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자 대부분은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소공인들...중장년층 부재 아쉬워
[일요신문] “어차피 평생직장을 가질 수 없으니 더 나이가 들기 전 소공인이 된 건 정말 잘한 거 같아요. 문제는 파는 거죠. 아직은 수입이 직장 다닐 때의 10분의 1 수준이에요”
전국에 흩어진 소공인들은 제조업의 모세혈관같은 존재다. 장인에게 전수받은 기술이 녹아 든 구두와 악세사리는 한 눈에 봐도 만듦새가 야무지다. 빠름이 미덕으로 추앙받는 시대에서 ‘장인정신’은 이렇게 고집스러운 이들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문제는 판매경로와 마케팅이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많은 소공인은 그들의 제품을 알리지도 못한 채 사라진다.
8월 22일 개최된 ‘2018 우수 소공인 유통 품평회’는 소공인들에게 단비같은 존재다.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SBA) 등이 주최하고 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가 주관한 이번 품평회는 올해 처음 개최됐다. 선발된 소공인들은 네이버, 위메프, G마켓, 옥션 등의 대형 유통채널 상설관에 입점하게 되며 제품 사진 촬영 및 프로모션 등의 서비스도 제공 받는다.
앞서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장이 인터뷰에서 강조한 소공인들과 유통업 간 바람직한 연계가 이 자리에서 실현되는 듯 했다.
8월 22일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에서 2018 우수 소공인 유통 품평회가 열렸다. 사진=박혜리 기자
품평회가 진행된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그랜드볼룸 공간에서는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번 행사에는 액세서리, 패브릭 소품, 수제화, 가죽 소품 등의 제품을 만드는 소공인 18명이 참석했다. 특히 수제화 분야의 지원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 관계자는 “일부로 그렇게 선정한 건 아닌데 SBA에서 진행하는 다른 지원 사업에 중복으로 지원한 업체들을 제외하니 이렇게 선정되었다”며 “1차 평가는 전년도 매출, 지원대상 적합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했으며 이번 2차 심사는 각 분야 전문가와 유통 채널 관계자들이 점수를 매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심사는 심사위원들이 각 부스를 돌며 소공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센터 관계자는 “심사하시는 분들에게 최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평가가 좋다면 참가한 모든 지원자가 선정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모든 분이 선정되지 못하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품평회는 각 분야 전문가와 유통채널 관계자들이 맡았다. 사진=박혜리 기자
나이 제한이 없지만, 품평회에 참석한 소공인 대부분이 젊은 층이었다. 주로 온라인 모집 공고를 보고 품평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센터의 다른 관계자는 “직접 찾아가 설명해 드리기도 하지만 연령대가 있으신 분들은 새로운 판로 개척보다 당장 생계를 해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사실”이라며 “온라인·모바일 시장의 확대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변화를 위해서는 소공인 분들의 의식전환도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품평회에 참석한 소공인들이 입 모아 언급한 어려움은 ‘온라인·모바일 마케팅’이다. 특히 온라인·모바일 사용이 서툰 중년 이상의 소공인들은 막막함이 더욱 크다. 임대료가 높은 지역에서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온라인 마케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살린 주얼리 브랜드 ‘주피노’의 박현수 대표 역시 온라인·모바일 마케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단청 색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귀걸이처럼 브랜드의 매력이 분명하지만, 온라인·모바일을 통해 제품을 알릴만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박 대표는 “오랫동안 파인 주얼리 분야에서 일했는데 금 시세가 계속해서 오르니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액세서리가 사치품이 아닌 행운의 상징 같은 것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브랜드를 론칭했다”며 “남대문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모바일과 온라인이 약하다 보니 이쪽 시장은 아직 개척하지 못했다. 디자이너다 보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건 자신 있지만, 제품을 알리고 돋보이게 하는 방법에는 서툴다. 그래서 이런 기회가 특히 반갑다”고 밝혔다.
수제화 브랜드 ‘컴피슈즈’의 윤지훈 대표는 마케팅 방법으로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진=박혜리 기자
SNS와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 소공인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남성 수제화 브랜드 ‘컴피슈즈’의 윤지훈 대표(36)는 SNS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원래 영업사원이었다는 윤 대표는 수제화에 관심을 두게 된 이후 수제화 아카데미, 수제화 공장 등을 돌며 기술을 익혔다. 전통기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장인에게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다. 지금은 성수동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윤 대표는 “마케팅 방법으로는 SNS를 활용하고 있는데 효과가 괜찮다. 모델을 기용하기보다 SNS상에서 유명한 사람들에게 우리 제품을 협찬해 주고 있다”며 “그동안 정부에서 소공인을 위해 지원을 해준다고 했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와 닿지 않았는데 이런 기회는 참 좋은 거 같다”고 밝혔다.
작은 수제화 업체가 모여 있는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분명히 드러난다. 6개월 전 수제화 브랜드 ‘오아이앤씨’를 론칭한 김혜연 대표는 “아직 스타트업 단계다 보니까 아무래도 판매 경로를 마련하는 게 걱정이었는데 전에 없던 품평회가 열린다는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며 “성수동 수제화 업체 중에서도 공장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우리처럼 외주를 맡기는 경우보다 단가 면에서 유리하다. 전안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검사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위>‘미고’의 제품들 <아래>심야공방 김호영 대표
일각에서는 정부지원이 지나치게 청년층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수·매듭을 활용한 패브릭 소품을 제작하는 ‘미고’는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김연화 대표와 친언니가 론칭한 브랜드다. 지금은 직원 1명을 더해 총 3명이 모든 제품을 직접 생산한다. 직장 생활을 하며 사업자등록을 낸 자매는 더 늦기 전 평생 직업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3년 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여성창업플라자에 입주했다.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조만간 이곳을 떠나게 됐다.
미고 관계자는 “국가에서 청년 창업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보니 무엇을 응모해도 39세 이하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처럼 우리와 같은 중·장년층의 참여 기회가 확대되었으면 한다”며 “수입으로만 본다면 직장생활을 하던 때와 비교할 수 없지만, 이 길을 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대개 생산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소공인들에게는 만족스러운 공장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기능성을 살린 가죽 제품을 만드는 ‘심야공방’의 일부 제품은 공방에서 직접 생산하지만, 공장에 생산을 맡기기도 한다. 김호영 심야공방 대표는 “높은 퀼리티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찾기가 쉽지 않고 입소문 난 곳은 일부 업체가 독점하기도 한다”며 “섬유, 가죽 등 각 분야에 맞는 좋은 생산공장과의 연결을 도와주는 지원책이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
소공인이 산다3(끝)-구두명장 1호 유홍식 씨 인터뷰 이어짐
언더커버-언더커버는 ‘일요신문i’만의 탐사보도 브랜드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커버스토리를 넘어 그 안에 감춰진 안보이는 모든 것을 낱낱히, 그리고 시원하게 파헤치겠습니다. ‘일요신문i’의 탐사보도 ‘언더커버’는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