀 사무국이 기술위원회를 구성해 감독과 선수를 선발했다. 기술위원회는 한 팀에게 국가대표 자격을 주기보다 포지션마다 최고의 선수들을 각 팀에서 선발했다.
팀원 간 호흡이 강조되는 종목에서는 기존에 존재하는 팀이 그대로 국제대회에 나서기도 한다. 동계올림픽의 컬링이나 이번 아시안게임 예선에 나섰던 펜타스톰(아레나 오브 발러)의 경우도 그랬다. 이에 협회 관계자는 “펜타스톰보다 LoL의 저변이 더 넓어 다양한 팀에서 선수 선발이 가능했다. 이 같은 방법이 더 강력한 팀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기술위원회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 팀이 그대로 나가면 호흡 면에서는 더 좋을 수 있다”면서도 “훈련으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선수들 또한 호흡을 맞추는 데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이들은 e스포츠 선수로서 최초로 아시안게임에 나선다는 자부심도 남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 관계자는 “선수들이 각자 해외 대회 경험이 많지만 이번 대회를 더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지역 예선에 나선 국가 중 우리만 단체복을 맞춰 입고 나갔는데 그 옷을 입으면서 선수들 표정이 달라지더라”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22일부터 합숙 훈련을 하면서 팀워크를 다지고 있다. 24일에는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인도네시아로 출국한다. 현지에서는 다른 종목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선수촌에서 지낼 예정이다.
국가대표 7인방은 지난 21일 팬들 앞에 나서 대회에 참가하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이날 오후 서울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는 아시안게임 e스포츠 국가대표팀 출정식이 열렸다.
이들은 이번 대회 목표에 대해 한 목소리로 “금메달”을 이야기했다. 특히 올해 특출한 기량을 보이고 있는 조성주는 “라이벌은 없다. 저만 잘하면 금메달 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LoL 팀의 금메달 획득에 강력한 대항마는 중국이 꼽힌다. 중국은 이번 대회 준비를 위해 자국 리그 일정도 멈추고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단 주장 고동빈은 “중국이 연습을 많이 하고 있지만 우리도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말했다. 중국과 같은 조에 편성됐다는 점 또한 우려를 사고 있다. 한국은 중국, 카자흐스탄, 베트남과 함께 A조에 편성됐다. 앞서 열린 지역예선에서는 한국과 중국, 대만이 동률을 이뤄 순위 결정전 끝에 한국이 1위를 차지했다.
e스포츠 최초의 국가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펼칠 선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황제’ 임요환 “e스포츠가 올림픽 진출하는 게 꿈…후배들 부럽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 개관식에 참석한 임요환. 박은숙 기자 e스포츠의 태동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테란의 황제’ 임요환은 “내 꿈은 e스포츠가 올림픽 종목이 되는 것이었다.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한 발 다가선 것 같다”면서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제대회에 나서는 ‘페이커‘ 이상혁 등 선수들이 매우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을 향한 응원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에 이상혁은 “선배들이 기반을 잘 만들어 주셔서 저희가 이런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됐다. e스포츠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겠다. 대회에서 좋은 결과 가지고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임요환은 지난 2001년과 2002년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에 대표로 나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공식 국가대표가 아닌 ‘한국 대표’로 나섰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