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공정위 조직 쇄신안을 본 공정거래위원회에 정통한 한 관계자의 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급변하고 있다. 지난 20일 공정위가 약속했던 조직 쇄신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직 쇄신안은 8월 16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어떤 후속 조치든 필요한 상황이 됐다. 결과적으로 지난해부터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천명해 온 공정위 개혁이 탄력을 받게 됐다. 그 결과물이 바로 20일 발표한 조직 쇄신안이다. 조직 쇄신안에는 꽤 강력한 방침이 담겨 있었다.
이번 쇄신안은 재취업 알선 관행 타파, 재취업 관리 강화, 공직윤리 강화 등 9가지 방안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부당한 재취업을 막기 위한 방안에 집중돼 있다. 공정위는 재취업 과정에서는 모든 직, 간접적 개입을 전면 차단하고 재취업 관련 부당행위를 신고할 수 있는 ‘익명신고센터’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재취업 과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소위 ‘경력관리’ 근절을 위한 인사 원칙도 설정하겠다고 했다. 또한 공정위 퇴직 후 민간기업에 재취업한 사람은 퇴직일로부터 10년간 공정위 홈페이지에 상세히 게시하겠다고 알렸다.
만약 취업심사 승인을 받지 않은 퇴직자가 대가를 받고 자문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공직자윤리법 위반 행위 발견 시 즉시 인사혁신처에 통보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공정위는 사건 관련 사적 접촉도 전면 금지해 위반 시 현직자는 중징계, 퇴직자는 항구적인 공정위 출입금지 등의 페널티를 부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재취업을 할시 취업 사실 공개를 감수해야 하고 접촉도 엄격하게 단속한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한번 무너진 공정위를 향한 시선이 확 바뀌진 않았다. 공정거래법 전문 A 변호사는 “공정위가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그에 비해 감시나 견제는 거의 없었다. 특히 공정거래 사건은 1심을 공정위가 맡은 만큼 사실상 공정위가 수사하고 판결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며 “기업이 전직 공정위 인사를 영입하는 이유는 공정위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막강한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정위 사정에 밝은 B 변호사도 “이 정부 들어 재벌개혁, 프랜차이즈 갑을관계, 갑질 기업 등 여러 가지 사건에 공정위가 개입하면서 공정위의 힘이 엄청나게 막강해졌다”며 “공정위의 힘이 빠지지 않는 한 전직 공정위 직원을 채용하려는 기업의 니즈를 줄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어 B 변호사는 “이번 쇄신안이 어쨌건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나쁘게 작용할 수도 있다”며 “공정위는 다른 사정기관과 달리 전직 공정위 출신을 내세우면 서면이 아닌 직접 만나 당사자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방법도 있었다. 나쁜 측면이 있었지만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직접 만나 사건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에서 사실상 만남을 철저히 막아 앞으로는 그나마 나았던 장점 하나가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쇄신안이 강력하긴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만큼 과연 재취업을 막을 수 있을까란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정위 쇄신안이 결국 ‘김영란법’처럼 사실상 사문화되거나, 전직 공정위 직원을 직접 채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일을 맡기면 되지 않겠냐는 등의 이야기도 나왔다. 또한 국가가 개인 간의 자문계약을 일일이 어떻게 확인하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인 21일 발표에는 자못 충격이 전해진 모양새다. 21일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가격 등 중대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 폐지를 합의하면서 38년간 쥐어왔던 공정위가 큰 힘의 한 축을 내려놓기로 하면서다. 공정위 출신도 앞으로는 ‘치킨집’ 사장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돈다.
김상조 위원장이 기업들의 공정위 인사 영입의 근본 원인이었던 ‘공정위의 힘’을 빼는 데 주력하면서 겉 핥기에 그치는 줄 알았던 공정위 개혁을 다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정위 사정에 밝은 한 기업 관계자는 “OB(전직 직원)가 활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공정위 절차에서 OB의 역할이 크다는 이야기다. 즉, 절차 진행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본격적으로 공정위 절차를 손 보기 시작한 만큼 이번 쇄신이 ‘빈 수레가 요란한’ 상황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서 담합도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는 길이 열렸다. 이제 검찰과 공정위가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고, 더 좋은 결과를 낸 측에 수사를 요청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두 집단이 어떻게 경쟁하고 공존할지 불확실한 만큼 다음 스텝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개혁 의지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공정위 사정에 밝은 또 다른 관계자는 “12명이 기소될 정도로 검찰에게 워낙 박살이 나버려서 수습차원에서 뭐라도 한 시늉으로 보인다”고 공정위에 의문을 표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16일 발표된 검찰수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공정위 구성원을 대표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작년 6월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2017년 9월 사건 처리 절차 및 조직 문화 혁신을 위해 ‘공정위 신뢰제고방안’을 발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해 왔다”며 “금번 검찰 수사로 밝혀진 그간의 잘못된 관행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죄드리며, 앞으로 공정위가 ‘경쟁’과 ‘공정’의 가치를 수호하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